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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10. 2024

(책꼬리단상) 중간에 그만 둘 용기

불안의 책

<중간에 그만 둘 용기>



나는 무언가를 끝낼 때마다 경악한다.경악하고 괴로워한다.나의 완벽주의 기질로는 아무 일도 끝내지 말아야 한다. 아예 시작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종종 그걸 잊고 뭔가를 또 시작한다.나의 성취는 나의 의지를 행동에 옮긴 결과가 아니고 내 의지가 항복한 결과다.


시작할 때는 더 이상 생각할 힘이 없어서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에 그만둘 용기가 없어서 끝까지 간다. 이 책은 나의 비겁함 그 자체다.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200쪽)




사실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는 말이냐며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늘 반듯한 경로로만 지나가지 않는다. 갑자기 탈선하기도 하고 노선을 변경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중간에 중도 포기하는 용기가 없어서 끝까지 가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다.



나는 군 생활 중에 두 번 그런 경험을 했다. 첫 번째는 대대본부 태권도 대표로 뽑혀서 전군 태권도 대회에 참가한 일이다. 나는 군에서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 글씨를 정자체로 잘 쓴다는 이유로 행정병으로 뽑혀갔다. 처음에는 배급부서에 소속되었는데, 행정부 작전과 하사가 나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인사계장과 얘기하고는 나만 좋다면 옮겨가 좋다고 했다. 나는 행정병이 싫을 이유가 없었다. 누구나 편하게 행정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사무실에서 보초 명단을 짜거나 대대본부에서 내려오는 매복 작전같은 것을 감독하는 행정병이 되었다. 그런데 작전과 행정병이 되어 대대본부를 들락거리다  우연히 대대장 눈에 띄어 갑자기 대대장 당번병으로 차출되었다.


완벽주의자였던 대대장은 안경을 끼지 않고 담배를 피지 않는 당번병을 기준으로 삼고 있었는데, 두 가지 조건을 다 만족시킨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고, 나는 대대장의 일곱 번째 당번병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대장에게는 숨은 조건이 하나 더 있었다. 커피를 맛있게(자기 기준으로) 잘 끓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 집에서 프림 둘, 설탕 셋 같은 기준으로 끓여주는 커피를 마셔만 봤지 내가 스스로 커피를 끓여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맥심 커피로 대대장 입맛에 맞는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커피 문화 자체를 몰랐다고 해야 할까. 하여튼 음식을 만드는 데는 전혀 소질이 없었다. 대대장은 전산실 아가씨들에게 배우라며 별도의 과외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마음에 드는 커피를 끝내 완성하지 못 했고, 끝내는 6개월 만에 대대장 당번을 그만 두게 되었다. 배운 것이라곤 커피가 식지 않게 커피를 타기 전 뜨거운 물로 찻잔을 한 번 헹구고 커피를 타야 한다는 것. 그 다음 커피 맛이라는 개인적인 취향 부분에 들어가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대대장 당번에서 잘리자 나는 중대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회색 군인이 되었다. 날마다 행정실로 갔지만 내 자리였던 작전과는 이미 다른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나는 중대장 당번병이 휴가가면 대타로 중대장 당번병을 했고, 교육자료를 만드는 일이 있으면 함께 작업자로 참여하는 등 행정실에서 그냥저냥 이런저런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중대장이 나를 중대장실로 불렀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대뜸 대대 태권도 대표로 참가하라고 했다. "태훈아. 너밖에 보낼 사람이 없다." 사실이었다. 다들 자기 업무가 있었고 다들 바빴다. 나만 할 일이 없어 노닥거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중대 대표, 대대 대표로 사령부 소속 태권도 대표 후보로 멀리 경기도 북부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파견 첫날, 그곳 대대장이 모인 장병들에게 훈시를 하면서, 양손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밀라고 했다. 앞으로 5개월간 아침 새벽부터 저녁 시간까지 오직 태권도 훈련만 받게 될 것이다. 지금 자대로 돌아가겠다고 손을 들면 바로 보내주겠다. 주먹에 돌이 박힌 흔적이 없는 약한 병사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손을 들어라. 자대에서도 되돌아왔다고 절대 혼내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손을 들고 자대로 다시 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들 자대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일손이 필요한 상황이니 부끄러워하지 않고 손을 들 수 있었다. 어차피 사령부 대표로는 40명의 선수만 나갈 수 있었다. 그날 모인 200여 명의 후보들은 어차피 40명 이내로 떨어질 때까지 다 자대로 가게 될 사람들이었다.



나는 손을 들지 못했다. 한 마디로 용기가 없었다. 앞으로 닥쳐올 고강도 훈련의 냄새가 사방에서 밀려 왔지만 나는 약하고 약한 내 주먹을 바라보면서도 손을 들지 못했다. 그건 중간에 그만 둘 용기가 없어서였다.



페루난두 페소아처럼 용기, 그만 둘 용기, 그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40명 대표가 되어 전군 사령부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는 영예를 누렸다. 나는 군인이 되면 누구나 거쳐가는 태권도 검은띠를 한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따낸 사람이었다. 다리찢기를 하지 못한 군인은 없었는데 겁쟁이였던 나는 끝내 다리찢기에 실패했다. 다리를 찢어야 발차기를 할 때 발이 머리 위까지 쭉쭉 올라가는데 나는 겁이 나서 도저히 내 다리를 찢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2군 사령부 태권도 대표로 참여하였고, 복귀한 뒤에는 태권도 교관이 되어 후임 병사들의 태권도 훈련을 맡는 영예를 누렸다. 이것이 다 중단할 용기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중간중간 너무 견디기 힘든 훈련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버티고 싶어서 버틴 것이 아니라, 어쩔 도리가 없어서, 포기할 용기가 없어서 끝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 내가 장하고 대견하기는 하지만, 내 양심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랬기에 나는 군에서 후임병을 가르치는 태권도 교관도 할 수 있었고, 태권도에 대해 좀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용기 없는 행동도 인생에 필요하다.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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