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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r 26. 2024

(들어가는 글) 취미를 왜 물어보지?

취미 적는 칸이 궁금해

초등학생 일 때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학년이 바뀌면 가정조사 같은 것을 한다면서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가정사를 취조하듯이 조사해갔는데 그 때에도 꼭 취미를 적는 칸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취미의 개념을 잘 몰라서 주변 친구에게 물어보고는 공란으로 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하지도 않은 우표수집 같은 걸 친구따라 적기도 했었다. 청년이 되어서 이력서를 쓰거나 어디 교육을 받으러 가거나 심지어 동사무소에 전입신고를 하러 갈 때에도 취미만은 유령처럼 따라다녔던 것 같다. ‘따라다녔다’라고 과거형 문장으로 매듭짓지 않고 의심으러운 소심한 기억형 문장 매듭지은 건 내 기억을 스스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어찌되었든 어른이 되어서도 무언가 개인에 대한 내역을 적어내는 항목에는 무척 개인적인 사생활 중의 하나인 취미, 특기를 적는 칸이 대부분 있었다.      


취미는 무엇이고 특기는 무엇인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대충 눈짐작으로 헤아려 보니, 취미는 잘 하지는 못하지만 혼자서 좋아해서 해보는 것이고, 특기는 다른 사람에 비해 자기만이 할 줄 아는 특출난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칸을 노려보면서 무얼 적어야 할지 항상 고민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따라 우표수집을 취미생활로 배워본 적이 있었다. 우표는 편지를 보낼 때 돈을 주고 사서 편지봉투에 붙이는 것인데 그걸 우편물 보낼 때 사용하지 않고 모으는 것이 우표수집이라는 취미였다. 친구는 상당히 많은 우표를 모으고 있었다. 나비우표 모음집이라든지 나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우표수집은 새 우표를 돈을 주고 사는,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취미생활이었다. 늘 가난했던 나로서는 참으로 가당찮은 취미에 속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친구를 얻었다는 기쁜 마음에 그 아이가 모은 우표수집함을 보면서 처음으로 우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 친구는 우표를 무척 소중하게 다루었다. 게다가 무슨무슨 날이어서 3000개 한정 같은 특별우표가 나오면 진심으로 요즘 말로 오픈런을 해서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표를 파는 문방구로 달려가곤 했다.      


나는 새 우표를 사면서까지 취미생활을 할 형편이 안 될 정도로 가난한 아이였다. 용돈이란 걸 받아보지 못한 채 자라났다. 어머니는 고혈압과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운신이 힘들고, 아버지는 직업군인을 제대하고 사업을 한다고 하는데 늘 사기만 당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준비물을 사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엄마에게 전할 때도 시간을 보고 엄마 얼굴을 살피고 하여 겨우 혼신의 힘을 다 짜내어 준비물로 스케치북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내곤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우표집은 어찌어찌 해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채울 우표가 없었다. 친구가 선심 쓰듯이 자기가 아끼던 거라며 몇 번이나 말하면서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는 우표 몇 개를 줘서 그것을 끼워놓은 채 망연자실 어떻게 해야 우표를 살 수 있을까 궁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황금같은 우표들이 집에서 대거 발견되었다. 마치 경주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을 파헤치다가 왕릉을 발견하는 것과 같았다. 바로 다락방에 숨겨놓은 엄마와 아빠의 연애편지에 붙어 있던 오래된 우표였다.      


