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을 하고 있는 우리 아이가 앞서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착각
EBS에서 선행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는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고등학교에 가서 성적이 하락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선행에 대한 아이들의 우울감과 부모님들의 착각에 대한 내용이었다.
착시현상...
그런데 학원에서 다음 과정에 대한 회의를 하는데,
아이들을 모집하려면 무리가 되어도 수업과정을 두 가지 이상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어차피 학원은 착시현상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셨다. 우리 학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학원의 경영과 선생님의 사명감이 충돌하는 시점이었다.
학원에서 과정이 결정되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강사의 입장이라지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은 교육기관이기에 앞서 고객의 니즈를 맞출 수밖에 없는 상업기관이다.
책은 엄마들이 생각하는 만큼 어려워야 하고, 과정은 뭐든 높거나 여러 개 배운다는 느낌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쩌면 시작부터 학원수업을 어렵게 만드는 거 아닐까.
기본을 배우는 데 있어서 난이도보다 중요한 것은 확실한 이해다.
이해가 단단하면 난도가 높은 문제를 가져다 놔도 스스로 풀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선행을 하면서도 책의 난이도를 높여서 심화를 꼭 풀게 하고 싶은 것은 어떤 마음인 걸까?
남편은 속도 모르고, 위에서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고 결과가 나쁘면 니가 하라는 데로 해서 그렇게 된 거다라고 하란다.
학원의 이중성처럼 나도 선생님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내적인 갈등이 심하다. 나는 그저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기 이전에 한 명이라도 더 수학을 쉽게 배우고 잘하게 하고 싶은 사명감을 가진 선생님이다. 대충은 못한다. 겨울방학에 시작한 우리 반은 지나친 선행으로 채워줄 것이 많은 반이었다. 그렇기에 이전 선행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는데, 이번 기회에 최대한 잘 채워주고 공부방법을 잡아줘야지 싶어서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런데 새 학기에 애들을 모집하기 위한 니즈에서 우리도 선행을 조금 얕게 가자는 말씀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다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은 내 욕심이라나.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 더 많이 도와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형학원에 근무하긴 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경영의 문제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한 마음이 든다.
착시현상..
부모님들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려운 문제집을 공부하고 있다고 해서 잘하는 학생은 아니다.
그 과정을 듣고 있을 뿐이다. 자꾸 책의 난이도와 내 아이의 실력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상담을 하면서 성적이 잘 안 나오니 우리 아이가 도형을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기초가 아직 자리잡지 않은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거다. 기본기를 채우고, 중간난이도의 문제집들로 연습을 채워야 그다음이 심화가 가능해지는 건데..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음 분기에는 새로운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
어제 처음으로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학원에 보내지 말까. ㅜ.ㅜ
마지막 희망은 학원에서 정해주는 과정과 상관없이 아이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거다. 그리고 정직하게 지금 과정이 맞지 않다 상담해 주는 것.
최소한 학원을 보내고 상담을 진행할 때, 담당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다행히도 우리 학원은 지금 과정을 잘 못하는데 다음 과정으로 진행시켜주지는 않는다. 진짜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재수강이나 아랫반으로 권하기도 한다. 일단 들어오면 현실은 제대로 알려주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상담할 때 이전 공부방법의 문제나 현재 비어있는 부분,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부분에 대해 상담한다.
" 아니 학원에 보냈으면 아이를 메이킹해서 약속한 대로 진행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이가 공부가 쌓여있지 않다니 당황스럽네요. "
학원에서 아이를 메이킹해 준다니 공부는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부분이 크다. 복습도 해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수업도 꼼꼼히 듣고 모르면 질문도 해야 한다. 아이를 원하는 대로 만들어드릴 수는 없다. 학원에 맡기면 그 커리큘럼대로 다 넣어줄 거라는 기대는 과욕이다. 영화처럼 머리에 직접 프로그래밍하지 않는 이상.
학원환경이 개선되려면 일부 부모님들이 집착하는 착시현상 먼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한숨 나오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