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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소민 Sep 01. 2024

안개의 경계선

단편소설

1.

언젠가 한 번은 그를 꼭 만날 것이라고 예감했다.

‘살다 보면 살아내다 보면 마침내 그를 만난다.’  

 

그날이 한라산 중턱, 안개에 휩싸여 한 발도 앞으로 내딛지 못하는 바로 지금 줄은 몰랐지만.

처음 형체를 알 수 없는 안갯속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 내심 반가웠다. 그러나 이내 소름 끼치는 공포가 엄습했다. 산정상에서부터 내려온 안개가 쏟아지며, 안개에 포위된 나는 순간 방향 감각을 잃었다. 그러다가 안갯속에서 나타난 그의 얼굴을 보았다.

 

30대 미혼 여자 혼자 새벽 산행하겠다는 것을 두고 게스트하우스 사장 부부는 한숨을 푹 쉬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건넸다. 어젯밤 그들은 방문을 벌컥 열고서 ‘아가씨!’하고 날 깨웠다. 주는 저녁도 안 먹고 들어가 인기척이 없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 봤다고 했다. 되려 당당한 그 태도에 난 한순간 죽을 자리 보고 외진 곳을 찾은 뜨내기 모양새가 됐다. 그들은 미안하다며 앓는 소리를 하며 얼른 방문을 닫았다. 미덥지 못하게 생긴 1인실 방문 손잡이 잠금 버튼을 밖에 들리라는 듯 엄지로 ‘탕’ 세차게 눌렀다. ‘차라리 좀 멀더라도 호텔에 가는 건데.’라며 극심한 후회가 밀려왔다.

 한라산이랑 가까운 숙소를 찾다가 이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60대 정도의 푸근하고 인심 좋아 보이는 인상의 여주인은 안개가 더 심하면 입산금지인데,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쉬는 게 어떠냐라고 했다. 하지만 1박 2일 일정으로 온 나는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텃밭에서 붉은 흙이 묻은 싱싱한 채소를 묵직하게 한 소쿠리 따오던 주인아저씨는 그럼 아침이라도 먹고 가라고 했다. 배춧국이랑 시금치나물 맛있게 해 주겠다며. 하지만 나는 챙겨 온 다이제스티브와 하루 견과, 그리고 보온병에 든 따뜻한 차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며, 불룩한 분홍색 트레킹배낭을 그들에게 으쓱하고 보이며 길을 떠났다.

 정상에 올라서 백록담을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을 후루룩 마시면 배가 뜨뜻 해지며 이 속살을 파고드는 한기가 가실 텐데 하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근데 생각해 보니 올라오면서 아무도 마주치지 못했다. 지금 내 눈앞에 아른거리는 저 안갯속의 사람은 경찰 당국에 쫓기는 현상수배자 거나 나쁜 마음을 먹고 약한 자들을 노리는 위험한 인물이라면? 난 꼼짝없이 여기서 죽는다. 등산 스틱 두 개를 스윙하는 야구선수처럼 손에 꽉 잡아 쥐었다. 경계심을 늦추진 않지만 예의를 갖추어 떨리는 염소 목소리로 말했다.

 

"

여기 사람 있어요. 부딪히지 않게 천천히 와요."

 

2.

자박자박 진흙을 밟는 소리가 안갯속에서 뚝 끊겼다. 그리곤 정적이 이어졌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가 두리번거리다 혹시 방향 감각을 잃었을까? 그렇다면 잘 가라. 아니 이리로 와. 아니 모르겠다. 등산 스틱이 손아귀에서 녹아내릴 듯 뜨거워지고 내 호흡도 가빠진다. 그때 흰 커튼을 걷어내듯 뿌연 운무를 두 손으로 휘휘 젓고 다가오는 큰 키의 남자가 보였다.

“아악!”

나는 고라니 울음 같은 비명을 짧게 내질렀다. 비명이 산허리를 감싸고돌았다. 어디선가 새들이 화들짝 놀라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다시 멈칫하더니 이쪽으로 다가오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너였다.

