2024년 2월5일 (월)
[공황장애 일기] 공황장애야, 고마워!! 숨쉬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며
2024년 2월5일 (월)
그동안 살면서 감사한 것을 잘 몰랐다.
모든 것이 저절로 주어지거나, 내 노력의 산물에 의한 것인지 알았다.
감사는 내 주관적 노력이 아니라 그러한 노동이나 노력 또는 경제적 가치를 제공하지 않았음에도 나에게 예상치 않게 좋은 것이 주어졌을 때 그 대상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표현하는 감정을 말한다.
그렇게 보면 공황장애라는 질병은 나에게 고통과 절망, 그리고 경제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만든 매우 악질 빌런이었다.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을, 나로 인해 더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가족의 삶의 질까지 빼앗아가는 최고의 악당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두 달을 지내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참 감사를 모르고 살아왔구나 하는 강한 통찰이 나를 집어삼켰다. 공황장애는 나의 그 뻔뻔함에,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감사도 모르는 교만함, 거만함에 일격을 가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먼저 녀석(공황장애를 녀석이라 불러본다. 악의적 호칭이 아니라 친구의 개념이 더 강한 호칭이다.)은 나에게 평소에 숨을 잘 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숨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저절로 내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생명줄이다. 숨을 쉬지 못하면 사람은 죽는다. 사람은 몇 분 동안을 숨쉬지 않고 참아낼 수 있을까. 3분? 5분? 그 정도다. 목을 조르면 금방 질식해서 죽고 만다.
그 중요한 숨. 호흡을 우리는 조심성 없이, 의식도 하지 않고, 감사도 없이 그냥 무의식적으로 들이 마시고 내뱉는다.
공황장애는 과호흡에 의한 공황발작이 주요 증상 중 하나이다. 과호흡이 몰려오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숨을 제대로 쉬고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 호흡을 빼앗아 간 과호흡과 공황장애에게 나는 짜증을 냈고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신에게도 울부짖었다. 왜 나에게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주냐고,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만드냐고.
그랬는데. 어제 성경말씀을 읽다가,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까지 받아온 복을, 축복을 하나도 세어보지 않았구나.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숨을 제대로 내쉬며 살아온 것이 바로 기적같은 일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몰려왔다.
고맙고 감사하다.
지금의 상황은 힘들지만, 이제 비상약을 먹지 않고도 위험한 순간을 잘 헤쳐나갈 수 있게 되었다.
2주 전의 나는 아침 저녁으로 먹는 공황장애 약 외에도 늘 하루에 한 번 또는 두 번까지도 과호흡을 진정시키기 위해 비상약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지난 주부터 비상약 먹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과호흡이 오기 전 물을 마시고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내 호흡을 조절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비상약을 꺼내들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이틀 지내다보니 이제는 산책을 하고 돌아와도 비상약을 꺼내지 않게 되었다. 지난 주에 딱 한 번 먹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의사선생님 상담에서 비상약은 이번에 안 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습관처럼 행하는 것 속에 우리의 생명을 끝장내는 무서운 순간들이 숨을 죽인 채 기회를 노리고 있다. 내 신체의 일부가 하나의 기능을 멈추는 순간 놈들은 이때다 하고 생명줄을 끊어놓기 위해 순식간에 달려들 것이다.
그러니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수많은 장기와 혈액과 신체의 기능들에 대하여 무한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금까지 숨을 잘 쉬게 해주어 잘 먹고 잘 살아오게 해 준 내 신체에게 너무 감사하다. 지금껏 몰라준 것은 너무 미안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아직은 가슴이 답답하고 걸을 때마다 가슴 압박이 심해 잘 걷지 못한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더 감사할 일이다. 친구야. 더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