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태동화
9. 리초가 돌아오다
리초의 첫 소식을 알려온 건 역시 우리와 끼리였습니다. 우리와 끼리는 옆 산에 사는 친구 까치가 많았고, 그 친구들 또한 그 옆 산에 사는 친구가 많아서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연결된 리초 찾기 소문은 금세 근방 모든 숲속에 좌악 퍼졌습니다. 그러던 중 리초가 동물구조대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우리와 끼리는 급하게 부들박사에게만 먼저 리초가 살아 있으며 사람들이 그를 치료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고는, 직접 동물구조대에 가서 리초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다며 날아갔습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십여 마리의 까치가 리초가 있다는 동물보호대라는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우리와 끼리가 창쪽으로 다가가 리초가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리초는 방 중앙 바닥에 깔린 부드럽고 폭신한 천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앞발 왼쪽 다리에는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었습니다. 눈을 껌벅거리고 약간 겁을 먹은 모습이지만 심하게 다친 것 같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리초 앞에는 싱싱한 과일과 씨앗들이 가득 든 음식 바구니까지 놓여져 있었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리초를 들여보고는 무엇이 바쁘지 다른 곳에 있는 탁자로 가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리초가 앞발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고 반쯤 일어서더니 바구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 중 한 명이 손가락으로 리초를 가리켰고, 다들 리초를 보더니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에 잠깐 고개를 들었던 리초는 다시 음식 바구니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리초는 마지막 사과 한 조각까지 싹 다 해치웠습니다. 리초는 혀를 내밀어 코끝을 핥았습니다. 코 끝에 묻은 단물까지 싹 핥아 먹은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힘을 많이 써서 에너지가 많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대해주어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따오가 기다리는 집으로 다시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벽쪽에 있는 우리 안에는 오소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오소리 말로는 치료가 끝나면 다시 처음 실어온 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착하지 않습니다. 오소리는 분명히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리초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동물을 괴롭혔습니다. 기다란 총으로 꿩을 죽이기도 했고, 자동차라는 괴물로 이쪽 산에서 저쪽 산으로 건너가는 동물을 치어 죽였습니다. 리초 엄마 리오가 죽은 것도 자동차 때문이었습니다. 먹이를 구하러 새로 생긴 길을 건너다가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려오는 자동차에 부딪친 것입니다. 리초가 소식을 듣고 달려갔을 땐 이미 리오는 목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사람 때문에 엄마가 죽은 것을 생각하면 절대로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리초는 엄마가 평소에 ‘사람이라고 모두 다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야’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습니다. 엄마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좋은 사람도 있다는 말을 리초에게 했을까요. 어쩌면 그래서 리초가 소녀의 비명 소리를 듣고 한걸음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나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리초가 다리를 다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람 때문입니다. 그 소녀가 비명을 지르지만 않았어도 리초는 집에서 평화롭게 따오와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여우 싸리 박사의 음식을 구해 가져다 줄 궁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리초를 발견한 우리와 끼리가 창문 밖에서 리초에게 응원의 날개짓을 하며 까악까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리초가 창을 통해 우리와 끼리를 발견했습니다. 리초는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까지 우리와 끼리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리초는 어쩌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같은 것이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리초가 우뚝 네 발로 완전히 섰습니다. 그러더니 절룩거리며 창가로 걸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싶어 리초 뒤를 따라 창쪽으로 왔습니다. 신이 난 우리와 끼리는 더욱 깍깍거리며 날개짓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창문 밖에서 까치 십여 마리가 날개짓을 하며 깍깍거리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습니다.
“이 꽃사슴 친구들인가 봐.”
“그러네. 사슴이 제 발로 일어섰으니 다시 데리고 왔던 곳으로 데려다 줘도 되겠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먹이도 다 먹었고, 원기도 회복한 것 같아.”
“참, 신고한 소녀와 아빠는 어디 있지?”
키가 크고 얼굴은 주먹만큼 작은 남자가 물었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올게요.”