"예현아? 김예현! 정말 너야?"

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의 간극이 있는데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나를 단번에 알아보는 낯빛이다. 그는 안갯속에 반쯤 가린 채 서서, 날 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안개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령처럼 고요하고 슬픈 실루엣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해도 괜찮았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너는 나이고 나는 너였으니까.’

 

눈앞에는 내 인생에 가장 눈부신 순간들을 함께한 그가 있다. 이 안갯속에서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나는 그와 나 사이에 고여 있는 시간의 웅덩이를 물리적 현실로 가정해 본다. 숨 참고 풍덩 빠지는 내 육체를 느낀다. 하얀 어둠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안개가 부리는 마법인가? 진창에 발목이 묻힌 듯 한 발을 떼기도 쉽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서 그에게 가까이 간다. 날 안아달라고 두 팔을 뻗는다.

그는 흠칫 놀라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난다. 서운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한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한걸음 앞으로 내디뎌 본다. 안갯속에서 공간이 지워지니 시간조차 희미하다. 그 한 발자국에 수많은 시간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네가 무엇이든 괜찮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그에게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길게 뻗은 내 손끝만 달팽이의 촉수를 보듯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기다려 아직이야.’언젠가 그가 파도를 기다리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기다리자. 다시 만나기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 올라온 길마저 지워져 다시 내려갈 수도 없다.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를 감싸며 흐르는 안갯속 그도 마땅히 발 디딜 곳이 없을 것이다.

 

‘조금 쉬었다가 가도 돼.’ 그 말도 가까스로 기억했다. 크게 숨 들이켠 안개에서는 풀잎에 맺힌 이슬 맛이 났다.

 

안개가 뿜어내는 물기는 우리를 젖은 곰인형처럼 축 늘어지게 한다. 내가 먼저 서 있던 자리에 앉으니 그가 따라 앉았다. 그를 보며 내가 묻는다.

"백록담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온 거야?"

어떤 질문도 그에게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안개가 솜이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방음벽이 되어 내 소리를 삼켜버린 것인지. 어떤 대답을 고민 중인 것인지 말이 없다.

이제 내 눈앞에 두고도 만지지도 껴안지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그에게 나는 북받치는 서러움을 느낀다.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다. 이토록 평생 그리웠지만 좁혀지지 않는 단 하나의 간극으로 인해 나는 이 우주 한가운데 홀로 존재하는 느낌이다. 안갯속에 서 있는 우리는 어째서 전장에서 대치중인 적군과 아군 같고, 지뢰를 밟고 겁먹은 소년병 같이 서로에게 경계를 풀지 못하는 걸까?

 

3.

그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서핑 동아리 <그린웨이브>에 처음 들어갔을 때였다. 나는 신문방송학 전공으로 졸업 후 방송사에 다큐멘터리 PD로 취직하려고 했다. 당연히 교내 방송국에 지원하려 했는데, 학생회관 앞에 붙은 포스터 사진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린웨이브’는 파도의 가장 높은 지점 ‘피크’에서 파도가 꺾인 후 아직 파도가 깨지지 않은 나머지 구간을 말한다고 신입생 모집 포스터에 적혀 있었다.

 

중학생 때 부모님의 이혼한 후 나는 동해 양양에 살던 할머니집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할머니는 시내에서 빵집을 하셨고 나는 가게 테이블 옆에서 학교 숙제를 하곤 했다. 나비파이, 땅콩크림빵 등 원한다면 얼마든지 집어와 먹을 수 있었지만 친구들이 빵을 사러 오면 괜히 부끄러워 카운터 뒤로 가 할머니 등뒤에 붙어 있었다.

