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독서] 22. 책 친구를 찾아라 (함께 읽어야 제맛이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나면 친구에게 얘기를 해준다. 어디 식당 무슨 음식이 정말 맛있더라.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준다. 식당 위치도 지도 링크해서 보내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타인도 같은 마음으로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것이 음식이든, 명소든, 영화든 그리고 책이든.
혼자 책을 읽고, 다 읽고 받은 감동, 도전, 생각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만큼 슬픈 독서는 없다. <난생처음 독서모임>의 저자 김설은 책을 다 읽고 느껴지는 전율을 혼자만 아는 건 죄악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좋은 건 같이, 여러 사람과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재미를 독식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사람의 성향은 그렇지 않다. 김설 작가는 그 재미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만들고, 함께 공통된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상처와 실패를 얘기하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 그가 7년째 독서모임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다.
내가 첫 독서모임을 만든 곳은 직장이었다. 모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독서동아리 모집 안내글을 전체 이메일로 띄웠고, 첫 모임에서 1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 독서모임은 내가 퇴직할 때까지 7년간 순항했다.
그 사이 많은 사람이 퇴사하고 입사하고 하면서 인원 변동은 많았지만, 내 나이가 입사할 때부터 제일 많았던 장유유서의 이점과, 이미 다수의 책을 낸 작가라는 거부할 수 없는 브랜드와,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독서가라는 장점들이 흔치 않은 직장 내 독서모임을 7년 동안 이어갈 수 있었다. 직장 규모가 크지 않고 20명에서 30명 내외를 오르내렸던 수준이었기 때문에 10명의 독서인구는 그 비중이 매우 큰 편에 속했다. 그것도 꾸준히 그렇게 이어간다는 것도 사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회사 업무가 바쁘고 늘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독서 모임은 꼭 챙겼다. 당시 회사에서는 내 자리 뒷편에 나만의 책을 꽂을 수 있도록 개인 서가까지 만들어주었다.
독서동아리를 회사에서 하다보니 업무적으로 관계가 없으면 친해지기 어려운 부서 사람과도 친해지는 계기가 되어 나중에 업무 지원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기도 했다. 독서동아리 모임에는 회사 대표를 제외한 임원들 대부분이 이 모임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였다. 보통 임원이 참석하면 일반 사원은 잘 참석하지 않는데 반해 독서 동아리는 젊은 여사원들도 많이 참여했다. 독서모임에서 평등하고 수평적 관계에서 모임이 진행되다 보니 업무적으로도 다들 관계가 개선되어 업무 효율이 더 좋아지지 않았나 혼자 짐작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비와 벌금이 독서모임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자발적인 회의를 통해 책을 완독하지 못하고 참석할 경우 5,000원, 개인적인 사유는 물론 회의나 출장 등으로 정해진 모임날에 불참할 경우 5,000원 등 벌금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모임 통장이 두둑해졌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동아리 지원금으로 인당 월 만 원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매달 풍성한 저녁을 먹으면서 모임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거의 매달 15권 내외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내가 다음달 책을 추천하면 대부분 그 책으로 정해지곤 했다. 그러나 해가 바뀔수록 젊은 친구들이 추천한 신간 책들이 선정되면서 나 역시 책을 읽는 범위가 다양해져 좋은 경험이 되었다. 책 선정은 각자 후보 책을 올리면서 왜 추천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다수결로 책을 정했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얇은 책이 우선적으로 선정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완독을 못하면 5,000원을 내야 하는 벌금의 효과가 컸다.
퇴사하고 그 회사를 떠난 지 몇 년 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연락을 해오는 분이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취직한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무관심으로 독서동아리를 만들지 못하고 퇴사를 했고, 그 다음에 취직한 회사에서도 역시 안내문을 올렸으나 식도락 동호회에 밀려 독서 동아리 만들기에 실패했다.
책 읽기는 가능한 독서모임에 가입해 함께 읽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독서를 하는 행위도 읽는 목표가 있어야 앞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독서 모임에 가입하면 그 달 또는 정해진 날짜까지 반드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독서를 하게 된다.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독서모임이 가장 큰 동력이 되고 동기부여가 되지만, 온라인 모임도 여러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온라인 독서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혼자 책을 읽는 것이 너무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직장에서 독서동아리를 운영했지만 한 달에 10권 이상씩을 읽어내던 나로서는 한 달에 한 권만 읽고 모이는 느린 독서를 대신해줄 무엇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시 막 새로운 플랫폼으로 각광받으며 떠오르고 있던 '네이버 밴드'에 가입해 독서 관련 모임을 찾았다.
막 시작한 독서 밴드가 하나 있었는데 훑어보니 내 성향과 잘 맞겠다 싶어 가입을 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조금씩 불편한 부분이 보여 리더님에게 이런저런 개선 사항을 하나둘 얘기했다. 그랬는데 어느 날 밴드 리더가 말도 없이 나에게 리더 자리를 넘기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네이버 밴드에서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2015년이었고 지금까지 운영 중이니 어느새 9년 동안 운영되고 있는 독서 장수 밴드가 되었다.
나는 독서 이름을 [백일 독서 클럽]으로 바꾸고, 내가 꿈꾸던 독서 밴드로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네이버 독서 밴드의 오래된 터줏대감 [백일독서클럽]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독서운동가가 되고 싶었고, 함께 여러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당시 대부분의 독서 밴드는 독서 관련 글보다는 '좋은 글'이라며 어디선가 떠돌아 다니는 글을 퍼담아 와서 동영상이나 사진과 함께 올리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백일독서클럽] (줄여서 '백독클'이 오직 책 이야기만 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규칙을 꼼꼼하게 만들고 공동리더를 세우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을 월 1회씩 정리하면서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과 늘 4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하는 중견 독서밴드 모임으로 성장했다. 규칙도 까다롭고 독서 관련 활동만 하기 때문에 1만 명씩 가입해있는 독서밴드와 달리 오래된 사람들은 서로 친하고 오래 거주한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각 지역별로 오프라인 모임도 활발하게 했었는데 지금은 온라인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 회사 일과 밴드 리더를 겸하기가 너무 어려워 유능한 분에게 리더 자리를 넘기고 지금은 공동리더로서 자리만 지키고 있다.
최근에 새로운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수원과 화성 오산을 중심으로 하는 <책읽는 마을>이다. 네이버 밴드도 있지만 회원들의 활동량은 많지 않다. 오프라인 참석자도 서너 명 수준이다. 온라인 회원은 백 명이 넘어가는데, 오프라인 모임에는 다섯 명 채우기가 힘들다. 그래도 네 명 정도면 딱 적당하다. 거의 2시간 반을 얘기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면 책에 대한 다양한 탐구와 확장 그리고 자신의 생각들을 다 털어낼 수 있다.
달마다 1, 3주 오전 10시30분에 모여 1시 정도까지 이야기하고 점심 먹고 헤어진다. 다음 번 9월 첫째 주 도서는 까뮈의 <이방인>이니 독서가라면 대부분 읽어봤을 것이고, 아직 안 읽은 분이라도 책이 무척 얇아서 금방 읽어낼 수 있으리라.
어떤 취미 활동이든 혼자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독서는 충분히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취미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독서모임 하나 정도는 가입해서 책 친구를 두자. 자신이 읽은 책을 얘기할 수 있는 책 친구를 두는 것만큼 부요해지는 것은 없다.
지금 내가 참석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네 명 정도 인원이 고정적으로 참석하고 있는데, 한두 명 더 참석하면 더 풍성한 모임이 될 것 같다. 모이는 장소는 수원과 병점. 혹시 생각이 있다면 연락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