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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May 02. 2024

(책꼬리 단상) 걷는다는 것

걷는 것은 명상의 선물을 준

[걷는다는 것]



걸으면, 하나의 공간이 펼쳐지고, 비로소 내 삶의 고운 감촉을 인식할 수 있다. 마치 작은 뚜껑 문을 통해 또 다른 세상으로 내려앉는 기분. 나의 세상. 마오리족은 21세기에 맞게 그들의 어휘를 다듬기 위해 일련의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그들의 언어로 자폐증은 ‘타키와탕가’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뜻이다. 나는 마오리족의 정의에서 내가 평생토록 갈망해온 무언가, 즉 남들에게 맞는 규격에 억지로 나를 끼워 넣는 게 아니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인식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고 싶다는 끊이지 않는 갈망을 발견한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 떠돌이 부모를 둔 아이처럼,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 공간을 갈망한다. 하지만 내 시야 밖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받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늘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잊혀진 대륙이었다. 바로 집이다.



이렇게 늦게라도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걷기를 하면서, 이것이 또 다른 명상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걷기도 명상과 똑같은 선물을 준다. 내 두뇌는 걷기에서 생겨나는 문제들(경로를 찾고, 아픈 다리와 허기와 목마름을 견디고)에 골몰하고, 내 의식의 자아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다른 사고 과정들은 조용히 수면 아래에서 유지된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캐서린 메이 저/이유진 역)




아침마다 걷기를 합니다. 천천히 걷기도 하고 빨리 걷기도 합니다. 모자를 쓰고 귀에는 이어폰이나 작은 헤드폰을 착용합니다. 저는 최근에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달린다는 표현을 쓰기엔 너무 미약한 수준입니다. 늘 걷기만 하다가 갑자기 좀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평소 걷기운동 하던 길을 그냥 가볍게 달려보았는데 크게 숨차지도 않고 견딜만한 정도로 상쾌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침 걷기 운동할 때, 갈 때는 뛰어가고 돌아올 때는 걸어오는 패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봐야 30분에서 40분 내외의 시간입니다. 적으면 3000보에서 많으면 5000보입니다. 걷기만 할 때보다 뛰어갈 땐 바람을 가르며 헤쳐나가는 기분이 듭니다. 허파 안으로 상쾌한 바람이 양껏 들이차는 것 같습니다. 약간의 숨참으로 인해 걷기를 마치고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고르면서 조금 헉헉대는 그 느낌도 좋습니다.



오늘 인용글로 올린 부분을 읽으면서, 걷기를 하면서 명상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눈길이 갔습니다.




"걷기를 하면서, 이것이 또 다른 명상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걷기도 명상과 똑같은 선물을 준다. 내 두뇌는 걷기에서 생겨나는 문제들(경로를 찾고, 아픈 다리와 허기와 목마름을 견디고)에 골몰하고, 내 의식의 자아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다른 사고 과정들은 조용히 수면 아래에서 유지된다."




걷기를 할 때 저는 주변에 새로 나온 꽃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못 보던 꽃을 발견하면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다 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어떤 식물인지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으로는 좋은 것인데, 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크게 좋은 자세는 아닙니다. 그래서 새로운 꽃 찾는 것은 조금 빈도를 줄이고 운동답게 이왕 걷는 거 좀 보폭도 크게 늘이고 힘차게 걷는 연습을 합니다.



