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부신 날 Apr 09. 2024

(독서가 취미3) 근데 왜 책을 이렇게 많이 읽지?

책 너무 많이 읽지 말자

[3화. 근데 왜 책을 이렇게 많이 읽지?]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 굳이 교육학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교육철학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린 아이가 어린 시절 보고 집 안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부모가 없고 할머니나 할아버지 또는 형제, 누나, 언니, 오빠가 그 역할을 했다면 부모 자리에는 그 대체자가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보고 배운 것이 무섭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고, 자식을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자연히 저절로 부모따라 책을 읽게 될까, 그런 아이로 성장할까.



독서, 영향, 부모,라는 키워드로 간단하게 검색해봐도 유아기, 아동기에 자녀들은 부모의 독서하는 모습에 영향을 받는다는 기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최근 뉴스에는 부모들의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에 따라 유아기들의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심각하다는 기사도 발견된다. 어찌됐든 부모의 책 읽는 모습은 분명 아이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지금은 다 커버려 밤 늦은 시간이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두 딸 아이들이 초등학생으로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책읽기 습관을 만들어준다며 여름방학 때 책을 많이 읽으면 상을 주는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었다. 목표는 100권이었다. 두 딸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부모의 본을 보이기 위해 아빠인 나도 같이 참여했다. 여름방학이라면 길어야 두 달인데 아이들은 동화책이니 가능할지 몰라도 직장생활을 하는 부모는 쉽지 않은 동참임에 틀림없었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져 방학 때 목표가 100권이었는지, 1년 목표가 100권이었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거실 벽에 큰 종이를 붙이고 두 딸과 아빠의 이름을 적고, 세로로 길게 100개의 칸을 만들어 놓았던 것만 기억이 난다. 그것도 한 해만 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몇 년 간 계속했다. 내가 1년에 100권 이상을 읽기 시작할 때가 그 즈음이었다.



그 전에는 일 년에 50~60권 정도의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일반 직장인이나 평범한 아버지 어머니들보다 독서량의 우위는 확실했다. 주변에서는 도통 책 읽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다.



두 아이는 상을 준다는 말에 시간이 나면 책을 잡고 경쟁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가서 빌릴 수 있는 최대치의 책을 빌려 왔고, 다 읽기 바쁘게 반납하고 또 책을 빌려와 읽고 벽에 붙인 종이에 자신이 읽은 책 제목을 적어나갔다.



그러나 경쟁이라는 것은 과열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효율성을 따지고 목적과 목표가 뒤바뀌기 마련이었다. 목적은 책읽기 습관들이기,였고 목표는 책 100권 읽기 였는데, 아이들에게서 목적은 사라지고 상을 타기 위한 100권 달성 목표에만 집중하는 상황이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얇은 책, 후루룩 넘기기 쉬운 책, 그림이 많은 책을 선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드디어 경쟁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어수룩한 부모였던 나는 아이들이 그런 영악한? 행동을 꿈꿀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언니보다 동생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고 보여주기 위해 다 큰 아이들이 그림책을 빌려올 줄이야.