주말에 영어수학 보습학원에서 보충수업을 다 하고 나면 할머니에겐 비밀로 하고 가끔 버스를 타고 바닷가에 가서 노을이 지는 바다를 등지고 파도를 타는 사람들을 보았다. 파도를 달래고 바다와 놀아주듯 유유히 해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서퍼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도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을까? 문제집을 풀다가 연습장에 파도를 타는 서퍼의 모습을 그려서 책상 앞에 붙여 두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는 내가 그때 본 서퍼랑 비슷했다. 그는 컴퓨터공학과를 다녔다. 틈만 나면 동해 양양이나 부산 송정, 제주도 월정리로 서핑하러 다닌다 했다. 동아리방 문을 처음 열어주던 그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차 한잔을 내어 주었다. 우롱차라고. 마음이 풀어지고 편안해질 거라며 컵을 건네는 그의 손가락은 곧고 길어 아름다웠다. 큰 키, 태양빛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피부, 잔 근육으로 균형 잡힌 역삼각형의 몸에는 건강한 에너지가 흘렀다.

나와 함께 마주 보고 있는 동안 그는 할 말을 고르는 듯 입을 옴짝 달짝 거리다 입술을 꾹 다물어버렸다. 풉. 하고 나는 웃었는데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정쩡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두 명 들어오자 그는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그들에게 나를 소개해줬다. 마치 우리가 그전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눠 친밀함을 나눈 적이 있던 것처럼. 그 모습이 천연덕스러워 나는 또 활짝 웃었다.

그는 책임감과 리더십이 있고 사람을 좋아했다. 강의가 끝나면 학교 중앙도서관에 새벽부터 와서 잡아 놓은 자리에 돌아가 착실히 그날 배운 것을 정리하거나 랩실에서 프로그램 개발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늦은 밤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그의 자신감 있고 당당한 매력이 좋았다. 처음으로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벽을 만난 것 같았다.

 

여름에는 동아리 사람들과 동해 양양에서 서핑을 했다. 겨울에는 설악산으로 가 빙벽 등반을 했다. 활동적이고 쾌활한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성격의 나도 조금씩 대범해지고 웃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삶에 ‘기대’하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이루고 싶은 수많은 꿈인지, 무엇으로도 깨지지 않는 견고한 친밀함인지, 죽음도 뛰어넘는 영원성이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 모두 일 수도 있다.

동아리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커플이 있었는데, 그들은 수진과 연호였다. 수진의 지적이고 차분한 인상은 처음부터 호감이 갔다. 무엇을 이야기하건 본질을 꿰뚫어 보고 이야기하는 명석한 두뇌와 조리 있는 말솜씨는 내가 닮고 싶은 부분이었다. 화학공학을 전공하며 졸업 후 대기업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 석사 이상으로 계속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연호는 예현과 같은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는데, 이미 중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고 했다. 영민하게 반짝이는 그의 눈빛은 성공한 IT CEO의 과거를 내가 지금 함께하는 걸까? 싶을 만큼 미래가 기대되는 친구였다. ‘영업은 예현이 맡으면 되겠다’라고 말하며 둘은 스타트업 기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구상은 제법 구체화되며 시장조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국에 향후 수요가 많을 걸로 예상되는 서핑과 빙벽 등반 스폿, 그 주변 상권을 연결해서 레저 마니아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릴스폿(ThrillSpots)이라는 이름의 플랫폼이었다.

예현과 연호는 성적 우수자로 들어와 공대 특별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고 있었기에 공부에만 매진하면 됐다. 수진도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지만 동아리 활동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월세를 내야 해서 빠듯한 형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어 과외를 하며 계속 돈을 벌고 있었다.

 

4.

그때 우린 미래에 대한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우리 앞의 세계가 우리에게 어서 오라는 듯 너그럽게 문을 열어준 것처럼 보였다. 관심 분야도 개성도 각기 달랐지만 우리는 물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비가 오면 우산이 가방 안에 있어도 함께 빗속을 걷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이었다. 나의 가방 위에는 예현이 벗어준 셔츠가 덮여 있어 속까지 빗물에 젖지 않았다. 나는 그 작은 행동에도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충족감을 느꼈다.

