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독서] 21. 좋은 책은 매년 읽는다
이번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2015년 4월에 읽고 거의 십 년 만에 두 번째 읽는 셈이다. 2015년 책을 읽을 당시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아주 강렬했던 인상이 남아 있는 책이어서, 이번에 두 번째 읽을 때는 아주 기대가 컸다. 그리고 그 기대가 헛되지 않음을 여실히 증명해주었다. 10년의 시간은 내 기억이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부분의 이야기가 더 많이 담겨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소년이 온다>는 단순히 "광주 민주화 운동"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러 이유로 두 번, 세 번 읽는 책이 있다. 청년 시절 읽고 그때의 감흥을 떠올리며 다시 읽은 책이 있다. 레오 버스카 글리오의 사랑학 강의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는 청년 시절 나의 감성을 아주 동적으로 만들어준 책이어서 다시 구매해 읽었다. 물론 청년 때 읽었던 그 감성이 되살아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다시 재독, 삼독하는 책이 있다.
1년에 쏟아져 나오는 신간이 6만 권에서 7만 권 가량 된다고 하는데, 신간을 읽어내기도 벅찰 텐데,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건 낭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법 하다. 효용이나 효율만 따진다면 읽었던 책을 또 읽는 건 충분히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독일 심리학자인 에빙하우스(Ebbinghaus)의 망각 곡선이 있다. 어떤 데이터(활자, 자료)를 읽고 뒤돌아서면 10분이 지나면서부터 망각이 시작된다.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을 잊고, 하루가 지나면 70퍼센트를 잊어버린다. 한 달이 지나면 80퍼센트의 이야기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예습이 필요하고 복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공부할 때 반복학습이 왜 중요한지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독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대부분의 책은 한 번 읽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나면 대개 줄거리를 잊어버린다. 그래서 다독을 하는 독서가들은 한 꼭지 등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독서 후 기록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밑줄을 긋고 필사 또는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리뷰를 쓰는 작업을 하며 시간을 투자할 때 그 책은 두 번 세 번 읽는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아하는 책을 두 번 세 번 읽을 때는 공부의 반복학습과 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해마다 또는 몇 년에 한 번씩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을 때 우리는 이전에 읽었던 것과 다른, 색다른 감동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렇게 나는 고전인 제인에어, 테스, 노인과 바다 등 이십 대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 어? 이런 내용이 있었어? 하며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을 발견한다. 청춘의 때와 중년의 때에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지 비교해보면 신기하고 놀랍다. 20대는 사랑이 막 꽃 피기 시작하는 때이고 감성이 충만한 시기이다. 그때 책을 읽으면 사랑의 도파민이 마구 생성되며 두 청춘 남녀의 사랑에 눈길이 간다. 피가 끓고 심장이 끓고 애간장이 녹아 내린다. 하지만 똑같은 책을 중년이 되어 다시 읽어보면, 청년의 때 보지 못했던 삶의 작은 부분들, 감정의 사소한 부분들이 크게 확대되어 보여진다. 보는 관점과 시선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거의 매년 읽는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이다. 책이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 책이 얇고 이야기도 단순해서 독서력이 되는 초등학생도 읽어낸다. 그런 책이지만 나는 이 책을 매년 읽으면서 매년 새로운 감동을 받는다. 읽을 때마다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강렬함을 선물로 받는다. 인생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그리고 투쟁에 대하여 나는 영적인 순수와 영적인 격려를 받는다.
좋은 책은 한 번 읽고 내던져두기에 너무 아까운 책을 말한다. 좋은 책은 두 번, 세 번 그렇게 오랜 경전처럼 반복해서 읽는 책이다.
나는 당신도 그렇게 매년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마다 색다른 감동과 새로운 감동을 선물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