그래서 뒤늦게 부랴부랴 다시 책은 나이에 맞게, 추천도서로 선정된 것들로만 한정하거나 일정한 쪽수 이상 넘어가거나 하는 기준을 추가했지만, 이미 책읽기 열망은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모가 주는 선물,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더 컸던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없었다,라는 표현보다는 텔레비전을 의도적으로 두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아이들은 늘 불만이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니.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하지만 나와 아내는 아이들 앞에서 늘 저녁에 집에 오면 텔레비전 대신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의 줄기찬 요청에도 불구하고 막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우리는 텔레비전을 설치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할 수 없이 같이 책을 읽었다. 그것이 고문이었을까, 아동학대였을까. 아이들은 물론 친구 집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서 어떻게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봤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제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빠인 내가 기존 직장에서 나와 복지며 상담을 하고, 중고등 대입 논술 방과후 수업을 하며 불안정한 가정 경제 체제를 만들었을 때, 아내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었다. 아침 일찍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소문난 공부방으로 아이들을 저녁까지 가르치고 시험기간에는 밤이고 주말이고 없이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그만 발목 골절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터졌고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불면증이라는 정신적 장애물에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우리집에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시청할 수 있게 된 건은 아내의 불면증 때문이었다. 그때는 이미 아이들이 다 커서 텔레비전에 목을 맬 나이도 지난 상태였다. 쉽게 잠들지 못한 아내를 위해 텔레비전 연결을 했고, 아내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큰 딸은 바이올린을 전공하여 아이들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레슨 강사님이시다. 그래서 책 읽는 것과는 아주 무관한 직업군에 속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동생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고 아빠따라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나도 기대를 접었다. 레슨하러 가기 전까지 늦잠을 자는 딸이 조금만 일찍 일어나 책도 보고 자기계발을 하면 좋으련만, 큰딸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둘째 딸은 유아교육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이제 인턴을 하는 중이다. 다행히 둘째는 어른이 되면서 책 읽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빠인 나와 같은 코드로 같은 책을 서로 사는 경우도 생겼다. 그래서 책을 살 땐 아빠한테 집에 책이 있는지 물어보고 사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기대만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누구에게 추천 받았는지 좋은 책이라고 한 권 들고 와서 엄마보고 꼭 읽어보라고 하더니, 아직 본인은 한 달 동안 완독을 못해내고 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다보니 출퇴근하기만도 지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취미가 독서라면,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독서'라고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책을 얼마나 읽는 것일까. 독서가 취미가 되려면 책을 읽는 일정 권수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일까. 물론 이건 가상 질문이긴 하지만 이런 질문에 이것이 정답이오, 하면서 한 달에 몇 권 이상 읽어야 독서를 취미로 인정해줍니다, 하는 것은 없다. 취미라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이니, 그것이 일주일 동안 몇 번 하는 것이냐, 아니면 한 달에 두어 번 하는 것이냐, 한다면 한 번에 몇 시간 동안 하는 것이냐 등 조건을 달고 기준을 정하려고 한다면 끝도 없는 변주가 가득할 것이다.



나는 작년까지 일년에 거의 150권에서 180권 정도를 읽었다. 독서후기도 50개를 작성했다. 이 정도면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읽는 독서의 양은 너무 많다. 일반인이 독서를 취미로 한다고 할 때 한 달에 두 권 정도만 읽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2주에 한 권 정도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독서토론 모임도 2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모임을 갖는다. 책이 두껍거나 어려우면 2주에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가정주부로서, 아이들을 육아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실 한 달에 한 권을 읽어도 취미가 독서일 수 있다. 



책 읽는 것이 숙제가 아닐 때, 내가 책 읽는 시간을 간절히 소망할 때 그것은 취미로 온당한 자리를 찾는다. 한 달에 몇 권을 읽었느냐, 얼마나 어려운 인문학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제 책 읽는 권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건강으로 인해 30년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출근 개념이 없어지고 보니 오히려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더 어렵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출퇴근 시간이 아까워서 지하철에서 어떻게든 책을 읽어왔다. 집중해서 한 시간 동안 독서한다면 꽤 많은 분량을 읽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몸이 피곤하면 책을 읽다가 존다. 앉아서 갈 때는 더 많이 존다. 



내 취미는 독서다. 책을 많이 읽어서 독서가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이 즐겁고,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에 나는 자랑스럽게 내 취미는 독서라고 얘기한다. 



한때는 일년에 200권을 넘기려고 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200권을 넘겨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한 권씩 읽고 3년만에 1천권을 읽었다고 한다. 인생이 바뀌었다고 책도 내고 강연도 하고 다닌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읽은 책을 다 합치면 만 권도 넘을 테지만 내 인생이 얼마나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책을 많이 읽지 말자. 책을 허겁지겁 읽지 말자.

지금은 이것이 책을 향한 내 마음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7~8만 권이 한 해에 출판된다고 한다. 아직 다 읽지 못한 고전문학과 세계문학 작품이 수두룩하다. 거기에다 매년 쏟아지는 신간 중 읽고 싶은 책들은 차고 넘친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다 못 읽을 책이다.



이어령 선생님이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책을 주문하고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설렜다는 글을 읽었을 때 이 분이야말로 진정한 독서가라고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그렇다. 나는 늘 책이 궁금하다. 오늘도 나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 우울도, 내 공황장애도 책을 읽으면서, 책 읽는 기쁨 속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얼마나 많이 읽었어?

일 년에 몇 권 읽어?


이런 질문을 던지지 말자.


이 책 봤어? 참 좋더라. 하며 선물해주는 손길이 되자.

책 권하는 사람. 참 좋은 사람이 되자.

이전 02화 (독서가 취미2) 책 읽는 것이 취미가 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