학기 중에는 공부하다가 매미 울음의 데시벨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찬연한 햇살이 비치는 해변으로 달려가 파도를 탔다. 특히 예현은 서핑 강습 자격증도 있을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지녔다. 사람들은 자신의 서핑보드를 해변에 일찌감치 처박아 두고 그가 날 센 돌고래처럼 파도 위를 미끄러져가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나의 자랑이자 친구들의 자랑인 그를 우리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 자식아, 로테이션해야 나도 타지. 쇼맨십 그만 부려!”

연호는 그에게 괜한 핀잔을 주면서도 그를 감싼 어깨는 더 꽉 움켜쥐었다. 나는 그들이 해변에서 서로를 밀치고 허리를 껴안아 바다에 빠뜨리고 백사장 위를 달리며 경쟁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쟤들은 아마 저게 우정을 가장한 사랑인 걸 끝까지 모를 거야.”라고 수진의 말에 나는 허벅지를 치며 웃었다.

내가 패들링만 하며 내가 탈 파도를 못 찾거나 애써 파도 위에 서있다가 드롭할 때, 예현은 괜찮다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빅웨이브가 오고 있었다. 내가 서둘러 무릎으로 서려하자 그가 말했다.

“기다려! 아직이야.” 그러다가 예현은 지금이라는 수신호로 팔을 내게 뻗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나의 파도를 탔고, 그 첫 파도가 그 지역에서는 드물게 생성된 빅웨이브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진은 그 순간 잽싸게 사진을 찍었고, 연호는 나의 첫 성공을 발바닥 점프 박수로 축하했다. 그 사진은 후에 다음 해 동아리 모집 공고 사진으로 쓰였다.

 

해가 저물면 서퍼들은 그제야 자신에게 다리가 생긴 걸 깨달은 수륙 양립 동물처럼 어기적거리며 뭍으로 나왔다. 노을 지는 바다를 보며 바람과 달은 저 거대한 바다를 태초부터 한 번도 잠잠히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파도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지평선 너머로부터 태어나 소멸하고 또 부지런히 생성된다. 수천수만 가닥의 흰 레이스들. 서퍼들은 바다 위에 사선으로 자신들의 길을 만들고 그것을 온몸의 균형으로 다스린다. 지구라는 빛나는 행성이 만든 푸른 에너지에 몸을 맡긴다. 바다는 그 큰 팔로 마치 그네를 밀어주듯 파도를 보낸다. 행복한 서퍼들의 비명이 부서지는 물보라와 섞여 다시 쓸려 내려가는 파도로 전달된다.  

그 상승의 기쁨 속에 우리는 서로 뜨겁게 바라보고 열렬히 사랑했다. 해변을 달리며 주체할 수 없이 솟아나는 에너지에 환호성을 질러 애꿎은 갈매기들을 놀래 키는 장난도 쳤다. 부서지는 흰 파도 속에서 우리는 서로 엉겨서 끌어안았다. 여름의 물빛을 닮은 생명력으로 젊음을 찬미하는 영원한 춤을 추었다.

 

한강이 꽁꽁 얼어붙으면 설악산으로 가서 빙벽을 탔다. 선등 주자는 항상 연호가 맡았다. 그는 정상에 올라 스크루를 얼음 깊숙이 박고 연결한 로프줄을 내렸다. 아이스엑스를 양손에 들고 사마귀처럼 앞뒤로 흔드는 그를 우리는 아래서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리고 차례로 빙벽을 타고 올랐다. 얼음 벽에 가쁜 호흡을 내쉬면 하얀 입김이 올라왔다. 빙벽에 매달려 있던 우리는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과 양수로 연결된 네 쌍둥이 같이 하나의 운명처럼 느꼈다.

아직 반도 못 왔을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쥐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밀려드는 공포에 눈물이 차오르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쉬었다가 가도 돼!”   

