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4
집에 놀러 오신 작가님이 귀여운 딸기 컨테이너를
선물해 주셨다.
타조알 보다 크고 공룡알보다 작은 이 적당한 풍채.
품 안에 안고 있으면 알을 품는 새의 마음이 된다.
너는 커서 뭐가 될래?
이 딸기. 볼 수록 매력이 있고 웃음이 난다.
딸기는 사람을 이유 없이 유쾌하게 만드는 요소가
많으니까.
또한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 선물과 닮았다는 점도 새삼 느낀다. 작가님께는 딸기같이 예쁘고 상큼하고 무엇보다 ‘신나는 바이브’가 있다.
이제 우리 집에 조금씩 익숙한 풍경으로 녹아들겠지. 벌써부터 친구 아들딸들이 집에 놀러 와서 딸기 열어보겠다고 서로 아우성일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났다.
딸기를 보면 학창 시절 ‘딸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한 친구도 문득 생각났다. 딸기!라고 부르면 이유 없이 웃음이 나던 친구. 리더십이 있고, 칠판에 글씨를 유려하게 잘 쓰고 춤도 기깔나게 잘 추던. 내 습작노트를 슥 가져가 시를 읽고는 걔속 쓰길 바란다며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던 그 친구.
‘뭘 담을까요?’ 고민하다가
‘진짜 아끼는 색종이를 담을까요?’ 또 고민을 했다.
너무 아끼는 건 덜 아끼는 마음보다 못하다.
아끼다가 못쓰는 물건들, 아끼다 잃는 관계
세상 일은 아낀다고 능사가 아니다.
난 그 이치를 좀 나중에 깨달았다.
삶 속에서 쓸데없는 완벽주의는 버리자는 골자의 이야기를 오늘 나눴다. 그렇게 아끼거나 조심스러워하지 말고 막 저지르듯 해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박지현 작가님께도 자주 들었다.
너무 고민하지 말고 저질러 보자 하는 마음에
내가 큰 마음먹고? ㅋ 오늘 한 일 중 하나.
종이학들, 크고 작은 종이상자, 네잎클로버 등등을
해방시켜 준 것이다.
이 친구들은 그동안 책상 서랍 구석과 유리병 등에 신주단지처럼 모셔두었던 것들이다.
마치 신나는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우르르 딸기 통 속으로 몸을 내던지는 걸 보고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상자 속, 상자 속의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종이별들도
몇 개월 만에 빛을 봤다.
그렇게 숨겨두면 나중에는 있는지 조차 몰라.
큰 마음먹고 한 일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오늘 두 개의 면접 중 하나를 버리고
한 곳을 선택했다.
그 두 번째 면접에서 합격했다.
다음 주부터 강남의 한 헤드헌터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 도어 투 도어 30분이라 위치의 메리트도 있다.
글은 계속 쓰는 중이지만, 생활은 해야 하고…
그래서 기존 PR 커리어를 계속 이어가려 했던 것인데, 뜻 밖에 내가 지원했던 한 공고를 낸 헤드헌터 회사 대표님께 헤드헌터직 제의를 받은 것이다.
일단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어서
글 쓰는 일과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에 이어 오던 커리어를 활용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일, AI시대에 쉽게 대체되지 않고 계속 수요가 발생할 일, 정년 없는 일은 어떤 게 있을까? 싶었는데.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좋고,
호기심이 항상 많으니까 다양한 산업군에 대해 새로 알게 되는 배움이 생겨 좋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 확실한 소명을 느낄 수 있어 이 일이 내게 꽤 잘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커리어 전환을 시도하게 되었다.
일단 내가 가진 가치관과 이론상으로는 괜찮다.
하지만 일부러 끼워 맞춘 건 아닌가 나의 습성상
너무 좋은 쪽만 보려고 하는 건 아닌가 되새겨 보기도 한다. 프리랜서라서 계약별로 페이가 책정되니 수입의 안정성 면에서는 도전이 될 수 있겠다.
용기가 꽤 필요했다. 하지만 해봐야 아는 거니까.
승부사의 기질을 발휘해봐야 할 때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꿈이 있으니
일을 통해 계속 사람 공부를 할 수도 있고.
함께 일하는 곳의 상사도 중요한데 어딘가 배우 문성근의 지적인 이미지를 닮은 대표님과 파이낸셜 계열 임원 출신으로 현재 탑 헤드헌터이신 전무님께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누군가를 돕는 마음’으로 일하려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정성있는 자세 등 오늘 전무님과 꽤 긴 이야기를 나눴는데 약간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글썽거리게 되는 타이밍이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부분에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 진심이 통하면 공명하니까. 그렇게 또 사회에서 새로운 쓰임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참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물론 잘할 수 있지만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럼 또 배워야지. 뭐.
한편으론
종이를 접으면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도 이렇게 하나하나 예쁜 무늬의 종이들이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들이고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후
그 자체로 보기 아름다운데
너무 스스로의 쓰임에만 집중하는 게 아닐까.
적확한 용도로 잘 쓰이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만
쓰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도
기억하고 살면 좋겠다.
저녁에 오리가미를 하다가 자면 재밌는 꿈들을
많이 꾸기도 한다.
꿈 속에서 동물 친구들 많이 만나겠네.
오늘도 몇 개 접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