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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Jul 08. 2020

스물일곱 취준생은 신입사원이 되었다.

(1)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3년 전 한여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강원도 양구에서의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제출했던 휴대전화를 다시 받아 들자마자 전원을 켰다. 휴대전화 인생 십 수 년동안 그렇게 많은 부재중 전화 알림과 문자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발신자는 단 한 사람, O선배. 그때 그 부재중 전화를 무시했다면, 내 인생은 달라져 있었을까. 아니, 아직도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예, 행님. 어쩐 일로?"

"아니, 와 이래 전화를 안 받노. 뭔 일 있었나?"

"아, 예비군 훈련 갔다 왔는데요. 왜요?"

"딴 게 아이고, 니 지금 취준하고 있다이가. 괜찮은 회사가 있어가 추천 좀 할라고."


 당시 나는 취업준비생 생활을 약 5개월 정도 하고 있었다. 전공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회사며 직무며 가리지 않고 서류를 제출했다. 대기업 영업관리직부터 문구 관련 중견기업 해외영업직, 메이저 여행사 오퍼레이터, 전자제품 중견기업 영업관리직, 항공사 내근직 등등. 서류전형에서는 나름 승률이 괜찮았지만, 면접전형에서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가장 고대했던 모 대기업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이후 휴식기에 돌입했던 그때, 마침 O선배로부터 연락이 와서 괜찮은 회사를 추천받은 것이었다. O선배는 그 괜찮은 회사에 이미 몸을 담고 있었고.


"아, 갑자기? 뭐하는 회산 데요?"

"그... 반도체 회사고, 일단 서류 좀 써봐라."

"엥, 갑자기? 뭐하는 회산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써요."

"거 홈페이지 드가면 다 있다이가. 거 보고 어떤 회산지 파악하고 잘 써봐라."


 그 당시 우리 회사, 물론 지금은 전 직장이 되어버린 그 회사에서는 해외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중이었고, '중국어 필수' 채용공고를 띄운 지 3달이 넘어가던 때였다. 역설적이게도 구인난에 허덕이다가 결국 나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 짧은 전화 말미에 나온 O선배의 마지막 한 마디.


"내가 일단 회사 추천은 해줬다만, 올지 안 올지는 전적으로 니 결정이다이. 잘 고민해보고 연락줘리."


어떤 의미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조언을 얻고자 종종 O선배를 만났었고, 그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술 한 잔 기울이며 들은 O선배의 푸념과 하소연에 '그 회사 힘들겠네요. 저였으면 못할 것 같은데...'라고 답했던 나였다. 그럼에도 나는 통화를 마치기도 전에 그 회사에 지원하기로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왜냐?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의 취준생이 아니었다. 배고팠고, 조급했고, 절박했다.




 주전공 역사학, 부전공 정치외교학. 뼛속 깊이 인문사회과학 전공자였던 나는, 반도체의 '반'자도 알지 못했지만 직무 지원에 필수였던 중국어 역량 하나만으로 호기롭게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갔다. 자기소개서는 다른 기업들에 제출했던 키워드를 뽑아서 질문에 맞게 경험이며 내용을 조금씩 바꿔 써내려 갔다. 심혈을 기울여 쓴 자기소개서는 아주 운이 좋게도 나를 면접전형까지 이끌었다. 그러나 엄청난 기쁨으로까진 와닿지 않았다. 이 회사를 제외하고도 비교적 많은 회사에서 서류는 승리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서류 합격에 기뻐하기엔 일렀다. 그 중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중견기업도 있었고.


 면접전형 이전에 인적성 전형이 있기는 했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인적성 전형이었다. 진정한 인성과 적성을 묻는 듯한 질문들, 그리고 답변들. 게다가 집에서 혼자 응시했으니, 그리 큰 긴장감은 없었다. 인적성도 무사히 통과한 나는, 2주 뒤 면접전형에 응시하러 구미로 향했다. 내 직장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곳. 면접전형 응시자는 총 3명. 그나마도 그 중 한 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고 채용담당자가 말해주었다. 그렇게 진행된 면접전형. 채용 면접 역시, 몇 차례 경험이 있던 나였지만, 유독 자신이 없었다. 새가슴이기도 했고, 어떤 질문이 어떻게 훅 들어올지 몰랐으니 말이다.


"H씨는 본가가 원주예요?"

"네, 고향은 원주이고 지금 사는 곳은 부산입니다."

"구미에서 일하게 되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할 텐데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줄곧 타지 생활해서 괜찮습니다."


 뒤이은 중국어 면접에도 나름 괜찮게 답변했다. 면접장에 함께 입실한 다른 응시생보다는 훨씬 나은 실력이었다. 그는 수도권에 소재한 대학의 산업공학과 출신에 각종 기사 자격증도 줄줄이 읊어댔지만, 중국어 실력만 놓고 보면 나보다 한참 떨어지는 그런 아쉬운 실력이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고. 그 어느 때보다 무난한 면접이 이어지나 싶었는데, 뒤이은 영어 면접에서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지금도 낯 부끄러워지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토익 점수가 꽤 높네요? 영어 잘해요?"

"준비는 해왔습니다."

"음, 그러면 구미에 대한 첫인상 한번 영어로 얘기해보세요."


 구미에 대한 첫인상을 영어로 말하라고…? 어떻게 유창하게 얘기할 지를 떠나서, 첫인상이 어땠는지부터 떠올려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구미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면접장소인 회사까지 오는 길에 봤던 표지판 하나. '박정희전대통령 생가'. 그것말고는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고, 대답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아주 서툰 영어로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했다.


"구미 이즈 박정희 시티, 시티 오브 박정희."


 아주 엄-청난 영어 면접이었다. 유창하게는 커녕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질렀으니, 결과는 참혹할 수 밖에. 게다가 구미의 첫 인상이 박정희 대통령이라니. 면접관들은 작은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정말이지 쥐 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영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정도 답변 밖에 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기 때문. 그 뒤로 몇 가지 영어 질문에 답한 뒤, 그렇게 면접전형도 끝이 났다. 마지막에는 절박함으로 면접관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를 하고 면접장을 빠져 나왔다.


"문과 출신으로 반도체 이론과 공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제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재가 되겠습니다!"


 어느 채용 지원이나 마찬가지이듯, 최종 결과 발표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며칠 뒤 면접전형 결과 발표 메일을 받아볼 수 있었다. 메일 내용은...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우리 회사 가족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종 합격 소식은 처음이었던 지라, 메일을 열어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너무 기뻐서 방방 뛰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고생 심했던 5개월 간의 취준 생활이 끝나게 되어 너무 후련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앞으로 무얼 준비해야 하고, 어떤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지 걱정하고 있었다. 마치 전입을 앞둔 이등병처럼 말이다. 앞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리고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면접관에게 뱉었던 마지막 한 마디를 지키지 못할 줄, 앞으로 펼쳐질 고난과 역경의 내 직장생활을.



이전 01화 22개월의 직장생활, 그리고 퇴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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