빠르게 큰 보폭으로 성킁성큼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걸어야 유산소 운동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은 정말 그렇게 걸었습니다. 약이 똑 떨어져서 병원에 가야했습니다. 늦게 가면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일찍 가야 하는데 오늘은 그만 늦잠을 자서 시간이 부족했숩니다. 그래서 그냥 빠른 걸음, 큰 보폭으로 걷기에만 신경을 쓰고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명상의 단계에 들어선 것처럼  온갖 잡념의 꼬리물기가 사라졌습니다. 오직 걷기 위한 들숨과 날숨만 저를 지배했습니다. 글에서 말한 명상의 낮은 단계의 수준을 조금 경험했다고나 할까요. 암튼 걷기만으로 명상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달리기를 하면 이 부분이 더 강화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달릴 때 다른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기는 어렵습니다. 머리에 헤드폰을 쓰고 있으면 달릴 때 거추장스럽습니다. 잘 판단해야 합니다. 달릴 땐 목에 걸고 달리고 걸을 때 헤드폰을 써야 합니다. 이젠 아침 시간이어도 날씨가 금방 20도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헤드폰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그럴 땐 헤드폰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이어폰은 아주 좋은 품질의 것이 아니면 고음 음역대에 귀를 아프게 하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저음도 뭉개져 들립니다. 그래서 좋은 이어폰을 사면 좋은데 당연히 좋은 이어폰은 가격이 비쌉니다. 그래서 가성비 좋은 이어폰을 찾느라 가끔씩 쇼핑 정글을 헤매이곤 합니다. 음악은 걷기 운동을 하는 동안 즐거운 음악을 듣는 효과도 있지만 외부 소리를 막아주는 기능도 합니다. 음악은 배경으로 녹아 들어가고 생각은 오직 달리는 내 발걸음에만 집중됩니다.



저자는 자폐증 환자입니다. 그녀는 가족의 동의를 구하고 걷기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찾아 여행합니다. 꾸준히 사색하고 자신 또는 타인과 부딪치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다시 미안해하고 희망을 가져보고 또 그런 자신을 향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요동치는 감정과 정서의 혼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자폐증을 앓는 자신의 자신됨을 놓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정신과의원 병원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제 근로자의 날이라 하루 쉰 탓인지, 제가 조금 늦게 도착한 탓인지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가 많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저와 이름이 같은 환자분이 있어서 좀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황장애 약을 먹기 시작했으니 어느새 7개월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3~4개월이면 약을 끊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내 속의 나는 아직도 내가 모르는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지난 2주는 평온했습니다. 비상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잠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가슴이 짓눌리고 힘들어 혼자 몰래 호흡을 조절하며 쇼파에 누워 있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음악은 저에게 약과 같은 존재로 다가옵니다. 헤드폰을 끼고 쇼파에 누워 불안정한 가슴에 한쪽 손을 얹고 기도하며 눈을 감으면 호흡은 조금씩 안정되고 저는 스르르 잠에 빠지기도 합니다.




걷는다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옆으로  걷기도 힘들고 뒤로 걷기도 힘듭니다. 걷는다는 것은 앞쪽을 향한다는 시선의 관점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않고 옆을 보면서 앞으로 걷기는 힘듭니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어떤 장애물에 의해 앞으로 간다는 행위가 막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을 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면서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걷는다'라는 말은 현재형이면서 동시에 미래형 동사인 것입니다.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숭고한 뜻이 담게 있으며, 미래를 직접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 적극적인 주체성의 표출입니다




걸을 땐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갑니다. 결코 두 걸음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설령  뛰어갈지라도 한 걸음이 기본 단위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걸음 인생입니다.그래서 걸으면서 평등함을 깨우치고 겸손을 배우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천천히 한 걸음씩 한 번에 하나씩 성취해나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5월의 시작입니다. 그동안 퇴직하고 생활비  명목으로 번 돈은 이번 달에 사용하면 바닥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제 실재적인 경제적 문제 앞에 마주 섰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것임을 압니다. 천운이라고 하나요.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만 저는 이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 걸음씩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만 소망하는 것은 이 경제적인 문제가 저를 다시 불안의 늪에, 공황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방금 진료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지난 번 방문 때 약을 조금 올려 조정했는데 그 약으로 이번 2주간은 비상약도 먹지 않고 대체로 평온하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 약은 그대로 두고 수면제를 조금 줄이는 것을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취침하기 직전에 먹는 약 3알 중 수면제에 해당하는 알약을 반으로 쪼개서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수면제 반 알 먹기의 한 걸음입니다. 먼저 수면제는 반 알만 먹어보고 잠이 잘 자진다면 계속 반 알씩 먹어서 수면제를 줄이는 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부디 성공하여 2주 뒤에는 수면제 반 알 처방으로 바뀌길 소망해봅니다.


오늘은 병원에 와서 진료를 기다리며 긴 글을 썼습니다.


걷기, 달리기, 명상, 치료 그리고 글쓰기가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같은 선상에 놓인 다른 이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물가에 피는 아름다운 창포꽃과 같은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책과 이야기라는 생명의 젖줄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아름다운 하루가 되길 축복합니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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