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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되지 않는 것을 쓰는 마음

현실에서 환상을 유영하며 만들어가는 언어들

by 바란

20년 전,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처음으로 MBTI 검사라는 것을 해보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채 ‘그냥 날 혼자 내버려 둬’라는 표정으로 무장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통과 중이었다. 모든 것에 시큰둥했기에, MBTI 검사에서도 문항 하나하나에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대충 마음 가는 대로 답지를 골랐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ISTJ. 내향(I) 51, 감각(S) 3, 사고(T) 23, 판단(J) 13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감각(S) - 3이라는 수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얼마든지 N으로도 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보였다. 직관형(N)의 설명을 읽어 봐도 이쪽이 오히려 나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인생을 좀 더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S에 가까운 N 혹은 N에 가까운 S라는 것이다.


흔히 N 유형들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무장한 타입은 아니다. SF소설을 읽을 때 특히,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않는 것을 실제처럼 받아들이는 일이 유독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현실에 늘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겨왔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감각형(S)의 방식으로만 살아온 것만은 아니다. 일기를 쓸 때에도 일어난 일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일기와, 그날의 감정과 그로 인해 뻗어나간 여러 생각들을 두서없이 나열한 일기를 둘 다 써왔다. 후자의 일기에서 내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올 때가 더 많았다.


내가 ‘상관격’이라는 사주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MBTI에서 S와 N을 오가던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주에서 상관은 규칙을 벗어나려는 힘이자 감각의 언어다. 상관을 격으로 가진 사람은 현재의 디테일을 발판 삼아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본능을 지닌다. 그건 S에서 N으로, 감각으로 직관으로 튕겨나가는 성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S에서 머무르다가도 갑자기 N으로 달아나기도 한다. 감각의 세밀함에 몰두하다가도 어느 순간 직관으로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것이다. 이건 나를 이루는 상관이라는 자기장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진동과 같다.


나의 이런 경향은 특히 글을 쓸 때, 그중에서도 창작을 할 때 가장 뚜렷하게 발현된다.


대학 시절, 내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소설의 소재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집필하는 과정에서 그 현실은 점점 비유와 상징으로 변형되었고, 결국은 어떠한 환상성을 띤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때 그 소설을 쓰며, 이것이야말로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소설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현실에 갇히지 않는 서사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떤 글보다 소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여겨졌다.


나는 실재하는 세계 위에서 나의 이야기를 펼치는 게 편하다. 나의 빈약한 상상력은 붕 뜬 비현실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치기보다는, 오히려 왠지 모르게 주저하며 현실 세계를 향해 움츠리게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에만 머무른다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담아낼 수가 없다. 그래서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나는 소설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내게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상상으로 멀리 도약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기에.


나에게 소설 쓰기란, 한 때 무심히 지나쳤던 감정들을 다시 꺼내어 응시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건져내며 문장으로 쌓아하는 과정이다. 나는 소설을 쓰며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했던 것조차도 다시 해체하고, 조립하고, 이름을 붙이며 하나씩 복원해 나간다. 파편화된 서사와 감각들을 세심하게 엮어나가는 그 작업을 통과하며 나는 비로소 내가 구축한 세계에 숨결을 불어넣게 된다.


현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들이 결국 환상을 닮아가는 이유는, 현실의 언어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감정의 층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쓰는 문장들이 현실의 디테일을 품고도, 어디까지나 현실에만 구속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몇 겹의 단어로 포장해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밀도는 나를 언제나 더 멀리 있는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현실을 붙잡되 그것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사람. 나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썼던 문장을 버리고, 버린 것을 다시 주워와 고치기도 하면서,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말이 되게 하려는 집요한 쓰기를 앞으로도 해나가려 한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작점으로 되돌아오는 반복 속에서 나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언어들을 찾아 백지에 새겨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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