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동화
8. 텁석부리 사냥꾼
동물들이 모두 리초 소식을 찾기 위해 떠나가자 숲은 갑자기 고요해졌습니다. 따오는 혹시 리초가 돌아올까 싶어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가미에 걸렸다가 동물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제대로 걷지 못하는 여우 싸리가 집에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외에는 나이 든 오소리 할아버지 옽리와 할아버지 들쥐 까루만 남았습니다.
저벅저벅.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부스럭부스럭. 신발에 낙엽 밟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발걸음 소리는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고요해진 숲속에 남은 동물은 누구나 이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전해져오는 화약 냄새, 기름 냄새.
그 사냥꾼이다.
따오가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킁킁. 코를 내밀어 냄새를 맡았습니다. 화약 냄새와 기름 냄새 사이로 사람이 내뿜는 땀 냄새가 섞여 따오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 텁수부리 사냥꾼의 냄새였습니다.
사냥꾼은 자신이 설치해 둔 올가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올가미는 끊어져 있었고 여러 짐승의 털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손으로 올가미를 들어 끊어진 부분을 보던 텁수부리 사냥꾼은 땅바닥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여우 싸리가 흘린 핏방울이 점점이 땅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굽혀 신발끈을 조이고는 일어나서 등에 맨 배낭끈도 단단하게 잡아 당겼습니다. 등에 맨 엽총을 꺼내 조준경으로 앞쪽으로 맞춰보고는 다시 등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핏방울을 따라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텁수부리 사냥꾼은 핏방울을 따라 가다 덤불을 만났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던 그는 덤불을 손으로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사냥꾼은 짧게 아!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사냥꾼 앞에는 올가미 때문에 목에 상처를 입은 채로 곤히 잠든 여우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조용히 마취제가 든 총알을 꺼내 가져온 엽총에 장전했습니다. 조준경으로 여우를 겨눈 뒤 총 손잡이를 당겨 마취탄을 여우에게 쏘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신음하다 잠든 싸아는 갑자기 몸을 찔러 들어오는 고통에 깜짝 놀라 펄쩍 뛰었습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퍼진 마취약 때문에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바닥에 떨어져 다시 스르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텁수부리 사냥꾼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훅 하고 내쉬었습니다.
“사슴을 잡으러 왔는데 여우를 잡다니 이 또한 행운이로구나.”
그는 흥얼거리며 여우를 들어올려 양쪽 어깨에 들쳐멨습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여우가 살고 있다니 눈앞에 보고서도 믿기 어렵네. 가만. 지난 번 친구가 보여준 사진 속에 여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랬든 저랬든 사슴이 아니면 어떠냐. 여우도 좋다. 내가 태우 몰래 혼자 왔으니 망정이지, 같이 왔으면 이 녀석 값을 반으로 나눠야 했을 거 아냐. 친구 녀석 물어보면 나중에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뚝 떼야지.”
텁수부리 사냥꾼은 콧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갔습니다.
싸아는 리초가 사람에게 잡혀간 것이 자기 때문인 것같아 뒤늦게 후회가 됐습니다. 사실 아빠 싸리에게 가장 음식을 자주 갖다준 것도 리초였습니다. 리초가 싸아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 처음에는 좋았습니다. 싸아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리초가 마치 이웃집 아저씨인 것 마냥 자주 놀러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싸리는 다쳐서 잘 움직이 못하고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는 자기에게 딸 마냥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리초가 싫지 않았습니다. 아들 녀석 싸아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아빠에게 신경을 잘 쓰지 못했습니다. 먹을 게 떨어지면 배고프다고 골멘 소리를 하며 하루고 이틀이고 그냥 굶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이삼일 지내다보면 신기하게도 리초가 싱싱한 열매를 가득 따서 찾아왔습니다. 리초의 방문은 싸아에게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픈 아빠는 싸아와 놀아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싸아는 혼자 놀기 대장처럼 흙파기, 나무 올라가기, 도토리 숨기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친구가 없다보니 이내 심심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리초와 따오가 오면 술래잡기며 도토리 숨기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수 있었거든요.
싸아는 리초가 굴러떨어진 비탈길을 조심스레 내려갔습니다. 리초는 사슴이어서 내리막길이 힘들지만 여우에게 비탈길을 내려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커다란 나뭇잎만 있으면 미끄럼타기를 하면서도 내려갈 수 있는 길이죠. 싸아는 그곳에서부터 냄새를 맡으며 리초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리초가 미끄러져 내려갔던 비탈길에는 리초 냄새와 사람 냄새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커다란 자동차에서 내뿜은 매캐한 냄새와 금속 냄새도 났습니다. 냄새는 곧장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싸아는 냄새를 따라 급하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한참을 뛰어가자 냄새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숲이 뚝 끊겼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자동차 괴물을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커다란 도로가 나타났습니다. 도로 건너편에 오래 전 아빠가 건너온 숲이 있었지만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고 있어서 도로를 건너갈 수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건너편 숲으로 리초가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리초 냄새는 이미 다른 금속 냄새에 섞여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리초를 자동차에 싣고 어디론가 가 버린 것입니다.
