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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날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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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Apr 16. 2024

세월호 10주기 기억시

잊지 않기 위하여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써둔 시 몇 편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10년>

10년이면 계절이 마흔 번 몸을 뒤척이고

10년이면 강산이 두 번 색을 바꾼다는데

10년이 지나도 바다는 여전히

모두를 품은 채 그대로 숨을 쉬네


10년이면 소년이 커서 햇살이 되고

10년이면 소녀가 커서 꽃잎이 되고

10년이면 아픔도 자라 무성한 숲을 이루는데

우리 아이들은 저기 저곳에서 아직 아이로 있네

그 이름표 그대로

아직 내 눈엔 강아지 같고 병아리 같네


나는 늙어가는데

너는 싱싱한 젊음 그대로 있구나

어쩌면 그것이 더 좋을 것이야


같이 늙어가는 것보다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너는 내 아들, 너는 내 딸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


10년이 열 번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을 내 마음


아들아, 딸아,

그곳은 아름다우냐

이제 곧 나도 따라가리니

우리 거기서 만나자


(2024년 4월16일 요나단 이태훈)



<고래>


영문도 모른 채

죽은 듯 잠자던

고래 한 마리


등짝은 찢기고

가슴팍은 할퀴어졌는데


눈물처럼 흘렀던 핏물은

마르고 엉켜

햇살에 부서지고 마네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하나 둘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꽃이 되어 잠기네


엄마가

천년 동안 기다렸어


친구들이

만년 동안 기다렸어


고래야

눈을 떠 봐


이제

밖이야


(2017.03.23. 세월호 인양되던 날,

요나단 이태훈 씀)



<기다려선 안 되는 것들 앞에서>


이름만 바람에 나부끼고

그 잔해마저도 바람에 쓸려가고

이제 남는다는 건 무언지

기다린다는 건 무언지

그 생각조차 가물거려


오늘은 바람이 불어도 물러서지 않고

남겨지지 않으리라

기다리지 않으리라

입술 깨물며

그렇게 물러서지 않으리라


아,

삼월은 산수유처럼 흩어지고

사월은 개나리처럼 몸을 흔드는데

저기 언덕 넘어

맹골수도 바람이 아직도 거세게 밀려오는데

이름들은 형체도 없이 바람이 되고 마는데


아,

의연히 마주서서

그대로 바람의 칼날을 맞으리

이름의 칼날을 맞으리

무릎 꿇지 않으리

뒷걸음질치지 않으리


이젠,

죽어 이곳에 다시 봄꽃으로 피어나는 것

그자리에서 그곳을 바라보는 것

기다리지 않고 지켜내는 것


봄은

바닷속 봄은 여전히

깜깜하고 여전히

춥기만 한데

내 마음처럼.


(2017.03.18.  요나단 이태훈 씀)



<4월16일>


하루가 천 년이면

일 년이면 삼십육만오천 년

형틀에 묶여 하루에 천 대씩

일 년 동안 삼십육만오천 대를 맞았다

하루에 한 번씩 기절을 했다


살갗 터진 곳에서 피어난 노란 꽃

둘이 겹쳐져 하나가 되는 나비들은

꽃보다 먼저 피는 개나리의 함성으로

붉은 산하를 노랗게 물들인다


끝없이 뻗어나가는 성난 뿌리가 되고

산을 뚫고 뻗쳐 내려오는 활화산의 용암이 되고

하늘에서 소리치는 천둥이 된다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

결코 잊을 수 없는 소리들이 되어

거대한 바다에 별처럼 화석으로 박혔다


바다는 출렁이고

세월은 흘러

아이는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된다


세월은 흘러도

화석은 떠내려가지 않는다


(2015.04.16. 요나단 이태훈)

세월호 참사 삼십육만오천 년을 기억하여


9월12일이면, 진도 앞바다에, 팽목항에 슬픔을 정박한 지 어느새 150일이 됩니다. 하루가 영원 같은, 실핏줄 투명해진 아픈 영혼들을 생각합니다. 어서 빨리 모든 것이 걷히고 제 색깔을 찾고 다시 하나의 풀잎, 하나의 웃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해무>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어두워져, 이제는 너나 구분이 없어졌구나. 바다 건너 저편에는 사랑하는 부모님, 아들, 딸들이 조용히 누워 있는데, 처음에 해무는 내 사랑하는 이들을 받쳐주는 사랑이었고, 진실이었는데,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점점 어두워져, 이제는 너나 구분이 없어졌구나. 너와나는 언제부턴가 피아가 되었고, 서서히 이편과 저편으로, ‘너 와 나’가 되어,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또 바다는 침묵에 빠졌구나. 침묵은 영혼의 굶주림 속에 하나둘 지쳐갔고, 가족을 찾아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또 다른 생명들도 숨을 헐떡이며 지쳐갔고, 가라앉은 해무는 점점 커지고 점점 부풀어 올라 이제는, 너는 나에게 숨겨지고, 묻어지고, 변색되고, 다시 채색되고, 너를 알아볼 수 없는 나,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너가 되어, 아, 그렇게 돌아오진 않겠지. 저편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걷히겠지. 걷히겠지. 그렇게 가을은 오고 또 눈발이 해무를 뚫고 바다 속으로 바다 속으로 네 명찰을 찾아 얼굴과 얼굴을 부비고 황홀한 키스를 하겠지. 아, 내 사랑이여. 이제는 돌아오려무나. 안개를 걷고 바람처럼 내게 안기려무나. 하늘의 티끌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라지기 전에.


(2014.09.12. 하루가 영원 같을 150일째에. 작은 시인, 요나단 이태훈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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