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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16. 2024

(취미가 독서) 독서는 제철독서가 제맛이지

제철과일처럼 제철독서가 필요하다

[4화] 제철독서가 필요하다



자연에는 자연만의 순리가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고 열매가 맺는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들은 오색찬란한 빛깔로 마지막 자신을 불태우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겨울이 닥치면 눈보라가 치고 추위가 세상을 꽁꽁 얼게 만든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자고 나무는 모든 기능을 거의 멈춘 듯 꼼짝하지 않고 긴 겨울을 견뎌야 한다.


그런 계절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맞는 제철 음식이나 과일을 먹으며 건강을 챙겼다. 봄이 오면 쑥을 캐어 국을 끓여 먹고 달래 냉이 고들빼기를 캐내어 나물로도 무치고 김치를 담아 먹었다. 생선은 또 어떤가 봄이면 봄 도다리 회를 먹어야 봄을 제대로 난다고 할 수 있다. 여름이 오면 수박, 참외, 포도가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시원한 수박을 쫙 쪼개어 숟가락으로 파먹어도 맛이 있고,  듬성듬성 썰어 얼음에 재운 뒤 다른 과일과 함께 섞어 화채로도 더위를 달랠 수 있다.  여름 끝물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무화과 나무가 익고 마트에 무화과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나는 주저없이 무화과 열매 한 상자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혼자 먹는다. 나 말고는 아무도 무화과에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아내도 무화과에 입맛을 들여 둘이서 서너 개씩 한번에 먹어치우곤 한다. 입 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르 녹는 무화과의 달콤한 맛은 강렬하다. 여름에 냉면은 또 어떤가. 이때 만두를 같이 곁들어 꼭 먹어줘야 한다. 한낮 온도가 30도를 웃도는 기온이 되면 온몸이 회냉면을 먹고 싶다고 아우성을 친다. 게다가 최근에 군산에서 물회에 입맛을 들인 뒤로는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그 비싼 물회를 한번 먹어보리라 결심을 한다. 우리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챙겨주는 제철마다 나오는 과일, 생선을 먹었다. 그건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때 그 과일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먹는 것이다. 겨울에는 수박을 먹을 수 없다. 겨울에 쑥을 버무린 떡을 먹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비닐하우스라는 신통방통한 방법을 이용해서 계절과 상관없이 과일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제철과일을 먹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고 느낌이 다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독서에도 제철에 읽는 제철독서가 있다. 나는 제철독서법이라는 이 제목 하나만으로 책 한 권을 써 보리라 욕심을 내고 있긴 한데 늘 마음만 앞설 뿐이다. 그래서 일단, 여기 <내 취미는 독서>라는 칸을 빌려 간단하게 그 독서법을 알리고자 한다.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제철에 나는 음식을 제철에 먹어야 건강한 것처럼, 독서도 계절에 따라 그에 맞는 책을 골라 읽으면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건강은 물론이고 사유의 깊이, 사유의 넓이가 우주가 무한히 팽창하듯 그렇게 깊고 넓게 확장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봄에 읽는 제철독서]

봄이라는 계절은 매우 영웅적이다. 겨울이라는 빌런, 악당, 우리를 꽁꽁 묶어놓았던 그 몸짓에서 스스로 언 땅을 녹이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찬란한 계절, 영웅의 계절이다. 하지만 봄은 늦게 온다. 봄인가 싶으면 다시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치고, 봄인가 싶으면 꽃샘추위에 또 한번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봄에는 생명, 환희, 기쁨을 표현하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꽃이 피는 봄꽃을 보면서 숲, 나무, 꽃, 산과 같은 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책을 읽을 때 내가 읽는 책의 내용과 내가 눈과 귀와 코의 감각으로 경험하는 자연의 경험이 일치하는 놀라움을 깨우치게 된다.


가장 먼저 봄에는 황대권 선생님의 <야생초 편지>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야생초 편지>는 겨울과 같은 감옥 생활을 하는 중에 야생초를 키워 내고 밥상에 올려 몸과 정신을 정갈하게 해주는 책이다. 긴 겨울의 나쁜 독소를 모두 해독해주는 봄철 독서의 최고봉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다만 <야생초 편지>는 책 재질과 표지가 환경을 생각하는 재생용 종이로 만들어서 오랜 세월 보관하기가 어렵다. 구하기가 어려우면 양장본으로 예쁘게 나온 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이야기책인 <식물의 책>도 나쁘진 않다. 좀더 원초적인 자연으로 들어가려면 자연생활의 고전베스트셀러인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이 있다. 소로의 책으로 <소로의 메인 숲> 등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다수 있으니 같이 곁들여 읽으면 풍성한 봄철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메년 봄이 오면 늘 <야생초 편지>를 꺼내 읽었다. 그가 직접 그린 고운 색 입힌 꽃 그림을 보면서 도시 밖으로 나가 고들빼기, 왕고들빼기, 민들레 잎의 차이를 공부했고, 먹어도 되는 봄 들판의 온갖 들풀을 비교하고 직접 채취하여 먹어보기도 했다.


[3월, 8월에 읽는 제철독서]

3월은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는 비무장 만세독립운동을 펼친 삼일절이 있는 달이다. 8월은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광복이 이루어진 달이다. 따라서 3월이나 8월에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책을 읽으면 좋다.


우선 3월에 읽을 책으로 우리나라에서 1948년 최초로 유관순 열사의 전기를 써서 유관순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전영택의 <유관순 전>이 있다.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온 유관순의 오빠와 결혼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조화벽에 대한 책 <조화벽과  유관순>도 추천한다.