싸아는 힘이 쭉 빠져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비탈길을 올라 집으로 향했습니다. 만약 리초가 사람들한테 죽어 버린다면,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나 착한 리초였는지는 온 동네 동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리초를 잃은 따오를 생각하자 자신이 너무 미련한 짓을 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한참 리초와 따오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싸아는 깜짝 놀라 수풀 속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사람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수풀 속에서 사람을 몰래 살펴보던 싸아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사람 어깨에 축 늘어져 메달려 있는 동물은 분명 아빠 싸리였습니다. 목 부분에서 빨간 피가 계속 흘러 내렸는지 다리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싸리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싸아는 머리가 하얘지면서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퍼- 퍼- 퍼-
따오였습니다. 사람이 나타나면 알리기로 한 신호였습니다. 따오는 아픈 싸리에게 음식을 주러 갔다가 싸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싸리가 스스로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사람 냄새가 심하게 나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나는 땀냄새, 신발 냄새, 총 냄새 등 많은 냄새가 남아 있는 것이 그 증거였습니다. 따오는 지체없이 숲속 동물들에게 위험 신호를 보냈습니다. 퍼- 퍼- 퍼- 이 신호는 리초의 엄마 리오가 따오에게 보냈던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따오가 아직 어렸을 때 싸리는 따오를 잡으려고 뒤좇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죽어 하늘나라에 갔지만 친엄마처럼 대해줬던 리초 엄마 리오가 다급하게 외친 소리가 바로 이 소리였습니다.
퍼- 퍼- 퍼-
이 소리는 사슴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습니다. 동물들은 저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위험 신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커다란 부엉이 부들 박사와 재빠른 토끼 앵초 부인이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숲에 남아 있던 오소리 올리 할아버지와 들쥐 까루 할아버지도 들었습니다. 멀리 친구들에게 소식을 물으러 갔다 돌아오던 까치 부부 우리와 끼리도 이 소리를 들었습니다.
부엉이 부들 박사는 부엉부엉 커다랗게 소리질렀습니다. 올리 할아버지는 있는 힘껏 컹컹컹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올리의 딸 야리도 컹컹컹 소리를 내며 숲으로 달렸습니다. 우리와 끼리도 까악까악 소리를 내며 재빨리 숲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람쥐 모야와 청설모 설마도 나무를 재빠르게 오르내리며 숲의 위기 상황에 동참했습니다.
숲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까악까악 부엉부엉 컹컹 퍼퍼 우우 온갖 동물들이 소리를 내지르자 텁석부리 사냥꾼이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싸아는 숨을 멈춘 채 사냥꾼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싸아는 사냥꾼이 깜짝 놀라도록 뛰어나갈까 생각을 해보았으나 사냥꾼이 조심스레 총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얼어붙었습니다. 사냥꾼은 총을 들어 앞쪽을 조준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냥꾼도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커다란 새가 하늘에서 덮쳤습니다. 소리도 없이 날아온 부들 박사가 사냥꾼 어깨에 메어져 있는 싸리를 두 발로 꿰찼습니다. 그러나 싸리는 부들 박사가 쉽게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냥꾼이 반사적인 운동신경을 발휘해 싸리의 앞다리를 꽉 움켜쥐었습니다. 그 바람에 사냥꾼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습니다. 싸리도 함께 넘어져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냥꾼은 얼른 일어나 부들 박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
커다란 총소리가 숲을 뒤흔들었습니다. 부들 박사가 재빠르게 하늘을 날아 올라 사냥꾼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깍깍 우리와 끼리가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로 날아갔습니다. 텁석부리 사냥꾼은 총을 이쪽 방향으로 옮겼다가 저쪽 방향으로 옮겼다가 하며 하늘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습니다. 그때 까만 청설모 설마가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사냥꾼 다리를 깨물었습니다.
아얏. 텁석부리 사냥꾼은 펄쩍 뛰며 청설모에게 욕을 내뱉었습니다. 청설모는 쪼르르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찍. 비둘기 구구가 갑자기 나타나 뭔가를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아악. 이게 뭐야.”
갑자기 사냥꾼이 괴성을 지르면서 손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알고보니 비둘기 구구가 엉덩이로 사냥꾼 손등 위에 실례를 한 것입니다. 사냥꾼은 근처 나무로 가서 떨어진 나뭇잎에 비둘기 배설물을 문질렀습니다. 어깨에서 가방을 내리더니 가방 속에서 물을 꺼내 비둘기 똥이 묻은 손등에 부었습니다. 손을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하늘을 향해 욕을 하면서 다시 물을 들이 부었습니다. 그러고는 손등을 옷자락에 슥슥 문질러 닦았습니다.
“이게 뭐야. 에이 기분 나쁘게. 오늘 재수 더럽게 없네. 집에나 빨리 가야겠다.”
텁수부리 사냥꾼은 가방을 다시 메고 총을 들어 어깨에 걸었습니다. 그러더니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어, 없다. 여우가 사라졌어. 젠장. 그새 마취에서 깼구나. 오늘 어떤지 혼자 와서 재수가 좋겠구나 했는데, 역시 어림 없는 일이었군.”
사냥꾼은 입맛을 다시며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갔습니다.
부엉이 부들박사와 까치 우리와 끼리, 청설모 설마, 비둘기 구구가 사냥꾼 혼을 빼놓는 사이에 마취에서 깬 싸리는 아들의 신호를 받고 몰래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싸리와 싸아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로 했습니다. 사냥꾼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