나를 진정시키는 그의 말에 한숨 돌리고 빙벽 위를 바라봤다. 문득 우리가 거대한 빙수 위에 박힌 젤리들 같다고 생각했다. 혀로 빙벽을 핥았다. 얼음에서는 쇠맛이 났다.

“맛이 어때?”

“피맛이 나.”

갑자기 그가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 코에서 피난다. 내려가자.”

 

아이스엑스를 잡고 얼음에서 버티며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코를 막을 수가 없었다. 피로 엉망이 된 얼굴을 그는 물티슈로 닦았다. 내가 고개를 뒤로 젖히려 하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앞으로 조금 숙이게 하더니, 코를 지혈했다. 그리고 빙벽에서 얼음을 하나 깨서 손수건에 둘러 내 미간에 대주며 말했다. 이제 좀 쉬어야 해. 나는 그의 능숙한 처치에 놀랐고 설렜다.

넌 다시 올라가라고 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빙벽 꼭대기에 올라간 수진은 연호와 함께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우린 여기 있을게.” 예현이 말했다.

“곧 보자.” 연호의 목소리였다.

수진과 연호는 빙벽 모서리 너머에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산 위에서 우리의 말들이 메아리쳤다. 그 음성이 물결치면서 반복되고 하나로 합쳐졌다. 예현과 나는 계곡과 산을 둘러 울리는 그 소리의 공명에 취해 입을 벌리고 함께 하늘을 바라봤다.

 

5.

“잘 지냈어?”

그가 나를 만난 후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처음 안갯속에서 내뱉은 소리였다.

“응. 잘 지내.” 내가 대답했다.

“매년 여기 온 거야? ”하고 내가 물었다.

“… 아니.” 그의 목소리가 한층 무겁다. 그가 뒤이어 말했다.

“7년 전부터 늘 왔어.”

나는 문득 반가운 마음이 들어 말했다.

“7년 전에 나도! 우리 그때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다시 침묵했다.

“왜 그래… 날 봤는데 반갑지 않아?”나는 채근하듯 물었다.

그가 당황하거나 머쓱하게 웃으면서 예전처럼 웃어 주길 바랐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 안개가 더 짙어진 건지, 그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사위를 구분하지 못할 희고 축축한 허공에 떠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있는 힘을 다해 보이지 않는 그에게 다시 소리쳤다.  

“무서워… 마치 네가 살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져. 너 어디에 있어?”

“자기야…” 그가 날 불렀다.

보이지 않는 흰 적막 속에서 그가 나를 예전처럼 ‘자기’라고 말하자, 그 목소리는 내 심장을 움켜쥐었고 내 몸은 낙엽처럼 파스락 부서질 것 같았다.

 

6.

그날은 가을 한 학기를 앞두고 다들 취업이나 진학으로 인해 예민해져 있었다.

“자기야 저기 단풍 좀 봐라.”

도서관 밖 단풍나무들이 붉게 물들며 길에도 레드카펫을 깔고 있는 중이었다. 예현은 창밖을 보고 있었고, 은행나무가 있는 동쪽 출입구 앞은 환한 노란색 은행들로 빛이 났고 떨어진 은행들을 줍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나는 심란하던 마음을 달래려 한라산에 가볍게 산행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예현은 연호와 수진에게도 함께 가자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탐방로도 내가 먼저 예약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이국적 산세를 볼 수 있는 관악사 코스로 올라 성판악 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산이 단풍으로 가득 물들어 단풍놀이를 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산을 오르다가 정상에 가서 보자며 수진과 연호 커플이 성큼성큼 오르기 시작했다.

예현은 오히려 좀 느긋하게 가자고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내게도 나눠줬다. 굽은 길을 돌아 모퉁이 너머로 가면 다시 시야가 트이는 지점이라 앞서간 친구들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예현과 나는 처음에 그 둘이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어딘가 풀숲에 숨어있다가 우리를 놀래 키려는 걸 거라고, 마른 계곡 위로 난 다리를 건너고 그들을 찾아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정상까지 갔음에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해발 1700m 인근에서 추락했다는 사실은 그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이어진 구급대의 수색 후 알게 되었다.  