우리가 지금의 자유 민주 국가에서 숨을 쉬며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과 온 가족의 재산을 다 바친 다바친 <이회영 평전>, 러시아로 넘어가서 임시정부의 재정 역할을 도운 <최재형> 등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람과 그에 대한 책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늘 어떤 계절이 오면 그에 대한 어떤 책들이 나왔나 살펴보고 읽어보지 않은 책은 주문하여 읽곤 한다.


[4월에 읽는 제철독서]

4월이면 꽃이 더욱 만발해지는 계절이지만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근현대사에 큰 두 개의 사건이 마주하고 있는 달이다. 4월3일에는 <순이삼촌>을 읽어야 한다. 제주 4.3 사건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문학작품으로 알린 책이다. 현기영 작가가 아니었더라면 제주도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은 영원히 땅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제주도에서는 손위 어른들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4월16일은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가만히 있으란 말에 수백명이 그냥 텔레비전으로 쳐다보는 부모들 앞에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참사가 일어난 일이다. 올해로 벌써 10년이 되어 가지만 국가는 여전히 이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세월호 이후 이를 문학으로 승계시킨 많은 작품들이 나왔다. 세월호로 숨진 아이들의 생일 날 생일축하 편지를 써서 낭독하면서 책으로 낸 <엄마 나야>가 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 않으면 읽어낼 수 없는 책이 너무 많아 꼭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날에 맞추어 이런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꼭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가슴에 새기고, 머리에 새기고,  매년 해마다 그 일을 잊지 않아야 하기에, 우리는 책을 읽는다.


[5월에 읽는 제철독서]

5월이면 이제 봄의 절정이다. 모든 나무는 뿌리에서 최대한 물을 끌어올려 나뭇잎을 푸르게 한다. 최근에는 온난화 영향으로 5월이 되면 뜨거운 햇볕에 반팔 차림으로 다닌다. 그럼에도 5월은 여행을 가거나 걷기에 좋은 계절이다. 특히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이 있어 자녀에 대한 책, 부모와의 사랑에 대한 책을 읽으면 좋다. 어린이날에 맞추어서는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면 좋다. 이렇게 순수하게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글을 쓴 책을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그리고 5월에는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날이다. 아직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어보지 못했다면 이번 5월에는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장을 넘기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은 얇고 이야기는 여느 소설처럼 이어지지만 우리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한다. 그 소년이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 형님, 삼촌이기 때문에 그렇다.


[6월에 읽는 제철독서]

6월이면 이제 여름에 들어선다. 나뭇잎 무성한 나무에는 매미들이 종류별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온 동네 시끄럽도록 운다. 이 매미들은 8월이 끝나고 9월이 되어도 짝을 찾지 못하면 죽을 듯이 울어댄다. 무더운 여름에는 추리소설을 읽기를 권한다. 여름이 아니고서는 추리소설을 읽을 당위성을 찾기가 어렵다. 미스터리, 스릴러, 탐정추리물. 나는 잔혹하고 공포스럽고 괴기한 추리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호러물에 가까운 작품들은 제외한다. 정신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장 좋은 것은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영화로도 만들어진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작품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그의 전공이 공학도이기 때문에 다른 추리소설과 차별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런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 <라플라스의 마녀> 같은 작품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추리물이다. 어릴적 동화책으로 말고 셜록 홈즈를 안 읽어봤다면 <셜록 홈즈 시리즈>나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도 정독해보기를 추천한다.


역사적으로 6월은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이 발발한 달이다. 나는 이 전쟁이 너무 궁금했다. 나의 친부도 전쟁 중에 파편을 맞아 등에 흉터가 있었다. 대중목욕탕에 가면 아버지에 등에 난 상처를 직접 볼 수 있었고, 등을 밀어달라고 등을 내밀 땐 그 부분을 손으로 지나쳐 가기도 했다. 그럴 떄마다 마치 내가 총에 맞은 것처럼 움찔움찔했다. 한국전쟁을 다룬 많은 문학작품이 있다. 재미동포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었던 김은국의 <순교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역시 재미동포로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고 있는 이창래의 <생존자> 도 좋다. 나는 해마다 한국전쟁에 관한 책을 계속 검색하면서 책을 사고 읽어 왔다. 중국인 왕쑤쩡 작가가 자료를 수집하여 중국인의 입장에서 서술한, 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부제를 붙인 글항아리 출판사의 <한국전쟁>은 1000쪽 분량이다. 그러나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덩케르크 작전에 비교될만한 흥남부두 피난 과정에 대한 책이 있을 것 같아 검색해서 찾아낸 최순조 작가의 <흥남부두>도 읽었다. 




제철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계절적으로, 어떤 주제를 연결시키고, 그 주제에 맞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어떤 게 있으며, 어떤 순서로 책을 읽을 것인가를 정하고 읽어야 한다. 한 달에 책 읽는 권수가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  역사에 초점을 맞출지, 계절의 변화에 맞출지, 사람에 맞출지 그것은 자유다. 어쨌든 자기만의 기준으로 계절에 맞는 독서를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그 주제에 대한 다른 내용의 책이 출판된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해마다 의식처럼 그 주제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 이것은 용기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용기,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용기, 책을 읽고 변화를 수용하려는 용기, 책을 읽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으로 불의에 목소리를 내고 일어서는 용기. 그런 용기를 위해 제철독서는 반드시 필요하며, 우리는 제철독서를 통해 더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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