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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지만 떠들고 싶진 않은 사람의 말

말은 아끼지만 문장은 넘쳐흐르게

by 바란

나의 mbit는 IS(N)TJ이다. S와 N를 오가지만, 스스로는 S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내 MBTI를 말하면 대부분 ‘그럴 것 같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쉽게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고 계획적이며, 감정보다는 이성을 따르고, 웬만해서는 나서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사주로 보면 나는 ‘상관격’이다. 상관은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기질이다. 언변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종종 ‘맞는 말인데 재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사주에 상관이 강한 사람들은 언론이나 비평 분야의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말하자면 상관격은 나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말을 하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내 MBTI가 I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할 말을 하지 못해서 좀이 쑤시는 성격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묵한 편이라고도 말할 수도 없다. 어릴 적엔 ‘발표를 조리 있게 잘한다’는 평가가 생활기록부에 늘 적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성장할수록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데에서 느끼는 답답함보다는, 굳이 말을 해서 따라오는 구설수나 오해에 휘말리는 피곤함이 더 커진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서 후회한 적은 없었다. 결국 ‘할 말은 하는’ 편이다.


이렇게 나를 설명하는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나를 스스로 ‘어떠한 사람’으로 규정하기는 퍽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도구로 사주와 MBTI를 둘 다 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둘을 모두 들여다볼 때에야 비로소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의 복잡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재밌는 단어를 발견했다. ‘내향성 관종’. 보자마자 이건 내 이야기다 싶었지만 결국 이것 역시 나와는 조금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주목받는 게 싫지 않다. 대놓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향적이다. 웬만하면 왁자지껄한 이벤트 없이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 그런데도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어딘가 찝찝함이 남는다. 이 아이러니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학교 시절, 나를 딱 한 달 동안 봤던 교생선생님이 써주신 편지 기억에 남는다. ‘바란이는 차분한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굉장히 명랑하고 활발한 것 같아서 참 좋더라.’ 그 말이 잊히지 않는 건, 아마도 나를 이보다 더 정확히 설명할 문장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학년말에 반 아이들이 내게 써주었던 롤링페이퍼에는 ‘독특하다’는 형용사가 항상 따라다녔다. 나는 스스로 별로 튀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반골기질도 없다고 여겨 왔다. 하지만 타인들이 바라보는 나를 마주할 땐, 내가 나 자신을 모두 안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이 복잡 미묘함 속에서 결국 내가 나를 온전히 드러내는 수단으로 선택한 건, 그렇다, 여지없이 글쓰기였다. 말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글을 쓰는 게 더 좋다. 나는 말과 글 사이 어딘가에 서 있지만, 내 시선은 결국 글로 향하게 되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글, 이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나의 ‘관종 기질’을 설명하기에 더없이 충분하다.


스스로도 명료한 단어로 정의하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길게 풀어쓰며, 나 자신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것. 화려한 말재간을 빌리지 않고도, 그저 여러 번 다듬어 미숙함을 고쳐나가는 문장으로 어떠한 족적을 남기는 일. 그것이 내가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상관격’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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