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앤 Sep 23. 2024

6. (도전) 무릎 관절과 맞바꾼 환상의 가을 하늘

전날 구입한 등산 스틱이 나를 살렸다.

관악산에 올랐다. 2주 전 인왕산 워밍업을 하고, 두 번째 등산이다. 관악산, 인왕산 등 지도에서 자주 보았고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던 유명한 산이지만, 단 한 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 아니 올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관악산 뿐이겠는가, 고향에 있는 명산 한라산이나, 내가 사는 곳과 가까운 청계산이나 광교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올라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경험이라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고, 마음을 먹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평생토록 하지 않을 일들도 정말 많다. 경험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미뤄두고, 시야를 조금만 돌려보면 내가 알지 못한 세계가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른 세계에서 그들만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등산을 위해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조용한 주말 새벽, 탄천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지하철을 타면 등산화를 신고 배낭을 멘 사람들이 2-30%는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등산복이 아닌 평범한 복장으로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단잠을 사는 사이 그들은 그들의 세계를 산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어쩌면 절대 알지 못할 세계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내 가보지 않은 세계가 궁금하다. 등산도 세계 중 하나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나는 서울대에도 처음 가봤다)에 내리면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시작은 평범한 등산로이다. 불과 하루 새 바람이 서늘해졌다. 덥고 묵직했던 공기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전날 내린 비로 등산로 옆 냇물을 꽤나 속도를 내며 흐르고 작은 규모의 폭포를 이루기도 한다. 돌이 많은 등산로다. 발을 헛디디지 않게 조심한다. 계속 오르막, 중간중간 계단도 있다. 나무가 많아 그늘져서 내내 시원하긴 하지만 오르막길을 오르니 꽤나 열이 난다. 중간쯤 도착,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시야가 달라지는 경험은 꽤나 특별하다. 특히 내가 머무는 곳을 내려다보게 되었을 때. 사소한 일들이 정말 사소한 일들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다시 올라간다. 도시가 점점 멀리 내려다보이는 것을 확인하며 내가 서 있는 곳의 높이를 가늠한다. 정상 도착. 연주대. 해발 629m. 정상은 거대한 화강암 고깔을 쓰고 있다. 그 위에 안테나 탑과 천문대가 앉아 있고, 깎은 듯한 절벽 위에 절도 있다.


연주대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선다.  오늘은 날씨가 맑아 멀리 서해 바다까지 보인다.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다들 말하면서 지나간다. 정상석 뒤 쪽 바위로 올라간다. 더 멋진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기어서 내려왔다.


처음 경험은 낯설다. 새로운 세계는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아마도 이 세계에 들어올 사람인지, 맛만 보고 나갈 사람인지, 양다리를 걸칠 사람인지를 가늠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첫 경험으로 "진짜 좋다", "정말 재밌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풍경을 감상하기엔 무릎과 허벅지가 너무 아팠고, 미끄러질까 봐 한 걸음 앞만 내다보면서 걸었다. 등산 전날 저녁 혹시나 하고 급히 준비한 등산 스틱에 의지해서 정말이지 겨우 내려왔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제대로 된 첫 등산 경험이다. 남은 건 걸을 때마다 아픈 무릎, 시리듯 파란 하늘, 그리고 내려다본 도시.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도전한다. 한 번, 두 번 경험이 하나씩 더해지다 보면, 어쩌면 나에게도 또 다른 세계 하나가 열릴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5. (일상) 나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