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0일 (수)
2024년 2월 20일 (수)
설거지를 마쳤다. 아침 점심으로 먹은 설거지 거리가 꽤 된다.
힘들게 일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아내에게, 집에서 빈둥거리는 남편이 설거지도 안 하고 있으면 그것은 염치가 없는 짓이다. 물론 내가 심하게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점심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까지 그다지 몸과 가슴 상태가 나쁘지 않다.
물론 일을 좀 했더니 과흥분 상태가 되어 약간 혼란스럽긴 하다. 아직은 몸을 조금만 쓰면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과호흡 전단계에 이른다. 종이류를 재활용 쓰레기함에 나가 버리고, 이사한다고 옷가지 빼놓은 것들을 의류함에 넣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왔다. 비가 오는데 우산 쓰기가 번거로워 모자만 쓰고 나갔다 돌아왔다. 그 정도 일만 해도 호흡에 부담이 온다. 조금만 더 몸을 쓰면, 가령 청소기 먼지를 털어내고, 책을 좀 옮기고 그러면 나는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과호흡을 예상하면서 비상약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단계까지 가지 않았다. 내가 나를 알고 스스로 어느 선에서 멈추어야 할지를 이제는 안다. 직전에서 멈추었다. 물을 마시고 호흡을 골랐다.
정확히 3개월이 되었다. 처음에 의사 선생님이 최소 6개월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을 했을 때, 설마 그렇게까지 오래 먹는다고? 하며 속으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랬는데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오늘로써 일단 공황장애 일기 시즌1은 마치려 한다. 무슨 넷플릭스 버라이어티 쇼도 아니고 이렇게 써내는 일기의 구독자도 많지 않지만, 나는 공황장애 발작이 일어난 지 3개월이 된 오늘을 시즌1이라 생각하고, 그동안 119 타고 응급실에 가지 않고 많은 분들의 걱정과 염려 그리고 기도 덕분에 무사히 잘 버텨준 것에 감사하며 오늘로서 일단 공황장애 일기를 멈출 생각이다.
이제 곧 이틀 뒤면 우리는 5분 거리에 있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간다. 아내도 출근해야 한다고 하고, 큰딸은 11시면 자기 일 보러 가야 한다고 하고, 막내딸은 아침부터 수련회가 있다고 집에 없을 예정이다. 그러니까 공황장애 환자인 아빠 한 사람에게 이사라는 커다란 짐을 맡기고 모두 나몰라라 내팽개치겠다는 뜻이다. 물론 그건 이제 내가 어느 정도 혼자서도 충분히 사람을 만나고 예기불안에 의한 공황발작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인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 병원을 방문했을 때 꽤 긴 시간 의사선생님과 얘기를 했다. 따지고보니 내 공황장애 발작은 이번까지 합치면 총 4차례나 되었다. 지금까지 이번 공황장애가 세 번째라고 생각했는데, 결혼 직후 처가쪽 사촌형들이 건네주는 술을 억지로 먹다 과호흡은 물론 사지마비, 안면마비와 함께 119에 실려갔던 것이 첫번째였다. 그 이후 나는 약한 포도주만 한 입술 정도 마셔도 곧 몸 전체를 떨면서 과호흡을 일으키곤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완벽주의에 의한 끔찍했던 한 사건과 아버지의 술주정에 의한 수치심 등 차마 구체적으로 남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나의 부끄러운 어린 시절, 알려주고 싶지 않은 모멸과 아픔의 이야기를 했다. 의사선생님은 편안한 모습으로 끝까지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이제야 자신이 궁금해했던 퍼즐이 다 맞추어진 것 같다고 웃었다. (물론 아직 다 얘기하지 못한 숱한 어린시절 얘기들이 내 가슴속에 남아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도 하지 못했고, 가족, 친구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받았던 그 충격을 내년이 환갑인 지금에서야 처음 털어놓았다. 그것도 의사선생님에게. 아내에게 차마 말을 못했다고, 그걸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아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의사선생님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해주셨다. 지금은 아내가 그 정도의 얘기는 들어주실 수 있는 분 같으니까 이제는 한번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를 해보라고 권해주셨다.
내 공황장애는 불안에 의한 단순한 공황장애가 아니라 공황장애와 또 다른 극심한 스트레스가 결합된 형태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지금이 이전 공황장애 상태보다 가장 가벼운 상태이니 이제는 앞으로 또 이런 공황이 일어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도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날 저녁 아내에게 병원에게 갔다 온 얘기를 하면서 슬쩍 어린 시절의 끔찍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꺼내는 나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아내는 괜찮다고,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니 앞을 바라보자고 했다.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위로해주었다.
11월20일 공황장애 과호흡 발작 이후 나는 퇴직을 했고 지금은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처음에는 취업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 아무리 뛰어난 자격증을 가지고 관련 분야에 오래 몸을 담은 경력자라도 60이 다된 사람을 월급 주면서 일을 시키려는 사장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석연구원이라며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게 사실 기적이긴 하다.
나는 이제 오전에는 동쪽에서 몸을 일으켜 둥글게 기지개를 켜면서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을 마주하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다. 오후에는 해가 책장 쪽으로 넘어가서 내가 앉아 있는 쇼파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면 점심을 먹고 운동 삼아 걷기를 한다. 처음엔 일어나지도 못했고, 1000보를 걷고 웃었다. 걸으려고 할 때마다 가슴을 압박해 들어오는 그 무거운 철판을 밀어내며 한 걸음 한 걸음 걷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4000보를 넘기고 5000보를 넘겼다.
걸을 때마다 가슴을 짓누르고 압박하는 그 가짜 철판은 이제 내게 명백히 가짜임이 밝혀졌다. 10여년 전에는 원인을 찾는다고 온갖 병원을 다니며 심장이며 사진을 찍었었지만 모두 정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외치는 순간 놀랍게 가짜는 사라진다.
걸음도 빨라졌다. 아내가 놀란다. 이제 나보다 빠르게 걷네?
그래도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공황장애 약을 먹는다.
최근에는 불면증이 심해져서 취침전 약 봉투가 하나 더 늘었다.
얼마 전에 집에서 차로 20여 분 걸리는 곳에서 2주에 한 번씩 만나는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나로서는 내 건강함의 여부를 떠나 너무 갈급한 모임이었다. 그것도 독서모임. 그동안 독서모임을 어떻게 해보려고 시도를 했지만 잘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좋았다. 물론 몸은 많이 피곤했고 돌아오자마자 뻗어버렸지만, 그것은 내게 또 다른 활력을 주었다.
이제 오전에는 책을 읽고, 오후에는 그동안 미뤄왔던 창작을 해볼 생각이다. 컴퓨터 폴더 안에서 미완성인 채 주인을 기다리는 원고가 많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밥벌이의 글쓰기나, 외주 알바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해서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다.
한달 200만원으로 살기. 그리고 한달에 200만원만 벌기가 내 목표다. 이사를 하고 나면 성인반과 아동반으로 나눠 동화글쓰기 창작반을 열어볼 생각이다. 봄이 오면, 내 몸과 마음에도 봄이 오면, 꽃이 활짝 필 것이다. 눈부신 봄이 아니라, 봄부신 그 날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