 

연호 커플의 장례식에 온 동아리 선후배들은 말없이 현관으로 나와 담배를 폈다.

“그 아깝게 예쁘던 애들이 둘이나 떠났다.”

누군가 울먹이며 한숨처럼 토해내는 말을 듣고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나는 두 눈이 충혈되도록 삼일 밤낮 영정을 지켰다. 그리고 예현과 나는 마치 남처럼 서먹해졌다.

‘내가 등산을 가자고만 안 했어도.’

죄의식에 시달리며 모두 내 탓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인생에서 이루고 싶던 것들은 물거품처럼 뇌수 안에서 증발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머릿속에 파도처럼 차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거대한 벽을 쳐 막고 있었다. 참고인 조사 때는 경찰이 묻는 것에만 대답하고 나왔다.

항상 든든한 내 편이던 예현도 자책에 시달리고 괴로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찰서를 나와 24시 뼈해장국집에 앉아 우리는 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국물을 퍼먹었다.

학교로 돌아와 서로 캠퍼스 안에서 얼굴을 봐도 둘 중 하나 먼저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그를 보면 떠난 두 사람의 얼굴이 겹쳐 눈물부터 날 것 같았다. 동아리방이 있는 건물도 빙 돌아서 다녔다. 예현은 그해 바로 군대에 들어갔다. 나는 그 소식을 동아리 회장에게 들었다. 한두 통의 편지를 동아리방으로 보내곤 했는데, 내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힘들다는 말 한 번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내게는 다 털어놔도 괜찮은데 오히려 너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고 듣고 싶은데.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꿈이고 뭐고 다 사치였다. 그냥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살고 싶었다. 취업을 위해 토익 공부하고, 스터디를 짜서 언론고시 공부를 하고, 여러 잡지사에 방송사에 지원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7.

취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졸업 후 2년을 준비하던 나는 타개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어학연수도 할 겸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다. 거기서 뭐든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멜버른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서빙과 설거지를 했다. 시드니 인근에서는 와인용 포도 농장에서 포도를 수확하거나 브로콜리를 따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돈이 모이면 여행을 다녔다. 함께 홈 셰어를 하던 다국적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한국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면 눈을 감았다. 그 깜깜하고 아무도 없는 존재의 공간 속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꼈다.

비겁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먼저 떠난 두 친구를 마땅히 애도하고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한순간에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또 자신을 용서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겪은 참혹한 충격의 파도에 오롯이 맞서다가는 마음의 벽이 무너질 것 같았다.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법은 위험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 빅웨이브에 먹혀버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그리고 시간의 더께가 얹어지니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 마냥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머물던 멜버른에 있는 멜버른 비치는 서핑을 하기에는 지구상에서 최적의 장소였을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온 서퍼들로 해변은 늘 활기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한 서핑용품 가게들도 곳곳에 즐비했다. 하지만 나는 마치 멜버른에는 바다가 없다는 듯 그 옆을 지날 때에도 해변 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저길 좀 보라고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본 적이 있냐고 친구들이 말해도 나는 괜히 핸드폰을 하는 척했다. 호주에서 사귄 남자친구 래리는 서핑 마니아였다. 그는 주말마다 나를 계속 바다에 데리고 가려했다.