이번에는 키고 크고 얼굴도 크고 머리카락도 긴 여자가 대답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119 응급 신고를 했던 아빠와 소녀가 같이 들어왔습니다. 소녀는 다리를 절뚝거렸지만 리초에게 다가가 살며시 리초의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리초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 소녀가 동물에게 나쁜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리초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녀와 아빠는 리초에게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친 리초에게 응급 치료를 받아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도와 준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보호대 사람들도 친절했습니다. 치료는 물론 맛있는 음식까지 리초에게 주었습니다. 리초는 지금까지 이렇게 싱싱하고 맛있는 과일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열매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함께 온 아빠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갔던 뿌리산말입니다. 그곳에 넓은 도로가 나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도로를 건너던 동물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러자 키가 크고 얼굴이 작은 남자가 대답했슶니다.
“맞습니다. 국토부에서 도로만 만들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바람에 집을 찾아 가거나 먹이활동을 위해 이동하던 동물들이 자동차에 많이 죽었습니다. 우리가 구조해 온 동물만도 십여 마리나 됩니다.”
“큰일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동물들이 다치거나 죽게 생겼으니….”
아빠가 리초를 바라보며 말을 했습니다.
“저희가 국토부에 건의를 계속 하는데도 예산이 없다고 이렇게 미뤄지기만 하네요. 무슨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을텐데.” 안경 낀 남자가 끼어들며 말했습니다.
“아빠 아빠.”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작은 소녀가 아빠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 그래. 은혜야. 무슨 일이니?”
아빠가 허리를 숙여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아빠가 그때 보여준 사진 있잖아요. 동물들이 모여서 도로를 건너가던 신문 사진 말이에요. 그걸 생각하니까 떠오른 건데요. 그곳에도 동물을 위한 신호등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면 자동차는 멈춰설 테고 그때 동물들이 길을 건너면 되잖아요.”
아빠가 소녀를 번쩍 들어올리며 소리쳤습니다.
“우리 은혜 최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아빠가 경찰서에 알아봐야겠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저희도 관할 경찰서에 연락해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소녀가 리초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사슴아. 네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제 안심해도 돼. 우리가 그곳에 신호등을 만들어 줄 게.”
리초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소녀의 따뜻한 느낌은 전해졌습니다.
“이제 이 녀석은 제 집으로 돌려보내죠. 벌써 눈이 똘망똘망해진 게 다 나은 거 같은데요.”
긴머리에 키가 큰 여자가 리초를 한 바퀴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쟤 아랫배가 좀 통통하지 않아요? 초음파 검사 결과가 나왔거든요.”
까악까악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우리와 끼리가 숲으로 돌아왔습니다.
“리초가 와요. 리초가 온답니다.”
우리와 끼리는 숲을 돌아다니며 리초 소식을 전했습니다.
꼬마 여우 싸아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습니다. 싸아는 리초가 꼭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리초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앞으로 이 숲속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얼마전 따오가 찾아오자 싸아는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엉엉 울었습니다.
“리초가 못 돌아오면 어떻게 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일부러 소녀를 놀라게만 하지 않았어도 리초가 다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다 제 잘못이에요.”
따오가 부드럽게 싸아를 감싸안았습니다.
“아니야. 리초가 원래 그래. 아프거나 다치는 걸 못 참는 성격이야. 아빠는 좀 어떠시니?”
따오는 오히려 싸리를 걱정했습니다.
싸아는 번개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리초가 굴러 떨어졌던 비탈길로 달려갔습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자 지난 번처럼 큰 자동차가 서 있었습니다. 조금 지나자 리초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걷는 데 문제는 없어 보였습니다. 소녀도 함께 내렸습니다. 소녀가 리초를 껴안고 울먹거렸습니다. 리초는 소녀에게 몸을 맡긴 채 가만히 있었습니다. 엄마 리오가 생각났습니다. 왜 이럴 때 엄마가 생각나는지 모를 일입니다.
“잘 가. 이제 다치지 말고.”
소녀가 리초에게서 떨어지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신호등 꼭 만들어줄 게. 기다려.”
소녀는 자동차를 타고 다시 떠나갔습니다.
싸아는 멀리서 리초가 다른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감히 앞으로 나서서 리초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정말로.’
싸아는 다친 아빠가 누워 있는 동굴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숲에서는 먹을 것이 다 떨어져갔습니다. 다시 옆산으로 가야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열매를 딸 수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올리 할아버지와 부들박사 그리고 앵초 여사가 모여 머리를 맞댔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모두 굶어 죽고 말 거요. 쿨럭.”
