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작업을 다 끝내고 제본을 하고 명함을 만들었다. 뭐 회사를 차린 것도 아닌데 토브 컨설팅(TOV Consulting)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급하게 명함을 만드느라, 폼 잡는다고 영어를 썼는데 실수를 해서 컨설팅이 consulting이 아니라 conculting으로 200장 인쇄되고 말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하다.
중간에서 일을 연결해준, 오랜 지기, 서울 생활 첫 직장 대표였던 H랑 집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엊그제도 아내랑 귀 간지럽도록 그 사람 얘기를 했던 터였다. 회사가 망해가는데, 모두들 퇴사했는데 나만 떠나오지 못했다. 내 손을 붙잡고 울먹이며, 네가 떠나면 회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그만 회사가 완전히 망할 때까지 계속 월급도 못 받고 그 회사에 적을 두었다.
점심 먹고 잠시 차를 마시면서 그 얘기를 하니, 하나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정말 괘씸하다. 나는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 뒤로 오랫동안 대표랑 나 두 사람만 겨우 사무실을 얻어 주식회사를 유지시켰다. 그 인연이 길다. 어느새 23년째다
오늘 드디어 오후 2시에 H가 연결해준 기업체 대표를 만나 보고서 내용을 설명하러 간다.
회사를 퇴직하고 내가 모르는 외부 사람을 만나는 첫번째 외출이다. 당연히 긴장이 된다. 2주 전이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외출을 할 용기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동안 걷기 양도 꽤 늘였다. 담배를 피는 H 차에는 니코틴 냄새가 배여 있어 내가 집쪽으로 오면 내 차로 가자고 했다.
자동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거리였는데, 왔다갔다 왕복 1시간은 공황장애 이후 최대로 멀리 나가는 운전이다.
지갑 속에 비상약을 두 개나 챙겨넣고 출발했다.
요즘은 아침이 가장 힘들다.
늘 가슴이 불안하고 답답하고 호흡이 불안정하다.
아침 식사 후 아침 약을 먹어도 그렇다.
가끔씩 비상약을 먹을까 갈등할 때도 있다.
어제는 하루종일 그 상태가 지속되어서 수요예배에 가서 비상약 고민을 한참 하다 아내가 걱정할까봐 먹지 않고 버텨냈다. 물 한잔으로 그렇게 넘겼다.
이번 주에 비상약을 한 번 먹었는데 언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회사 대표를 만나 엉터리 명함을 주고 제본해 간 보고서를 설명했다.
고맙게도 이메일로 먼저 보낸 내용을 다 읽어보고 왔다. 이런 대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그는 정말 진실되어 보였다.
모처럼 사회인이 되어 기업체 엔지니어 대표를 만나니 30년 경력의 노하우가 하나둘 실타래처럼 풀어져 나온다.
아주 만족스럽게 헤어졌다.
H에게 통장 사본과 주민등록번호를 전달했다.
이제 퇴직 이후 첫 외주 알바비가 도착할 것이다.
사람이 퇴직했다고 굶어죽으란 법은 없다.
공황장애에 걸렸다고 아무 일도 못하고 죽은 듯 집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집에 와서도 비상약을 먹지 않았다.
모처럼 뇌가 일을 한 것을 알아차렸는지 배가 고파왔다. 순식간에 콘프라이트를 넣은 우유 한 접시와 도넛 한 개를 먹어 치웠다.
이렇게 한 달에 한 건씩이라도 외주 작업이 들어와준다면, 퇴직해서 집에만 있는 불쌍한 아빠, 기죽은 남편이 아니라는 걸,
아빠도 아빠가 살아가는 부분은 경제적 활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너무 힘들면 아무것도 하기 힘들 때가 있고,
하루에 세 시간만 책상에 앉아 있어도 이제는 힘이 들고,
모든 조건은 예전과 달라졌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이제, 일과 글, 햇살, 건강,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긍정과 긍정으로 안개 같은 내일을 헤쳐나갈 일이다.
오늘은 많은 걱정을 했지만
즐거웠고, 다시 나를 찾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올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일은 의사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최근 심하게 늘어나는 불면증을 아무래도 얘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 오늘도 열두 시 반에 한 번, 두 시 반에 한 번 깨고는 잠을 충분히 자질 못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 쇼파에서 한 시간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