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동화
6. 리초, 잡혀가다
리초네 앞마당에 오소리 숲에서 건너온 모든 동물이 모였습니다. 잡혀간 리초와 다리를 다친 싸리를 빼고 모두 말입니다. 리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비탈길로 뛰어 내려가다 다리를 다쳐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때 마침 아이의 아빠가 뛰어왔습니다.
“하늘아!”
하늘이의 아빠는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하늘이는 다행히 나뭇가지에 걸려 가벼운 상처만 나 있었습니다. 하늘이보다 조금 아래에 꽃사슴 리초가 넘어진 채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리초와 눈을 맞추고 안심하라며 괜찮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빠는 가방에서 자그마한 전화기를 꺼내들었습니다.
“거기 119죠. 여기 뿌리산 중턱입니다.”
“네. 저는 강산입니다.”
“네. 위치 추적에 동의합니다.”
“제 딸, 열한 살입니다. 네. 그리고 또, 여기 사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등산을 왔습니다. 우리 딸 아이가 비탈길로 떨어지는 걸 보고 사슴도 뛰어내렸습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따오는 숲에 숨어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리초를 구하러 비탈길로 내려갈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뒤에 몇 명의 사람들이 들것을 들고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119 구조대였습니다. 119 구조대는 아이를 안고 올라와서 들것에 태우고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또 다른 구조대 사람들은 리초에게 다가갔습니다. 상태를 확인한 뒤 다리에 나무를 덧대고 끈으로 묶었습니다. 따오는 사람들이 리초를 해치려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그렇진 않았습니다. 리초를 들어보던 사람들은 다시 리초를 땅에 내려놓고 들것을 비탈길 아래로 가져왔습니다. 리초는 들것에 실려 비탈길 위로 들어올려졌습니다. 리초가 무거운지 사람들은 영차 영차 소리를 내며 리초를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따오는 숨을 꾹 참았습니다.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가 리초를 껴안고 싶었지만 잘못하다가는 따오도 어떻게 될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리초를 들것에 실은 뒤 앞뒤에서 들것을 붙잡고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따오는 조심조심 사람들 뒤를 따라갔습니다. 사람들은 산 아래 도로에 도착했습니다. 도로에는 빨간 불빛이 빙빙 돌아가며 윙윙 소리도 나는 큰 자동차가 두 대나 서 있었습니다. 아이를 실은 자동차는 부루릉 소리를 내며 떠나갔습니다. 리초는 다른 자동차에 실렸습니다. 리초를 데리고 내려간 사람들은 목이 마른지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물병을 들어 머리 위에 붓자 물이 얼굴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습니다.
“동물구조대에 연락했어?”
머리에 물을 부었던 사람이 손으로 얼굴을 훔쳐내며 뒤따라온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네 대장님. 동물구조대가 수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도착하는 즉시 상태 확인하고 수술 필요하면 수술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알았어. 빨리 출발하자.”
두 사람은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출발했습니다. 리초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따오는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수풀 밖으로 몸을 드러냈습니다. 점처럼 작아지는 자동차를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리초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지? 따오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리초는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따오는 터벅터벅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조팝나무 관목 수풀을 헤치고 너른 마당으로 들어선 따오는 깜짝 놀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당에는 오소리숲의 모든 동물이 자리를 잡고 따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오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눈을 껌벅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다들 여기엔 어떻게 오신 건가요?”
“리초가 사라졌잖아.”
“지금까지 어디 있다고 온 거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알기나 해?”
여기저기서 걱정이 쏟아졌습니다. 그냥 말만 내뱉은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몸을 흔들고, 날개죽지를 흔들어대면서 말을 해서 먼지가 푹푹 일어나고 깃털이 빠져 사방으로 흩어져 리초네 안마당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조용! 조용히 해주세요.”
토끼 앵초 부인이 너른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앵초 부인은 위엄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앞장 서서 동물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번에도 리초가 사람들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앵초의 하얀 털이 바람 방향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습니다. 앵초 바로 옆에는 남편 얄라가 자랑스러운 듯이 입에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서 있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여러분을 모이게 한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오소리숲의 귀염둥이 리초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라졌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갑자기 하늘로 올라갔나요? 아니면 땅 속 깊은 곳으로 떨어졌나요?”
족제비 타랑이 줄무늬 꼬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갑자기 까치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날개짓을 하며 푸드득 날아올라 앵초가 서 있는 너른 바위로 왔습니다.
“사람들이 잡아간 거예요. 제가 봤어요.”
“맞아요. 사람들 나빠요.”
산까치 부부는 건너편 숲으로 음식을 구하러 날아가던 중에 리초를 보았습니다. 리초는 눈을 뜨지 못한 채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리초를 자동차에 싣고는 문을 닫았습니다. 달려가는 자동차를 까치 부부가 뒤쫓아 갔지만 얼마나 빨리 가는지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급하게 쫓아갔지만 괴물 같은 자동차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검은색 날개깃이 아름다운 우리 까치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여보, 울지 마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요.”
끼리가 큰 날개를 펼쳐 아내 우리를 감싸 안았습니다.
“맞아. 울지 마. 그래도 우리와 끼리 덕분에 리초가 사람에게 잡혀간 걸 알 수 있었잖아.”
부엉이 부들 박사가 소나무 가지에서 부엉부엉 울며 우리와 끼리를 다독였습니다.
“난 리초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어. 리초 때문에 울어야 한다면 바로 나야.”
부들 박사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 올랐습니다.
“흥, 눈물이나 질질 짜고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갑자기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싸리 여우의 큰아들 싸아였습니다.
“리초가 뭐 대단한 인물이나 되는 모양이지?”
싸아는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가슴에 난 하얀 털을 오소소 일으켜 세웠습니다.
싸아의 아빠인 싸리가 잘난 척 할 때 하던 행동과 똑같았습니다.
모여 있던 동물들이 기가 찬다는 듯 할 말을 잊은 채 싸아를 쳐다보았습니다.
“싸아, 너, 어른들 앞에서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너구리 뚜르의 아들인 또르가 눈을 크게 뜨고 으르렁거렸습니다.
“흥, 어른들이 아무것도 모른 체 리초만 감싸고 도니까 그렇지.”
싸아는 또르 앞에서 팔짱을 낀 채 같이 눈을 부라렸습니다.
“너, 그러면 못 써. 리초가 싸리에게 얼마나 음식을 많이 갖다 줬는데 그런 말을 해.”
오소리 야리의 딸 오티가 싸아를 나무랐습니다.
“흥, 맛도 없는 풀때기 누가 먹는다고 그래. 나는 그런 음식에 질렸어. 이왕 줄려면 맛있는 벌레를 구해줘야지.”
싸아는 친구들도 미웠고 어른들도 미웠습니다. 모두 리초만 예뻐하고 따오만 귀여워했습니다. 아빠가 예전에 말썽을 피우고 혼자 행동을 했다고 지금도 미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아빠가 다쳤다고 올가미를 끊어준 것도 아빠를 좋아해서가 아닌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리초가 아침마다 식사를 갖다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초가 아빠를 구해준 뒤부터 싸리는 리초를 무척 귀여워했습니다. 리초는 싸리를 아저씨라 부르며 따라다녔습니다. 그럴 때마다 싸아는 뒷전이었습니다. 아직 혼자 음식도 잘 먹지 못하는 싸아는 찬밥 신세가 되었습니다. 싸아는 모든 것이 기분나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