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한줄평 : 사랑이라는 안경으로 인생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책
모르겠다. 굳이 이렇게 끝을 맺은 이유를.
더욱이 작가 사강이 살아간 삶의 궤적을 따라가노라면, 더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엔딩 자막을 올렸다. 작가는 더 이상 가타부타 말이 없다. 다만, 책에서 질문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표를 책 제목에서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점 세 개로 바꾸었다는 것밖에.
그래서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브람스의 음악 듣기에 심취했다.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하이든, 바흐, 생상, 멘델스존, 슈만, 슈베르트, 쇼팽, 파가니니, 브르후 같은 음악가들보다 심지어 말러나 브루크너보다 브람스는 내게 친숙하지 않은 음악가였다. 브람스의 자장가나, 헝가리 무곡,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협주곡 같은 음악은 친숙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나는 브람스를 너무 잘 알았지만 실상 하나도 모르는 사람과 같았다. 클래식 음악을 30년 넘게 들어왔으면서도 이토록 브람스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나, 나는 자괴감이 들었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난 지금까지도 브람스 전작주의를 꾀하듯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다.
브람스는 베토벤이나 모짜르트처럼 교향곡이 많지 않다. 그래서 독서의 전작주의처럼 그의 음악 전체를 다 들으려고 마음 먹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왜 브람스인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왜 모짜르트나 베토벤, 바흐나 하이든이 아니라, 굳이 브람스를 제목으로 뽑아내야 했을까? 왜 시몽이 자기보다 열네 살이나 많은 연인 폴을 이끈 첫 연주회가 브람스 협주곡 연주회여야 했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을 머리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첫 문장, 9쪽)
이야기는 이 책의 주인공인 되는 3인칭 화자인 39세 여성 폴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거울은 한강 작가의 시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장치다. 거울은 결코 거울 너머의 것을 탐색할 수 없다. 그러나 거울은 결국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자신의 외모를 자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깊숙한 본성과 심리적 진실 앞에 마주하도록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게다가 첫 문장은 '들여다보았다'로 끝나는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이다. 스스로 마주한 자신과의 탐색에서 결과를 만들어낸 상황이 아니라, 여전히 갈등하고, 미심쩍어 하고, 종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로제의 차에 탄 폴은 방심한 태도로 라디오를 켰다. 그녀는 계기판의 창백한 빛에 비친 자신의 길고 잘 손질된 손가락에 힐긋 눈길을 주었다. 정맥이 드러나 손가락 쪽으로 돌출되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뒤얽혀 있었다. '내 삶을 반영하는 것 같군'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14)
그러한 내면 자아와의 마주침에서 결코 만족할 만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을 회피하고 외면하려 한다. 9시 정각에 만난 애인 폴의 차를 타고서 그녀는 방심한 채로 또 다시 자신을 마주한다. 그것도 라디오 계기판에 비친 자신의 손가락을 마주하면서. 이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하고 절제된 시나리오인가. 하지만 그 절제된 아름다움은 방심한 상태에서 발현된다. 무심코 라디오를 습관처럼 켜면서 발진이 돋아나듯 불현듯 발갛게 돋아난다. 마치, '내 삶을 반영하는 것 같군'
손가락쪽으로 돌출되어 있고, 이리저리 뒤얽힌 자신의 푸른 정맥을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바로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직시한다. 그것은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닥쳐온 허리케인과 같은 것으로서, 피할 수 없는 시간의 공격이었다.
"저 사람을 사랑하세요?"
"그건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에요."
머리카락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고 촛불의 불빛에 그의 얼굴의 음영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의 모습은 너무도 멋졌다. 옆 탁자에서 여자 둘이 행복해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36)
막장 드라마 같지만, 소설이 플롯은 정교하다. 스물다섯의 젊은 청년 시몽은 폴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허무와 체념에 빠져 사랑하지도 행복해하지도 않는 그녀를 바람둥이 로제에게서 빼앗아 오기로 결심한다.
폴은 시몽을 질문, 그 남자를 사랑하냐는 질문 앞에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다. 왜냐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브람스는 친구 슈만의 부인 클라라 슈만을 사랑했다. 슈만의 집에 가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클라라의 사랑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브람스의 음악은 시종일관 클라라 슈만을 향한 연서 같다. 현실세계에서 획득하지 못한 사랑을 메타버스의 세계,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 구현하듯, 브람스는 음악이라는 세계에서 그 사랑을 갈구하고 표현하고 다듬어나갔다. 그래서 브람스의 음악은 여리면서도 격정적이고, 불타오르면서도 차갑다. 슬픔이 끝없이 이어지다가도 별안간 명랑해지고 통통 튀는 쾌활함으로 어리둥절하게 한다.
바로 폴의 마음이다. 폴은 브람스의 음악을 닮았다. 시몽은 이제 브람스의 음악으로 폴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브람스의 거칠게 마찰하는 첼로 현의 격정으로 폴을 몰아부친다.
