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어느덧 60여 일이 지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브런치를 해볼까 말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고꾸라졌던 그날로부터.
지난 4월 30일. 뭐라도 하자, 이제 좀 진짜 뭐라도 좀 해보자고 다짐했던 게 무색하게 또다시 일 년의 3분의 1이 지나가버린 시점이었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스토리’를 검색해서 접속해 봤다. 4년 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게 ‘민트숲’이라는 필명을 만들어 가입해 놓고는, 아무 글도 쓰지 못한 채 텅 비워둔 계정이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글 3개’를 쓰는 것부터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구상만 하다가 그만두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이번에야말로 쓸 수 있을까. 내가 이런 글을 쓰면, 사람들이 읽어주기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하려고 정류장 쪽으로 바삐 걸어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발밑에 무언가가 턱 걸렸다.
그 순간 아주 느리게, 마치 슬로모션처럼 땅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어어? 망했다… 중심을 못 잡겠다… 이대로 넘어지겠다…
생각하다가,
철퍼덕.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엎어졌다.
허리가 크게 꺾였고 무릎은 튀어나온 돌부리 같은 무언가에 세게 부딪혔다.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걸 세워 든 자세 그대로 넘어진 덕에 핸드폰은 무사했다. 가난한 청년—중년이 머지않은—의 반사적 본능은 삐끗한 신체보다도 핸드폰 액정의 안위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었다.
흘끗거리는 행인들의 시선도 민망했고, 무릎과 허리가 욱신거렸지만 애써 아랑곳하지 않은 척하며 벌떡 일어섰다. 나는 가야 할 곳이 있다. 알바를 가는 길이었으니까. 푼돈이라도 벌어야 했다. ‘오늘 일진이 사납네!’ 싶었지만 일에 지장이 있을 만큼 심한 부상은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다친 몸으로도 알바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그날 이후, 나는 구상한 대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브런치 생각을 하다가 길에서 넘어지기까지 했는데, 이번에야말로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 넘어짐이 단순히 쪽팔린 해프닝으로만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브런치 계정을 운영하는 동안 글을 대단히 많이 발행한 것도 아니고, 처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글들도 있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이 브런치북도 그중 하나였다. 기존에 연재하던 브런치북인 『다섯 계절의 틈에서』는 처음부터 얼개를 잡고 철저한 계획 하에 쓰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글의 톤이 너무 진지해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전환해 가볍게 써보자는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했던 게 바로 『가능하니까 각오해』 브런치북이었다.
그래서 이런 글도 나올 수 있었다. <이혼율 높은 MBTI인데 사주엔 남편복도 없더라> 이 제목은 자조적이라기보다는 ‘그렇다고 하는데, 그게 뭐 별건가요?’ 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것에 더 가깝다. 사실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입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사실 이 글의 후속으로 <남편복은 없지만 자식복은 있더라>라는 제목의 글을 쓸만한 ‘사건(?)’이 생겼다.
며칠 전 새벽, <이혼율 높은 MBTI인데 사주엔 남편복도 없더라>가 조회수 1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이 왔다. 평소 조회수 100을 넘기기도 힘들었던 내 글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포털사이트 다음(Daum) 모바일 메인 페이지에 내 글이 노출된 것이었다.
지금 그 글의 조회수는 만 뷰를 넘겼다. 많은 노출이 되었다고 해서 브런치의 구독자가 유의미하게 증가하거나 내가 쓴 다른 글로의 유입이 늘어나진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접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기쁨이 되었다.
흥미로운 건 노출이 된 그 글이 『다섯 계절의 틈에서』처럼 ‘각 잡고’ 쓴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소재도 글이 될 수 있나 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써본 글이 결국 내 브런치의 최다 노출 글이 되었다. 인생이란 건 정말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이전 글에서 나는 브런치로 글쓰기의 곁가지를 뻗어내는 중이라고 쓴 적 있다. 만 뷰를 넘긴 그 글은 말하자면 곁가지의 곁가지였다. 그렇게 슬쩍 내밀어본 곁가지에서 기어이 조그마한 열매가 맺혔다는 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그렇게 뷰수가 폭발한 날이 내가 ‘브런치라는 걸 해볼까’라고 처음 생각했던 날로부터 딱 60일이 지난날이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둘 다 기사(己巳) 일이었다. 묘하게도 나는 기사년생이다. 이런 우연 덕분인지 마치 탄생을 두 번 겪은 것 같았다. 나는 브런치를 처음 구상했던 날에 태어났고, 브런치의 조회수가 터진 날에 다시 한번 태어난 셈이다.
그리고 브런치를 처음 구상했던 그날은 ‘새로운 탄생’을 생각하며 길바닥에 고꾸라졌던 바로 그날이기도 했다.
그때 바닥으로 처박혔지만 핸드폰은 멀쩡했던 것, 약간의 타박상은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은 없었던 것. 이 모두가 곧 시작될 나의 브런치를 응원해 주는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첫 번째 브런치북을 마무리할 때까지 소위 ‘구독자가 급증하는 인기 작가’가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알바를 갔던 것처럼, 읽히지 않는 글에 속상해하기보다는 다른 브런치북을 시도해 보자는 결론을 냈고 그게 이런 결과로 돌아왔다.
지나고 보니 마치 오뚝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했던 건, 일순간 기울어진다고 해도 그 기울어진 곳을 무게중심을 실어 다시 스스로를 세워내는 오뚝이 같은 글쓰기였다.
글을 쓰다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예고 없이 넘어지는 날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넘어진 것’ 자체가 글의 소재가 된 것처럼, 툭 뻗어낸 곁가지가 어쩌면 나를 가장 멀리 데려다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안에 높이 자라나는 생장력이 부족하다면 이렇게 무심히 내밀어보는 작은 가지들이 나라는 나무의 수형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가지를 뻗어본다. 글감이 안 될지도 모르는 글쓰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