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동화
7. 리초 구출 특공대
토끼 앵초 부인은 몸집이 작았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습니다. 리초를 사랑하는 마음이 목소리에 그대로 묻어나왔습니다.
“우리 모두 이대로 있을 순 없어요. 리초를 찾기 위해 각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모두 생각해보세요.” 얄라가 옆에서 말을 거들었습니다.
“생각만 하면 뭐 해. 리초는 죽었을 거야. 꿈쩍도 안 하던 걸 뭐,”
싸아는 ‘고것 쌤통이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꿈쩍도 안 하다니.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부들 박사가 커다란 날개짓을 하며 싸아 옆으로 날아갔습니다. 깜짝 놀란 싸아가 뒷걸음질쳤습니다.
“너 어쩐지 수상하더라니. 빨리 말해. 리초가 못 움직인다는 걸 넌 어떻게 알고 있냐고!”
오소리 오티가 두 팔을 벌려 싸아 뒤를 막아서며 싸아가 도망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몸을 잔뜩 움추린 싸아 앞에는 커다란 날개를 편 부들 박사가, 뒤에는 이제 어른만큼이나 덩치가 커진 오소리 오티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싸아는 꼬리를 말아 다리 사이로 접어 넣으며 웅얼거렸습니다.
“사실은 제가 사람에게 뛰어들었어요 그래서 자그만 아이가 산비틀 아래로 떨어졌어요.”
그때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던 앵초 부인이 바위에서 풀쩍 뛰어 내려오더니 부들 박사에게 잠시 귓속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들 박사가 날개를 접고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앵초 부인이 오티에게 한쪽 눈을 감으며 살짝 윙크했습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오티가 힘을 주고 있던 두 발을 살며시 옮겨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앵초 부인이 싸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싸아야. 아빠가 다리를 다쳐서 많이 힘들지? 네 마음을 이해해. 아빠가 사람이 만들어놓은 덫에 걸려 다리를 다쳤으니 얼마나 사람들이 미울까.”
“네. 정말 사람이 미워요.” 싸아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아무도 널 혼내지 않을 테니까, 리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니?”
앵초 부인이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정말 혼내지 않을 건가요? 그런데 아빠가 아파서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했어요. 지금 배가 너무 고파요. 저한테 먹을 걸 먼저 구해줄 수 있나요? 지금 기운이 너무 없어요.”
싸아 배가 정말 홀쭉해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엉망이었습니다. 어제부터 먹지 못한 게 분명했습니다.
“여기 누가 싸아가 먹을 음식 좀 갖다 줘요.”
앵초 부인이 뒤를 돌아보며 모여 서 있는 동물에게 소리쳤습니다.
“제가 가져올게요.” 따오가 자원하며 나섰습니다. 사실 리초와 막 아침을 먹으려다 리초가 뛰쳐나가 리초의 아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거든요. 따오는 잠시 뒤 호박껍질로 만든 그릇에 담긴 나무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싸아, 이걸 먹어. 리초 아침인데 리초는 못 먹고 사라졌으니 네가 먹으면 되겠다.”
따오가 그릇을 싸아 앞에 내려 놓았습니다.
“고마워. 따오.” 싸아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그릇에 담긴 나무열매를 하나도 남김없이 싹싹 핥아 먹었습니다. 모여든 동물들이 모두 싸아만 바라보고 있자, 싸아가 앵초 부인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앵초 부인은 싸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바위 위로 올라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싸아가 어떻게 해서 리초가 다친 걸 알고 있는지 얘기할 테니까 모두 자리 좀 정돈하고 앉아 주세요.”
앵초 부인의 말에 따라 싸아 주변에 모여 있던 동물들은 다시 바위 주위로 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았습니다.
“자, 싸아. 겁내지 말고 이리 올라오렴. 네 마음 속에 있는 생각까지 모두 다 말해다오. 그래야 우리가 널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싸아가 쭈볏거리며 너른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아직은 어린 여우지만 싸아도 곧 늠름하게 자랄 것입니다.
싸아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놓은 덫에 우리 아빠 다리가 걸렸고 지금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맞아맞아, 사람들 정말 나빠, 나도 사람은 싫어.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자자, 조용히 하고 싸아의 말을 마저 들어봅시다.”
앵초 부인이 다시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싸아는 우연히 사람을 발견하고 나쁜 마음을 먹었던 일, 어린아이 앞으로 갑자기 뛰어나가 아이가 놀라 산 밑으로 떨어지도록 한 일 그리고 비명 소리를 듣고 리초가 뛰어 나왔던 일, 리초가 산 아래로 내려가다 쓰러진 일,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동차에 리초를 싣고 간 일을 모두 얘기했습니다.
“죄송해요. 아빠 다리를 못 쓰게 만든 사람이 너무 미워서 그랬어요. 리초가 뛰어나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제가 볼 때 리초는 다리가 접질러졌고 축 늘어져 숨을 안 쉬는 것 같았어요.”
여기저기서 한숨소리와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죄를 지은 것처럼 싸아는 몸을 봬봬 꼬았습니다.
그때 부들 박사가 커다란 날개짓을 하며 바위 위로 올라섰습니다.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리초는 잠시 기절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죽지는 않습니다. 우리 리초가 얼마나 용감한 녀석인지 다들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얼른 리초 구출을 위해 특공대를 만듭시다.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리초를 다시 우리 산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부들 박사의 말에 동물들 얼굴이 활짝 펴졌습니다.
“맞아. 잠시 기절했을 거야. 리초가 어떤 사슴인지 우리가 잘 알지.”
오티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희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리초가 어디로 갔는지 최대한 알아볼게요.”
활동 범위가 넓은 까치 우리가 말하며 위로 날아올랐습니다. 덩달아 끼리도 깃털을 떨구며 위로 날아올라 금세 사라졌습니다.
“친구들이라면 우리도 만만치 않답니다.”
들쥐 까루가 자녀들과 자녀의 자녀들과 그 자녀의 자녀들까지 모두 모으며 외쳤습니다.
“모두 리초에 대한 소식을 최대한 많이 가져 오너라. 지금부터 쉬지 말고 달려야 한다.”
까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들쥐 수십 마리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금세 나무들 사이로, 덤불 사이로, 오솔길 사이로 사라지고 할아버지 까루 들쥐만 홀로 남았습니다.
따오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든 리초를 찾아 떠나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따오를 본 까루가 말했습니다.
“따오야. 너는 여기서 나랑 같이 리초 소식을 기다리자꾸나. 그게 현명한 방법이야. 너마저 떠나면 누가 리초 소식을 듣고 또 전달해주겠니.”
따오는 들쥐 까루 할아버지가 자신을 붙잡아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따오는 양지바른 바위 옆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햇살이 따뜻했습니다. 멀리 박새며 오목눈이며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피곤이 구름처럼 몰려오더니 따오의 눈거풀을 닫았습니다. 따오는 잠시 평화롭게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