"당신은 로제를 사랑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습니다. 당신은 일요일마다 혼자 있겠지요. 당신은 혼자 저녁 식사를 하고, 아마도...... 아마도 종종 혼자 잠들겠지요. 하지만 저라면 당신 곁에서 잠들 겁니다. 밤새도록 당신을 품에 안고, 당신이 자고 있는 동안 당신에게 입 맞출 겁니다. 저라면 그 이상으로도 사랑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더 이상 그렇지 않죠.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은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없어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겐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제겐 당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고,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서 당신을 빼앗아 올 권리가 있습니다." (68)
프랑스 사람들은 독일 작곡가 브람스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브람스 음악이 독일의 전통적인 진중함과 우직함 그로 인한 무거운 분위기가 있어서이다. 그래서 브람스 음악회에 초대하려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하고 물어보고 좋아한다고 대답할 경우 초대한다는 것이다. 브람스는 프랑스 사람에게 그런 의미가 있다. 정중하게 문의를 하고, 취향이 같을 경우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시몽이 브람스 연주회에 폴을 초대하려고 한다. 시몽은 진지하다. 무려 열네 살이나 차이 나는 나이지만, 브람스의 진중함으로 그 나이차를 극복하려고 한다. 그래서 질문을 던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은 없었다. (59)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61)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시몽의 질문은 폴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었다. 놀랍게도 시몽은 브람스 연주회장에서 바람둥이 로제가 다른 여인과 함께 연주회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그는 폴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래서 그녀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를 그 자리에서 만나게 해서 그녀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기 싫기 때문이다. 그것은 폴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당신은 어떻게 지냈어?"
"어제는 일을 했어. 그리고 오늘은 플레옐 홀에서 열리는 연주회의 갔었어."
"당신 브람스 좋아해?" 그가 웃으며 물었다.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던 그녀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몸을 돌리는 바람에 그는 한 발 물러섰다.
"왜 그렇게 묻는 거지" (73)
다음날 로제와 만난 폴은 로제에게서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은 시몽이 폴에게 던진 질문과 무척 달랐다. 로제도 다른 여자와 브람스의 연주회에 갔었다. 폴도 다른 남자와 브람스의 연주회에 갔었다. 로제는 자신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조예를 생각하면서, 폴이 그런 연주회, 브람스 연주회에 가는 것에 대한 조롱, 멸시 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대한다. 로제의 질문은 그녀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두 남자의 질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이 제목으로 나가면서 질문이 아닌 점 세 개로 바뀐다. 책 뒷부분 해설에서, 작가 사강은 책 제목에서 물음표가 아니라 반드시 말줄임표 세 개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거울 앞에 선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책을 읽고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에 끄집어낸 이론이다. 작가 사강은 굳이 이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도 아니고 종결도 아닌 말줄임표 형식의 문장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폴에 대한 마음, 폴의 결말에 대해 대신 말하는 것이다.
시몽이 폴을 만나지 못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다. 그녀가 그에게 키스했던, 애정에 넘치던 그 미친 듯한 밤 바로 다음날 그는 그녀에게서 전갈을 받았다. 자신을 만나려고 애쓰지 말라는 단호한 내용이었다. '나는 당신을 힘들게 할 거예요. 당신에게 강한 애착을 갖고 있거든요'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시몽은 이해하지 못했다. (99)
당시 스물넷에 불과했던 사강이 서른아홉의 폴을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자유분방한 프랑스에서의 삶이라 해도 폴을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문학적인 자유를 허용하기에는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해본다. 1959년에 소설이 발표되고 1961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폴과 시몽 그리고 로제와의 관계는 마치, 브람스의 삶, 브람스와 슈만과 클라라 슈만을 떠올리게 한다. 직접적으로 치환하기에는 다소 관계가 억지스러운 면도 있으나, 폴의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결말을 보면, 브람스의 삶과도 무척 닮았다고 느껴진다.
클라라 슈만을 향한 브람스의 사랑은 오히려 시몽의 사랑을 닮았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은 폴의 궤적을 쫓아가는 듯하다. 그러니 결국 브람스는 시몽의 뜨거움으로 폴의 삶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 마치 시몽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이,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에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알다시피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이상이야.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행복해지기에는 지나치게 로제에게 집착하고 있어. 당신은 우리의 사랑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140)
이 책 제목이 물음표나 느낌표가 아니라, 말 줄임표가 된 것은 아마도 이 문장 때문이리라.
그녀는 좀 더 울고 싶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기도 했다.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길을 잃은 기분도. (156)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마치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드는 이 마지막 장면은, 조지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빅브라더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임마누엘을 보는 것만 같다. 그래선 안 되지만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시몽, 시몽." 그런 다음 그녀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이렇게 덧붙였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 (157)
사랑도 혁명도, 이별도 아픔도, 너무 늙어버린 자아 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그저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 익숙해진 것에 대한 굴종적 사랑. 아아, 우리에겐 혁명이 필요하다. 브람스의 거칠고 웅장하고 거대한 포효가 필요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올 때, 프랑스인들 앞에서 눈치를 보고, 머뭇거리고, 주저하고, 대답을 꺼리지 말고, 당당히, 좋아합니다. 아주 좋아합니다! 그렇게 큰소리로 자신의 거울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그런 내가 되면 좋겠다. 폴이 아닌, 시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