동생과 내가 자던 작은 방에는 작은 다락방이 있었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계단이 있어서 계단을 밟고 올라갔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계단을 밟고 들어가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거기에는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벽 사방으로 빙 둘러 진을 치고는 중간에 나같은 어린아이가 누워도 좋을 만한 공간 하나를 만들어 놓은 음습하고 기괴한 곳이었다. 노란 백열등 전구를 켜야 했고, 가끔 스스스슥 소리를 내는 커다란 벌레들이 후다닥 도망가 숨는 곳이었다. 그러면 나는 약간의 시간을 두어 이곳 주인이 나타났음을 알려 벌레들이 모두 도망가도록 허락한 뒤에 조금씩 움찔움찔 하며 계단을 밟아 거길 올라갔다. 내가 당당히 다락방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긴 책판매원의 설득 끝에 어머니가 그 유명한 계몽사 동화전집 50권짜리를 사서 다락에 올려다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다락방은 내가 독서하는 공간이었고, 나만의 상상력을 키우는 나만의 놀이터였다. 책을 읽다 심심하면 다른 곳에 뭐가 있나 하고 심심풀이로 뒤져보곤 했는데 거기에서 엄마와 아빠가 근 10년간 주고 받은 편지를 발견한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주고 받은 편지를 몰래 훔쳐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아빠는 직업군인이었다. 그래서 이사를 자주 다녔다고 한다. 아마도 아빠가 거주하는 군부대의 도시로 이사를 가서 엄마는 짐을 풀고 아빠는 그곳 관사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빠는 큰 아이는 잘 크고 있는지 궁금해 했고, 엄마는 나와 누나에 대해 이런저런 답장을 보냈다. 두 분 다 달필이어서 보통 두세 장을 넘기는 긴 편지를 썼고, 편지에는 애정이 담뿍 묻어 있었다. 그랬는데 왜 내가 본 두 부모님은 늘 원수가 되어서 네가 ~~만 하면 이혼할 거야! 하며 외치고 자식들 앞에서 다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혼을 하겠다는 사람은 늘 엄마였는데, 너희들이 학교만 졸업하면 엄마는 이혼할 거야, 라고 했다가, 학교를 다 졸업하자, 너희가 결혼만 하면 즉시 이혼할 거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결혼하면 두 분이 이혼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회를 놓쳤는지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손녀, 손자들이 태어나 버렸고 두 분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는 17년 전에 식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 그렇게 서슬 퍼렇게 이혼하겠다고 외쳤던 엄마는 우리 앞에서 아버지에게 ‘당신이라는 존칭을 쓰며 언제 그런 적이 있었냐는 듯이 군다. 그래서 그때 진짜 그런 마음이었느냐고 묻기가 곤란해져버렸다. 아마 그때는 진심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직업군인을 제대한 후 하는 사업마다 실패했고 빚이 졌고 엄마가 집문서만은 안 된다며 끝까지 숨겨놓았던 그 집문서마저 담보로 다른 사람 보증을 서준 마음씨 좋은 아빠는 결국 우리집을 빚잔치로 공중분해시키고 말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것을 잊기 위해  술음 마시고 늦게 들어왔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싫어졌다. 엄마는 자식들 앞에서 아빠가 술만 마시고 들어오면 큰소리로 싸웠다. 얘기가 너무 옆길로 샜다.    

  

