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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독서] 23.독서모임 발제문이 무서워요!

by 봄부신 날

두 번째로는 발제문을 만들되 책을 다 읽을 즈음에 공개하는 것이다. 모임을 하기 바로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공개하는 것이다. 모임에 참여할 사람은 이미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발제문이 공개되어도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모임에 참석하러 가면서 대충 발제문을 읽어보고 느낌을 정리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참여자도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어 좋고, 진행자도 발제문 순서대로 진행할 수 있어 좋다. 다만 모임 전 발제문이 공개되어 있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모임 전 발제문이 공개되어 있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취미가 독서] 23. 독서토론, 꼭 해야 하나, 발제가 무서워요

앞선 22화에서 독서모임에 나가 책 친구를 만들라는 말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책 친구가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술 친구는 몸을 망치게 만들고, 나이가 들수록 동창 친구는 열등감을 만든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책 친구는 영혼을 살찌우고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독서모임에 따라 독서토론 형식으로 진행하고 발제문을 올림으로써 독서의 질을 높이는 곳이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발제문이 있는 독서토론 모임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시험 컴플렉스, 숙제 노이로제 같은 질병에 걸린 것처럼 발제문이 마치 시험 치는 것 같다며 몸서리를 치는 분들이 있다.

보통 독서모임을 하는 동아리들은 1년의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새롭게 다가오는 새해에 읽을 도서 목록을 추천 받고 확정하는 일을 하느라 바빠진다. 어떤 책이 정해지느냐에 따라 회원의 참여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깊이 있고 묵직한 인문 도서만 선정하면 독서를 막 시작한 초보 독서가들은 쉽게 따라가지 못해 떨어져 나간다. 그렇다고 말랑말랑한 자기계발서만 선정하면 묵직한 독서를 선호하는 분들은 너무 가볍다며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강약 중간약 뭐 이런 식으로 묵직한 도서와 가벼운 도서, 소설류와 에세이류, 과학 도서와 심리학 도서, 철학 도서와 역사서 등을 골고루 섞어 회원들이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간혹 특정 장르의 도서만 지정하는 독서모임도 있다. 재테크 관련 도서만 가지고 공부하듯이 하는 독서모임도 있고, 인문학 도서만 다루는 독서 모임도 있다. 심리학만 다루는 곳도 있고, 철학만 다루는 독서 모임도 있다. 자기가 그런 특정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그런 곳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하고 싶다면 특정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함께 선정하여 읽어나가는 독서 모임이 가장 무난하다 할 것이다.

발제문은 '어떤 주제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갖춰지는 형식문'이라고 정의된다. 발제문이 반드시 독서 모임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회의를 할 때에도 많이 사용된다. 발제문이 필요한 이유는 회의를 매끄럽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다. 가령,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회의를 한다고 가정하면, 무작정 모여서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공휴일로 지정했을 경우의 장점, 지정했을 경우의 부작용 및 단점 등 소제목을 붙여서 하나씩 진행해나가면 훨씬 의견도 많이 나오고 집중도 잘 된다. 독서 모임의 발제문도 이와 같다. 책을 다 읽고 모였으니 돌아가면서 다 읽은 느낌을 한 마디씩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며, 주인공이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다른 결말로 이끌어 갈 수는 없었는지, 내가 작가라면 주인공 캐릭터를 어떻게 했을까 등 생각할 수 있는 제목들을 뽑아내고 이를 하나씩 던지며 모임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발제문은 통상 책을 추천한 사람이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책이 선정되도록 추천한 사람은 이미 그 책을 읽어본 사람일 것이다. 물론, 전체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다른 회원이 자기도 읽었으니 발제문을 만들어 보겠노라 하면 두 사람이 각자 만들어 서로 합쳐도 좋을 것이다. 모임의 시간에 따라 발제문의 깊이와 개수가 달라질 수 있다.

발제문을 언저 공개하느냐도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다.

만약 이달에 읽을 책이 러시아 문학의 대가 고골의 <뻬제르부르그>라고 가정해보자. 이 책은 대부분 단편집으로 전체 소설을 읽고 발제문을 만들기가 어려운 책이다. 예를 들어 그 중에서 단편 <코>만 분리된 책이 있다고 가정하고, 발제문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가장 먼저, 책을 소개하면서, 발제문을 같이 공개하는 경우이다.
발제문을 공개하면, 회원들은 책을 읽으면서 발제문에 어떤 말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 이러한 독서는 초보 독서가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는 것과 어떤 주제나 문제를 늘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은 다르다. 깊이도 달라지고 넓이도 달라진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이나 사고가 발제문에 묶이는 수가 있다. 반드시 그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좋을 텐데, 발제문이 공개된 까닭에 다른 방향으로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 고수라면 자신의 방식대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발제문의 대한 답변도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름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에게는 발제문의 선공개 방식이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건드려주기 때문에 더 확장되는 독서를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분들은 다양한 다른 자료나 다른 책들을 함께 읽어 발제문을 통한 나눔이 매우 깊고 풍성해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발제문이 공개되면 마치 시험을 치르는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의 주입식 교육이 낳은 좋지 않은 결과다. 발제문에 꼭 답을 적어야만 된다는 강박에 빠져 시험 문제를 풀 듯 모범답안을 만들어 오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발제문 선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 참여하는 회원분의 수준을 견주어보아 진행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로는 발제문을 만들되 책을 다 읽을 즈음에 공개하는 것이다. 모임을 하기 바로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공개하는 것이다. 모임에 참여할 사람은 이미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발제문이 공개되어도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모임에 참석하러 가면서 대충 발제문을 읽어보고 느낌을 정리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참여자도 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참석할 수 있어 좋고, 진행자도 발제문 순서대로 진행할 수 있어 좋다. 다만 모임 전 발제문이 공개되어 있는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발제문을 만들되 모임 전까지 비공개로 하는 것이다. 발제문은 작성자와 모임 진행자만 공유한다. 모임 진행자는 즉석에서 발제문에 따라 대화를 이끌어간다. 참여자 역시 즉석에서 던져지는 발제문의 주제나 질문에 대답을 한다.

