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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은 파리에 혼자 머물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잠깐, 그리고 눕기 전 새벽까지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는데, 이 리듬을 동행이 있을 때도 가지고 있어야 혼자가 되었을 때도 적응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원래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잘하기도 한다만.. 여행 와있는 동안 시간을 조금 더 밀도 있게 쓰고 싶어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혼자서 여행을 하고 나면 그 전과 다르게 내가 나에게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뭘 먹고 싶은지, 어딜 가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나에게 더 귀 기울이고 집중해야 하는 순간들을 거치기 때문이겠지.
오늘은 혼자 머물게 된 첫날이다. 덕분에 ‘혼자이기에’ 새로 해보는 것들도 많았다. 혼자가 아닌 경우더라도 처음으로 하는 게 많은 5일 차였고 말이지.
일상이었다면 대수롭지 않았을 일들이 여행지에서는 낯설거나 새롭게 느껴진다. 새삼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우선 처음으로 아침을 밖에서 먹었다. 처음으로 집 근처의 사크레쾨르에 갔고, 처음으로 6층 계단을 혼자서 올라왔고 또 파리에서 처음으로 갤러리들에 가보았다. 그리고 또 처음으로 여행 중인 지인을 만났고, 식당에선 와인 한 잔이 아닌 와인 한 병을 처음으로 다 비웠다. 마지막으로 처음이었던 건 밤에 집으로 혼자 가는 것이었다.
여행 중인 지인을 만나서 한 일은, 사실 서울에서도 할 수 있을 일들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를 마시고, 걷고, 밥을 먹고.
근데 뭐랄까, 여행지에서 서로가 여행자인 상태에서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일상이 아닌 ‘여행’이기 때문에 서로가 가진 시간이 더 한정적 일터, 잠깐이라면 잠깐이겠을 하루 반나절은 일상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니까.
그래서 더 고마웠고 더 소중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나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내가 있는 곳에 와준 친구가 있고, 다음 주면 또 다른 친구가 온다. 하루 종일을 함께하게 될 시간이었고 그럴 시간들을 보내게 될 텐데, 이 고마움과 소중함은 어떻게 잘 돌려줄 수 있을까? 아니, 받은걸 돌려준다기보단 더 주고 싶은 마음이라 해야겠다.
돌아가 서울에서도, 누군가와 약속을 갖게 되면 오늘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도 조차 서로의 하루의 일부를 내어준다는 건 결코 쉽거나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닐 테니까.
그 바쁜 일상 속에서, 같은 하루를 살더라도 조금씩 새로운/다른 순간들을 만나기 위해 촉을 새우고, 놓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순간적으로 사진과 글을 올릴 수 있는 인스타그램을 꾸준히 해오는 것도 그런 이유겠다.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고, 햇빛의 움직임이나 달라지는 달의 모양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런 것의 연장선일까.
일상을 지나 여행을 가게 되면, 자연의 변화 외에도 새롭고 낯선 순간/상황들이 꽤 많이도, 그렇게 묵직하게 밀려온다.
어쩌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자주 가려는 이유는 그런 순간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오고 돌아가고, 그 수고스러운 과정을 무릅쓰고 낯선 도시의 새로운 집에 짐을 푸는 이유. 그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실마리가 조금 풀린 느낌이 든다. 사실 나조차도 궁금하던 찰나였거든. 너는 왜 여행을 이렇게 좋아하니 혜진아..? 라고 ㅎㅎㅎ
오늘은 눈에 안 보이는 낯선 상황/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다음엔 눈에 보이는 새로운 것들에 대해 적어 볼까 한다. 기억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들을 보니 일련의 집합들이 생겨있더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잊지 않고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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