올리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요?”
앵초 여사가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심각해요. 심각해. 저쪽 산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모조리 굶어죽을 거요. 우리 새들이야 날아다니니까 문제가 없지만 …”
부들박사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리초와 따오, 싸리와 싸아는 물론이고 까루네 가족이며 설마와 모야 가족 모두들 굶어서 배가 홀쭉해졌오. 특히 리초는 곧 출산을 할 예정인데 먹질 못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그렇군요. 아직 풀이 많이 있어서 우리 토끼처럼 큰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앵초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구구구구. 멀리서 비둘기 구구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이 왔어요. 이상한 기계들을 가지고 와서 땅을 파고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것 같아요.”
“이런. 이 상황에 사람들이 또 기름 냄새를 풍기며 숲을 망가뜨리는 거 아니요? 좀더 자세히 얘기해보시오.” 부들박사가 구구 옆으로 날아가 앉았습니다.
“우리가 이쪽 숲으로 건너왔던 그 큰 길 있잖아요. 그 길 양쪽에 땅을 파고 있어요. 사람들도 많이 와서 막 시끄러워요.” 구구가 대답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우리 모두 다 굶어죽겠어요. 길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 길에서 죽은 우리 아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올리 할아버지가 오비와 오티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신호등이 세워졌어요. 올리 할아버지, 드디어 신호등. 빨간 신호등이 세워졌어요.”
까치 우리가 날아오며 멀리서부터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간 신호등이라는 말에 모두들 일어나서 공터로 나왔습니다.
“빨간신호등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응. 그러니까. 그때 리초랑 같이 다쳤던…”
우리가 말을 하는 중에 앵초가 말을 잘랐습니다.
“아유 답답해. 그러지 말고 모두 그쪽으로 가 봐요. 눈으로 보는 게 제일 빠르지.”
앵초가 쪼르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너도나도 모두 큰 도로가 나 있는 숲 가장자리로 달려갔습니다. 싸아도 힘차게 달렸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서 신호등이 세워지는 걸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신호등을 세워준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리초는 아직 다리가 다 낫지 않아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 옆에서 따오도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걸어갔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까치 우리가 말해준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큰 도로에 신호등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그렇게 세우려고 하다가 실패했던 신호등을 사람들이 동물들을 위해 세우고 있었습니다. 붉은 태양 색, 짙은 이파리 숲색, 노란 사슴색의 커다란 동그라미 세 개가 박힌 신호등이었습니다. 붉은 색 원에 빨갛게 불이 들어오자 빠르게 달리던 차들이 멈추어섰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싸아가 용기를 내어 도로로 앞발을 내밀었습니다. 어떤 자동차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싸아는 씩씩하게 길 건너편 숲으로 건너갔습니다. 싸아가 건너가는 걸 본 다른 동물들도 싸아를 따라 도로를 건너갔습니다.
붉은 신호등에 불이 꺼지고 숲색 녹색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자 자동차들이 다시 부르릉 소리를 내며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안심입니다. 올리 할아버지는 피유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우리의 꿈이 이루어졌구나. 이게 다 리초 때문이야. 리초가 큰 일을 한 거야.”
삼색 신호등 옆에는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 ‘동물들이 길을 건너고 있어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동물들은 사람의 글자를 읽을 수 없었지만 글자 위에 그려진 그림은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리초였습니다. 사슴이 뛰어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신호등이 세워지고 나서 더 이상 길에서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동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배를 곯으며 애태우는 동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뿌리산에는 동물만을 위한 삼색 신호등이 늘 깜박거립니다. 동물들은 빨간 신호등에 불이 들어올 때만 길을 건넜습니다. 그건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이니까요. 오늘도 커다란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붉은 색 신호등은 더욱 빨갛게 빛을 냅니다. 밤에만 움직이는 동물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리초는 어느새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답니다. 그 사이에 올리 할아버지는 편안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마치 붉은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지듯이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오소리 야리가 가족들을 이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답니다. 오늘도 태양이 산 너머로 사라집니다. 별똥별 하나도 떨어집니다. 리초는 리오 엄마 생각을 하며 콜콜 잠이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