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일기] 공황장애와 친해지기

2024년 2월8일(목)

by 봄부신 날

[공황장애 일기] 공황장애와 친해지기



2024년 2월8일(목)



공황장애는 연예인들이 잘 걸리는 것처럼 소개되어 연예인병으로 오해를 받는다.


공황장애라는 표현이 뭔가 어색하다. 같은 정신과적 다른 병들은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조울증처럼 어떤 특별한 증세를 특화하여 ~증으로 명함으로써 그래도 그 병명을 입 밖으로 꺼내어 발화시킬 때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 든다.


그에 반해 공황증이 아니라 공황장애라고 애써 장애를 붙임으로써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는 본인 스스로 타인에게 자신의 질병을 소개할 때, 우울증이나 조울증, 불안증보다는 뭔가 한 단계 더 높거나 더 깊은 질병처럼 느끼도록 만든다.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렇게 붙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장애인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공황장애는 어떤 공간, 상황 속에서 공황(패닉) 상태에 빠져 과호흡 등으로 공황발작을 일으킬 때, 그러한 증상이 지속되어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공황장애 질병에 걸렸다고 한다.


서울대학교병원이 인터넷으로 공개한 공황장애의 정의에 따르면,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 불안 증상, 즉 공황발작(panic attacj)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황장애의 원인으로는 정신분석 이론이나 인지행동 이론에서는 심리사회적 요인으로 밝히고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는 생물학적 요인이 공황장애의 주요한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즉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가바 같은 신경 전달물질 시스템에서 이상이 나타나거나 하는 등의 문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공황장애 환자의 많은 수가 증상이 생기기 전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나의 이번 세 번째 공황장애 발작은 스트레스 상황이 가장 큰 요인일 것으로 짐작된다.


증상으로는 첫번째 공황발작인 경우, 흥분, 신체적인 활동, 성행위, 감정적 상처 등에 뒤따라서 생길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이유 없이 자발적으로 생기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증상이 발생하면 보통 10분 안에 증상의 정도가 최고조에 이르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첫번째 공황발작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은 결혼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첫 처가댁 사촌 형님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술을 거의 하지 않고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너무 술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 이웃으로부터 아버지가 술에 취해 저기 어디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고 소식이 들려오면 어렸던 나는 혼자 그곳으로 가서 안경은 깨지고 바닥에 넘어져 손이고 무릎이 피로 물든 아버지, 인사불성이 되어 헛소리를 하고 고래고래 동네가 시끄럽도록 노래를 불러대는 아버지를 부축하여 힘들게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주변 어른들이 도와주기도 했는데 나는 저런 사람이 내 아버지이고, 내가 지금 이런 상황의 한 복판에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끌다시피 집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창피하고 또 창피했다. 어린 마음에 이 사람이 내 아버지가 아니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그래서 나는 커서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첫 직장에서 회식자리에 가면 돼지갈비에 소주가 기본이었다. 2차로 노래방을 가면 맥주가 기본이었다. 나는 아버지 얘기를 하지 못하고, 신앙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말하며 술을 마시지 않았다. 회사 동기들이랑 모여 친목 모임을 하면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재미있게 놀았다. 팀 회식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 신입사원으로 인정을 받아 다른 팀원들이 내게 가방을 다 맡기고 더 마음껏 술을 마시게 하는 나쁜 버릇을 들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운전까지 내가 해주는 일도 있었다.


어떤 상사는 자기도 교회 집사인데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며 2차 노래방에서 끝까지 나에게 술을 마시게 하려고 하였고, 타 부서 과장님은 나를 끌고 자기 집 근처 식당에 가서 술을 시켜놓고 오늘 술을 마시지 않으면 집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하며 끈질기게 나에게 술을 마시게 하였다.


나는 끝내 그런 환경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나서 처가댁에 가서 장인어른, 사촌 형님들이 건네는 술잔을 거부할 용기는 없었다. 그런 자리가 내게는 너무 불편했다. 장모님도 무서웠고 사촌 형님들도 무척 많았는데 나는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주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서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사지가 마비되었고 혀가 마비되었고 곧바로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는 이러다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말을 했다.

나는 그날 새벽까지 링겔을 맞고, 온 가족과 사촌형님들 가족들까지 공포와 걱정에 휩싸이게 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때 그 첫 발작이 공황발작인지 명확하지는 않다.

나는 그 뒤로 같은 공황발작은 일으키지 않았다.


다만 어쩌다 포도주라도 한 입 삼키고나면 초기 증상이 즉각 나타났다.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손발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벼운 샴페인이라든지 포도주 같은 것들도 입은 물론 근처에도 가지 못하도록 아내의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서울대학교에서 밝힌 첫 번째 공황발작이 이것이라면 나의 공황장애는 무척 오래 전부터 내게 숨어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황장에는 내 인생에서 네 번째 일어난 공황발작이다.

이제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1000보 걷기도 어려워했던 나였다.

나갔다오면 반드시 비상약을 먹으며 호흡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호흡을 안정시켜도 거의 30분 가량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기분이 난다.

아침 저녁으로 정해진 약을 먹는다.

오늘도 5000보 가량을 걸었고, 비상약을 먹지 않고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좀 시간을 길게 보고, 공황장애를 적으로 인식하지 말고, 친구로 여기자.

친하게 지내며 오래 갈 수 있는 생활을 해야겠다.


오늘도 수고했다.

공황장애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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