모임 전까지 비공개로 숨겨둘 경우, 시험 컴플렉스가 있는 분들은 강박을 가지지 않아서 좋다. 다만 즉석에서 발제문이 알려지기 때문에 책을 읽어온 분들의 독서 내공 수준에 따라 대화의 깊이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이때는 모임 진행자의 완급 조절과 끊고 이어주는 리더십에 따라 모임이 풍성해질 수도 있고 빈약해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발제문의 공개 시기에 따른 장단점을 알아보았다. 발제문을 만들어서 모임을 가지면 모임 진행자는 발제문 순서따라 진행을 하기 때문에 모임이 알차고 뭔가 책을 읽은 후 제대로 모임을 했다는 성취감을 가질 수 있다. 발제문 없이 오로지 진행자의 인도에 따라 가다보면 가끔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발제문으로 모임을 하면 다소 딱딱한 듯 보여도 깊이 있는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모임의 마지막 또는 처음에 통상 전체적인 느낌을 말하는 시간을 주기 때문에 자유토론 형식도 포함되어 분위기가 마냥 딱딱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줌 등으로 온라인 독서모임을 한다면 가능한 발제문을 만들어 모임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참석자 중에는 빌런도 있고, 까칠맨도 있고, 소심녀도 있고, 예민남도 있다. 어떤 참석자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리더를 제쳐놓고 산으로 모임을 이끌어갈지 모른다. 모를 때는 기준을 세우고 이끌어 가는 것이 가장 좋다.

발제문이 있는 독서모임을 마냥 두려워만 하지 말고, 발제문이 있어 더 안정적인 독서 모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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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버전으로, 제가 작성했던 고골의 <코> 발제문을 올려 봅니다.

(줄거리 및 분석)
단편소설 [코]는 일종의 변신 이야기입니다.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다가 빵 속에 코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발사는 빵 속의 코를 다리 주변에 버리려다 경찰한테 들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갑자기 안개 속으로 사라집니다.

한편, 8급 관리 꼬발료프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자신의 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승진 청탁을 하기 위해 지방에서 뻬쩨르부르그로 올라온 장교입니다. 코 없이 사교계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죠.

크게 당황한 꼬발료프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경찰국장을 만나러 가다가 우연히 5급 관리 행세를 하는 자기 코를 보게 됩니다.

고골의 [코]는 대표적인 환상소설로서 현실과 환상의 만남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고골은 몸의 일부인 코를 이용하여 인간 세계의 불완전성과 비논리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몸의 일부가 서사적 글쓰기의 대상과 동기가 된다는 것은 고골의 상상력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코가 어느날 갑자기 떨어져 나가 '허위와 환영의 도시 뻬쩨르부르그'에서 관리 행세를 하다가 다시 코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19세기 소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코'는 신체의 일부이지만, 교만의 상징 같은 개념이 있습니다.

'콧대가 높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도 세상의 역사는 변했을 것이다~~ 등등

이번 소설 [코]에서 계급과 신분을 중시하는 8급 소령 꼬발료프는 자신의 코가 자기보다 높은 신분인 5급 관리 행세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 그럼 코를 읽고 함께 얘기를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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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골의 '코'에는 '코'와 관련된 사람?이 세 명 나옵니다.
가장 먼저,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입니다. 그는 아침 식사를 하려다 빵 속에서 충격적인 '코'를 발견합니다.

두 번째는, 코를 잃어버린 8급 관리 꼬발료프입니다. 그는 소령으로 불리기를 더 원했죠.

세 번째는, 잃어버린 코가 5급 관리 행세를 하는 '사람이 된 코'입니다.

토론 1.
작가가, 현실과 환상, 환상보다 더 한 현실 세계를 풍자하기 위해 '코'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반드시 코였어야 했는지, 코 말고 다른 신체 부위는 없었는지,에 대한 탐구)

토론 2.
세 명에게 던져지고, 사라지고, 존재하는 '코'는 각각 무엇을 상징하며, 어떤 메시지를 주나요? 1836년의 근대 사회는 물론, 지금 이 책을 읽는 현대 사회로 옮겨온다면,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나는 세 명 가운데 누구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나요?

보너스 토론.
꼬발로프는 경찰로부터 자신의 코가 분명한 분실물을 전달 받지만, 코를 붙일 수 없게 됩니다. 의사까지 불러보지만 의사는 그냥 두는 게 낫겠다며 포기합니다. 8급 관리는 왜 자신의 코를 붙일 수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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