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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May 14. 2022

날개 없는 새

수수께끼와 주문 呪文, 새와 소년의 노래

주의 - 이 블로그 글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글은 좀 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직장 동료의 아이가 요즘 수수께끼를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아이와 메시지로 수수께끼를 주고받으며 가끔 이거 알아? 하고 묻는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 좋아했던 수수께끼가 생각났다.


날개 없는 새가 날아와서

다리도 없는데 나무에 앉아

입 없는 여자에게

프라이팬에  튀겨지지도 않고 소금도 치지 않은 채

먹혀버렸다.


Q. 날개 없는 새와 입 없는 여자는 무엇(누구)인가.


적당히 영어로 번역해서 알려줬다 (아직 못 맞췄음). 그리고 좀 놀랐다. 와 나 이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북유럽(아마) 동화/민화에 나왔던 수수께끼인데, 어릴 때 좋아했다. 북유럽 동화집은 거의 닳도록 읽었지... 이 수수께끼는 그 자체가 좋았다. 살짝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후반부가 묘하게 폭력적이고 - 날것으로 먹었다는 것을 저렇게까지 강조하다니 - 나름 운율도. 그 동화 자체는 기억이 희미하다. 뭔가 트롤, 아니면 트롤의 상위 존재 같은 것과 주인공(인간)이 내기를 해서 세 가지 수수께끼를 주고받는다. 저 트롤-상위 존재(추측)는 스핑크스를 벤치마킹했는지 (하지만 걔 망했는데) 답이 '인간'인 오래된 수수께끼를 낸다. 주인공은 저 수수께끼를 내서 트롤-상위 존재를 당황시키는데... 어라 반대였나…?



답은? 눈, 그리고 해.


어릴 때는 나뭇가지나 땅에 사락사락 곱게 내려앉는 눈 정도만 알고 있어서, 눈이 반짝이며 (질척이기도 하지만) 햇볕에 녹는 것을 어쩜 저렇게 포악하게 묘사하나 했는데, 프로비던스(https://brunch.co.kr/@minjbook/28)에서 보낸 첫겨울 깨달았다. 거기 북유럽이죠. 내가 미안해요. 몰랐어.


그전에 살았던 맨해튼도 눈이 꽤 오기야 했지만 인식을 못했던 게, 거기는 눈이 내린다, 싶으면 거의 실시간으로 제설작업에 들어간다. 덕분에 잔디밭에 곱게(?) 치워진 눈더미를 보고 와 눈 엄청 왔구나 같은 해맑은 감상이 가능했던 것. 프로비던스는... 더 북쪽에 있는 곳에 비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11월부터 3월 (가끔 4월)까지 눈이 내린다. 처음에는 그저, 와 눈 내리네 예쁘네 했지만 비상식량, 물, 전기 랜턴을 준비하라는 문자를 받고 뭔가? 싶었다. 그리고 2시간쯤 지나 깨달았다. 눈 쌓이는 게 무서워... 나는 집을 빌렸으니 다행히 눈을 치우는 것은 집주인의 일이었다. 눈이 좀 그칠 때쯤 되면 다들 열심히 집 앞의 눈을 치운다. 눈 치우는 사람도 고용하고.


이렇게 눈이 내려대면, '태양이시여 제발! 이것들 좀! 얼른! 어떻게든! 치워버려!' 뭐 이럴지도. 평생 그런 곳에서 살면 익숙해서 별 생각이 없으려나. 어쨌든 저 폭력성 - 프라이팬에 튀기지도 않고 소금을 치지도 않고 먹어버렸다는 - 도 이해할 수 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꽤 인간적인 고뇌에 기반을 둔 수수께끼가 아닌가...



이 수수께끼에서 해는 여성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해의 신은 아폴론이지만 우리나라 민화의 해와 달에서 해는 여동생이다. 북유럽 신화의 해의 신, Sól 도 여성이다 *1. 여기도 해와 달은 오누이. 같은 성별로 지정된 신화도 있더라.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둘 다 남성인데 관계성이 다르다. 달의 신 Nanna/Sin의 아들이 해의 신 Utu/Shamash. 달의 신의 딸은 Innanna/Ishtar, 금성이다 *2, *3.



어떤 동화/민화는, 내용은 대충 기억하는데 제목/지역이 기억이  나고 (유럽 어디인데...), 거기 등장하는 기도문, 이라기보다는 주문,  희미하다. 어머니가 어린 소녀를 뭔가 열매가 열리는 덤불(?) 아래에 두고 일하러 가면서  열매를 먹을 때마다  열매와 예수의 /희생이 들어가는 기도(아무래도 주문 呪文) 읊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당연히 아이는 배가 고프니까 그냥 나무 열매를 먹어버리고 트롤, 아니면 작은 악마들이었나, 어쨌든 걔네들에게 끌려간다. 다행히 소녀는 거기서 나름  지낸다. 물질적으로는. 먹을 것은 풍족하고 일상생활도 나쁘지 않은 . 하지만 주변에 같은 인간이 없고,  작은 악마들인지 트롤들인지는 자기네 아이 하나와 소녀의 결혼을 강요한다. 소녀가 10 후반이  무렵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왔다가 마침 거기 잡혀있던 소녀도 구하는데...


이 주문이 기억이 안 난다! 머릿속이 간질간질해... 노간주나무 열매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검색해도 걸리는 건 그림형제의 <노간주나무 Juniper tree> 뿐. 어쩌면 <노간주나무>가 너무 충격적이라 섞인 걸까. 나무딸기 덤불 그런 거였나 싶기도 하다. 부모님 집에 가면 어린 시절 책을 정리해둔 책장을 꼭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 다행히 어릴 때 열심히 모았던 세계 동화/민화 책이 그대로 있어서 - 막상 가면 잊어서.



사랑은 스릴 쇼크 서스펜스 *4, 아니 이게 아니라, <노간주나무>는 식인, 근친살해, 죽음과 음식.


어머니는 나를 죽이고

아버지는 나를 먹었네

나의 누이, 작은 마를렌 Marlinchen,

내 뼈를 모두 모아,

비단 손수건에 감싸,

노간주나무 아래 뉘었네.

Kywitt, kywitt, 나는 아름다운 새가 되었네!

- 그림형제 <노간주나무> 중에서 *5


웬만한 HBO 드라마보다 폭력성/막장도가 높지 않나 싶은 내용에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뭐야(무서워) 했는데 생각해보면 <빨강 모자>도 만만치 않지... 나는 사냥꾼이 늑대 배를 가르는 부분이 무서웠다. 어쨌든 이 노래도 뭔가 입에 착 붙는다.


0. 기억나지 않는 북유럽동화

*1 Sól https://en.wikipedia.org/wiki/S%C3%B3l_(Germanic_mythology)

*2 Nanna/Sin https://www.britannica.com/topic/Sin-Mesopotamian-go

*3 Nanna/Sin https://en.wikipedia.org/wiki/Sin_(mythology)

*4 명탐정 코난 오프닝 테마

*5 노간주나무 https://en.wikipedia.org/wiki/The_Juniper_Tree_(fairy_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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