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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 Mar 31. 2023

백 년과 지혜 (1/2)

도쿄 햐쿠넨 百年 서점

어딘가에 가게 되면 그곳의 동네 서점을 검색한다 (그다음은 동네 카페). 낯선 동네에 가서 마음이 번잡할 때는 서점이나 카페에 간다. 구글맵에 반짝반짝하게 표시를 해 두면 일하다가 도망갈 곳이 정해졌다 싶어서 그런가 마음이 좀 가볍다.


읽는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던가, 누군가의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어떤 서점을 좋아하는가, 에 대한 것도, 한 사람에 대해 (조금은) 알려주지 않을까.


(1) 어떤 서점에서는 멋지다, 분위기가 좋다, 하고 감탄하지만 책이 아닌 문구류나 기념품 정도만 사게 된다. (2) 어떤 서점에서는 (계획에 없는) 책 한두 권 정도를 사게 된다. (3) 어떤 서점에서는 "그냥 여기 자리 깔고 살고 싶다"라고 맹렬하게 바라게 된다. 이런 서점에서는 네다섯 권 정도를 홀린 듯 안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결정의 순간에 두권 정도를 고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국 세 권을 사서는 돌아가서 (왜 세 권만 샀지) 후회한다.


(3)에 해당되는 서점들에 대해 좀 더 덧붙이자면, 우리말이나 영어로 된 책을 다루는 서점의 경우는 '이 서점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책을 다 읽고 싶어!'가 포함되는 감상인데, 언어를 모르는 경우에도 이 언어를 배우면 (서점이니까 어떻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책들을 다 사랑하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이다.


도쿄 키치조지의 햐쿠넨 서점, 그리고 교토 이치조지의 케이분샤 서점은 둘 다 많이 (3)이다.

철학의 길을 걷다가

나는 일본에 가면 글을 막 배우는 아이의 심정이 된다. 내 일본어는 예에-전 고등학교 제2 외국어 수준에서 멈췄다가 급격히 하강했기 때문에, 지금은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읽을 수 있고 알고 있는 한자를 바탕으로 적당히 상상력을 더해 뜻을 추측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길을 가다가 보이는 글자란 글자는 다 신이 나서 읽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표지보고 제목보고 추리력을 쥐어짜다가 난 왜 일본어를 못 읽나 좌절하고 그러느라 정신없다. 그리고는 그림책을 보러 간다.



햐쿠넨(백 년) 서점은 예전에 갔을 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말했듯이 많이 (3)이다) 이번에 도쿄에 가면서 (일 외적으로는)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내가 아무리 바빠도 여기엔 가겠다... 결국 도쿄일정 마지막날 저녁에 갔다. 키치조지역에서 내리면 찾기 쉬운 곳인데(아마) 나는 두 번쯤 방향을 틀었고 (그러다가 작은 까늘레 전문점에서 딸기 까늘레를 샀다), 마침내 건물을 찾아서 2층으로.

서점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큰 테이블의 책들이 반짝거린다. 그런데 내가 읽을 줄을 몰라...! 공부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햐쿠넨 서점은 책장의 높이도 적당하고 간격도 마음에 든다. 책장 사이에 들어가 책 등을 보다가 꺼내서 뭘까 추측해 보고 그러다 보면 행복하다. 읽을 수 있으면 더 행복하겠지. 그리고 그림책코너로 가서 이것저것 살폈는데 (몇 년 전에 여기서 에롤 르 캉 그림의 <눈의 여왕>, 그리고 이세 히데코의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속편인 <그는 거대한 나무 같은(? 적당히 번역)>을 샀기 때문에 기대가 컸음) 역시나 이런 책이...

배의 아이.. 페리나? 저자가 칼비노인가...? 그림이 너무 아름다운 책이고, 내용도 흥미진진해 보이는데, 어쩐지 그림이... 이런 그림 아는 데? 싶었다.

https://brunch.co.kr/@flatb201/301

카페에서 책 읽기 님이 소개하셨던 사카이 고마코...! 속으로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사카이 고마코 그림의 책을 대여섯 권쯤 찾아 늘어놓고 고민을 시작했다. 어느 책을 살 것인가. 페리나, <여우의 신님>은 꼭 사고, <숲의 추(노트?)>는 에세이인가 싶은데, 어쨌든 각 장마다 붙은 일러스트가 너무너무 좋다. 아기고양이를 길에서 데리고 오는 이야기(아마?)도 좋다. 캠핑에 간 어린아이가 혼자 들판에서 (키가 큰 풀 숲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장면도 생생하게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데... 아니 이 토끼들은 또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결국 세 권을 샀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서 사지 않았던 책들이 아른거려서 당연하게 후회했다. 심지어 까늘레도 맛있어서 왜 하나만 샀을까 후회했다 (나는 이 글과 다음 글 내내 후회를 반복한다).



*서점에서 깨우치는 언어: <열세 번째 이야기>에서 마가렛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커다란 서점을 돌아다니며 책의 위치를, 모양을, 글자를 그리고 언어를 '알게'된다.

https://brunch.co.kr/@minjbook/36

먼지, 아토피, 기관지염, 비타민D 부족을 걱정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오래된 서점을 누비며 글에 익숙해지는 어린 시절 이라니. 어쨌든 로망이다.



百年 (햐쿠넨) 서점 https://linktr.ee/100hyakunen


Book Nerd Tokyo https://www.booknerdtokyo.com/articles/my-top-10-tokyo-bookstores-of-2019

이 블로그 글을 왜 도쿄에 가기 전에 보지 않았을까. 봤더라도 바빠서 다 찾아가지는 못했을 것 같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기 서점들 하나씩 다 가보고 싶다.


배(pear)의 아이 페리나(Perina) - 배와 함께 팔린 소녀. 이탈로 칼비노 버전.

https://en.wikipedia.org/wiki/The_Little_Girl_Sold_with_the_Pears

왕에게 해마다 네 바구니의 배를 바쳐야 하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해에 배가 모자라서 남자는 막내딸을 바구니 하나에 넣었다. 왕궁에서는 소녀를 구출해서 다행히 돌려보내지는 않고, 하녀로 키운다. 소녀는 자라면서 왕자와 친해지고 둘 사이를 질투하던 다른 하인의 계략으로 왕은 소녀에게 마녀(?)의 보물을 훔쳐오라고 명령을 하는데...

 내용은 다른 동화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칼비노 버전에서 소녀는 배나무 위에서 잠을 자는데 아침에  나무 아래의 작은 할머니가 소녀에게 지혜를 나누어준다 (다른 버전에서는 왕자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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