나는 그때 래리의 서핑보드를 빌려서 바다에 발을 담그던 순간의 저릿함을 잊지 못한다. 먼바다로 패들링 해서 나아갔다. 보드에 얼굴을 묻으니 눈물이 흘렀다. 소리 내며 울었지만 파도 소리에 묻힌 건 다행이었다. 오래전 감각을 되살려서 파도를 탔다. 그 부드러운 바다 위를 꿈결처럼 타고 가던 그때 나는 해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수진과 연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래리에겐 전화로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한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함께 있던 룸메이트들이 돌아가며 내 방문을 노크했고 방문 앞에 내 몫의 파스타를 놓고 가기도 했지만 난 꼬박 일주일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호흡곤란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끝없는 우울과 몽상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양양으로 돌아가 몇 년을 책만 읽었다. 이것이 언제 끝날까?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누군가 이제 모두 끝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예현의 소식을 동기들을 통해 들었다. 예현은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리 선배들은 어떻게 사느냐고 안부를 묻는 전화에 꼭 그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해줬다. 다 같이 한번 함께 만나자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변해버린 나를 보여줄 용기가 없었다.

이제 한국에서 어떻게든 일을 해야 하니 이력서를 내고 있던 중이었다. 노트북 하단 날짜를 보니 연호와 수진의 기일을 앞두고 있었다. 한번 가서 인사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등산화를 꺼내고 등산 스틱을 챙겨서 안개주의보가 내린 제주도로 향했다.

 

8.

예현은 나를 부르고 긴 침묵 속에 다시 잠겼다. 그러나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서 결심한 듯 말했다.

“자기야. 넌… 여기 없어. 7년 전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어. 기억 안 나?”

귀신의 장난질일까? 무슨 말이야. 아니야. 내가 이 세상에 없다니, 난 아침에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과 인사도 했고, 차도 만들어 들고 왔는데. 그 순간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끼쳤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차를 한잔 마시려고 가방을 메고 있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 당황해서 아까 쥐고 있던 등산스틱을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없다. 나는 어렴풋한 실루엣만 일렁이는 내 손바닥을 보았다. 안개는 나를 통과하며 작은 파도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자기야… 아직도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해, 춥잖아. 이제 좋은 곳으로 떠나.”

예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의 눈 없는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예현에게 다가가 얼굴을 포개었다. 그가 갑자기 빙벽에 얼굴을 데었다 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그에게서 공포의 맛이 났다. 서로의 눈물이 고드름 끝에 맺힌 낙수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 때, 예현의 등 뒤로 수진과 연호가 보였다.

“예현아, 수진이와 연호가 왔어. 날 데리러 온 건가 봐.”

“그래 그런가 보다.”

“너는 더 오래 쉬었다 와도 돼.” 내가 그에게 말했다.

아이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우는 예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는  

 

앞선 물결과 뒤따라오는 물결의 겹침 속에 파도의 경계선이 생기듯 안갯속에서 우리는 생의 경계를 뛰어넘어 기어코 만났다.

나는 친구들을 따라 산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꼭 부둥켜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고만 말하면 나에겐 미안하다는 말 밖에 되돌아오지 않는다. ‘고마워, 사랑해.’ 수진과 연호의 말에 나도 똑같이 대답했다. 그 소리가 가슴 어딘가에서 공명했다.

그들은 두 개의 빛의 덩어리가 되어서 나를 감쌌다. 안개가 걷히면서 그 사이로 햇살에 내리쬐었다. 우리는 반짝이는 물방울들로 쪼개어져 사방으로 흩어지며 질주했다. 어느새 우리는 거대한 하나가 되었다. 지구 그 자체였고, 우주와 은하 속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더없이 쪼개어질 수 없는 물질의 경계를 넘어서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그곳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깔들로 가득한 바다였다. 파도가 넘실거릴 때마다 자연이 연주하는 신비로운 음악 같은 파도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면 그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의 소원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파도를 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파도였고 모래알 하나하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우리는 하나였다는 것을, 오랜 소울메이트였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나는 이번 생의 배움을 모두 끝내고 여기 온 것이다. 그리고 예현이 이 바닷가 끝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예현은 안개가 천천히 걷히는 등산로 위에 홀로 서 있었다. 머리 위를 스치는 가을바람의 냄새와 뺨을 간지럽히는 공기의 흐름 속에 숨은 비밀을 알 것도 같았다. 그는 혼자 남았지만 혼자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떠난 이들의 영혼이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온전히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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