어쨌든 결혼한 신혼 때 우리 부모님은 무척 사랑하고 다정한 부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날마다 다락방에 올라가 새로운 우표가 붙어 있는 편지를 찾아 우표를 뜯어내고 편지를 훔쳐 읽었다. 그렇게 발견한 우표들은 친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오래된 우표였다. 년식이 오래된 우표는 나름대로 상당히 가치가 있었고 특히 소인이 찍힌 우표는 더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랬는데 빚잔치를 하고 이사를 하면서 없애버렸는지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 편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깝다. 내가 보관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그 때 모았던 우표함도 다 사라졌다. 누구에게 줬을까. 팔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이후 내가 성인이 되어 취미생활이라고 해 본 것은 물고기를 어항에 기르는 물생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꽤 오랜 기간 물생활을 했다. 기르기가 쉽고 모조건 새끼를 낳는다는 구피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을 길렀고 수조의 크기도 늘려갔다. 추우면 안 되니까 히터도 사야 했고, 온도계도 있어야 했다. 물에 거품을 품어내는 모터와 펌프도 있어야 했고, 수조가 너무 허전하면 수초도 사다 넣어야 했다. 물생활은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 꽤 많은 정성을 요구했다. 물을 다 빼내고 다시 새 물을 넣어주는 일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해주어야 했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 귀찮고 힘들었다. 새 물을 넣어줄 때도 수돗물을 바로 넣어주면 안 되고 하루 정도 밖에 놓아두어서 염소 성분 같은 것들이 다 사라지도록 한 다음 넣어주어야 했다. 나는 물고기를 기르는 것은 좋아했는데, 그밖의 모든 것은 정말 귀찮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가습기 역할을 하는 수조 물이 조금씩 줄어들면 수돗물을 그냥 조금씩 채워주었다. 그래도 물고기들은 죽지 않고 잘 살았다. 물고기들은 여러 종을 넣으면 서로 싸우는 경우도 있고, 병이 들어 죽기도 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너무 작고 여린 것이어서 어디 묻어줄 수도 없었다. 물고기가 다 죽어버리면 물을 다 버리고 물고기를 다시 다 새로 산다. 그때는 다른 어종을 골라본다. 나만을 위한 취미생활이지만 그것도 물고기에는 고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특히 식사로 생선을 먹으면서 수족관을 바라볼 때는 나의 이중성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물고기를 먹으면서 수족관에 취미로 물고기를 기른다고? 하지만 물생활은 내가 직장이 안정되지 않아 한참 힘들 때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불멍처럼, 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수족관 앞에 앉아 물멍을 했다. 수족관 벽에 이끼가 끼면 이끼를 먹는 빨간 달팽이도 넣어주었다. 가장 신나고 재미있었던 때는 수초에다 가재를 키울 때였다. 가재는 정말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날마다 쑥쑥 자라났고, 내가 나뭇가지를 물 속에 넣어주면 그걸 잡으려고 커다란 집게발을 휘둘러댔다. 게다가 하룻밤 자고 나면 탈피하여 껍질을 바닥에 벗어넣고 어느새 두 배는 커진 집게발을 가진 다른 가재로 변신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자연의 신비를 알아가는 큰 경외였다.     


하지만 이제는 물생활도 접었다. 이사를 자주 하다보니 물고기를 옮기는 게 상당히 힘이 들었다. 가장 오래 사는 물고기,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물고기를 사서 물갈이 한번 없이 계속 새 물만 보충해주는 식으로 다섯 마리의 테트라를 마지막으로 해서 나는 더 이상 물생활을 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지금 당신 앞에 있는 호구조사 종이에 취미란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적을 것인가. 나는 이제 거침없이 ‘독서’ 라고 당당히 적는다. 여기에 왜 ‘당당히’라는 부사를 굳이 적었느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적는 ‘독서’라는 것과 내가 적는 독서라는 취미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날 일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취미란에 쓸 말이 없으면 대충 ‘독서’라고 적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정말 그랬다. 특별히 취미를 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 ‘독서’라고 적었다. 책이야 한두 권 읽지.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취미란의 독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칸, 누구나 독서라고 적는 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도 왜 취미를 적는 칸이 있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취미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친구를 하려고 그럴까?) 요즘 다양한 SNS가 발달되어 있고 소모임들이 네이버 밴드며 당근 앱 같은 곳에서 운영되고 있어서 정말 자기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내고 만나곤 한다. 이제 많은 취미가 더욱 활성화되는 이때에 나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내 취미는 ‘독서’다. 어중이떠중이가 적을 게 없으면 적는 ‘독서’가 아니라 ‘진짜 독서’다. 물론 나보다 책도 많이 읽고, 그걸 다 기억하고, 여러 책들을 엮어서 특강도 하고, 심지어 책까지 내는 독서 고수는 많다. 그런 사람은 취미란에 독서를 적을 게 아니라 특기란에 적어야 한다. 나는 특기가 독서가 아니라, 취미가 독서다. 이념 유의해서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책 읽은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가끔 기억에 남는 책이면 정성들여 후기를 쓰기도 하지만 읽는데 바빠서 모든 책을 다 후기로 남기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쉬지 않고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     


그럼 지금부터 독서가 진짜 취미인 사람의 책 이야기를 들어보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책상에 앉아 꼼짝 않고 이 글을 적었다. 팔도 아프고 머리도 지끈거린다. 이제 조금 쉬면서 책을 읽어야겠다. 읽고 있는 여러 책 가운데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것도 즐겁다. 일단 눈에 가면서 지금의 내 마음을 풀어줄 책이 필요하다. 그래 지금은 이 책이다. 음악 틀고 잠깐 쉬면서 책을 읽자. 이제부터는 나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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