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6) - 상처받는 존재
그녀에게 그가 자신과 같은 부류, 그들(로제와 자신)과 같은 부류로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쉽게 상처받지 않을 존재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가 상처 입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86쪽)
상처받지 않는 존재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이들은 상처를 숨길 뿐이고, 어떤 이들은 감당할 뿐입니다. 갈등이 일어나는 건 상처를 감추려 하지 않거나, 혼자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상처를 커다랗게 외현화할 때죠. 상대가 내 말로 상처 받았다고 말을 하면, 나는 속으로만 말하죠. 나도 상처 받았는데. 하지만 결코 입밖으로 그 말을 내뱉진 않습니다. 당신이 너무 크게 상처를 받아서 내 상처는 상처 같지도 않다고 생각한다고, 내가 생각하니까요.
그러니까 철이 없을 때,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기엔 아직은 조금 부족할 때, 상처는 나만 받는 것처럼 느낍니다. 폴은 그런 면에서 한층 성숙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폴이 로제를 떠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여려서 폴은 로제의 슬픔을, 슬퍼할 것이라는 가정을 현재화하고 현실화하고, 끝내 모질게 내치지 못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상처를 받는 만큼, 당신도 상처를 받을 거야. 그러니 내가 조금 더 희생하고, 내 사랑을 유보할 게. 당신 상처 받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사강이 그려내는, 약하고 흔들리는 영혼들은 바로 그래서 아름답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폴, 시몽, 로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그들은 상대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또 사랑합니다.
어제 밤에는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곡을 들었습니다. 불안한 경계에서 음은 계속 오르내립니다. 마치 폴의 심정을 그려놓은 것 같습니다. 흔들리는 폴. 그럼에도 따스하고 깊고 풍성합니다. 한껏 불안하게 달려가다가 잠시 부드러운 미풍 속에 감싸입니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상처를 씻어 내립니다.
상처받은 사람을 위한 노래.
상처를 아는 브람스의 노래는 치유의 음악입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 상처를 들여다볼 뿐더러 당신의 상처도 어루만지게 됩니다. 그리고 흘러가는 음악에 상처의 불순물들을 씻어냅니다.
그래서 맑고 투명한 강물이 됩니다.
어제 폴을 생각하고, 시몽을 생각하고, 로제를 생각하면서
브람스의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피아노 4중주를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웠고, 격정이 느껴졌고, 슬픔과 기쁨이 충만하게 차올랐습니다.
그래서 너무 슬프지 않았습니다.
너무 기쁘지 않았습니다.
브람스 음악을 들으며, 폴의 마음을 따라가는 이 여행.
너무 행복합니다.
https://youtu.be/oa8pBw7JfeE?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