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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Jul 05. 2020

22개월의 직장생활, 그리고 퇴사 이야기.

여는 글.

 "H씨, 갈 곳은 정했어요?"


 퇴사를 앞두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 받았던 질문이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아니요, 너무 지쳤어요. 조금 쉬려고요." 


 그랬다. 나는 너무 지쳤었다. 22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서였을까. 퇴사를 결심하기 직전에는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정도였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어서야 마음의 병이 심각한 수준까지 악화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퇴사를 진지하게 결심했고 실천으로 옮겼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것을 추구하고,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하는 내게 퇴사는 그 어떤 일보다도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기업, 인문과학 전공자 치고는 많았던 연봉, 사업 전망성과 이직 가능성 등, 그 모든 것을 놓고 보더라도 이 회사를 나갈 이유는 없었다. 그랬기에 나 또한 회사를 떠나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지로 생각했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지금 자유의 몸이다.



 22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나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언어적인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언어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결되어 갔다. 어느 회사나 어느 직무든 업무는 하다 보면 적응되고 용어도 쓰는 용어만 쓰기에,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언어적인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적성의 문제였다. 일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 입사 3개월 차부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같다.' 아무리 비싼 옷을 입더라도 자기 몸에 맞지 않거나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으면 입지 않는 것처럼. 상당히 좋은 조건의 직장이었음에도, 업무 자체가 내 성격과 성향에 너무 맞지 않으니 그 조건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게 보였다.


 내가 몸 담았던 품질 CS(Customer Satisfaction) 직무는 고객만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늘 고객사를 상대로 품질 이슈나 각종 요청에 대응하고 고객사의 편의를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케어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성격 자체가 극도로 내향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내게 지극히 루틴 하고 사소한 품질 이슈조차 엄청난 걱정이자 스트레스로 느껴졌다. 회사 내부 담당자에게 관련 정보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민폐라고 느껴졌고, 고객사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울리면 받기도 전부터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이런 성격과 업무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 갖은 노력을 해보았지만, 29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은 새 인생을 사는 것만큼이나 버거웠다. 결국 고객만족에는 점점 멀어져 갔고, 나 또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이면서 버티지 못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럴 때가 있다. 스스로가 감당해내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는 순간. 나는 그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그 뒤 퇴사를 준비했고 앞으로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인생의 밑그림을 처음부터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이유들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청년들이 많을 것이다. 직무가 맞지 않는 문제 외에도, 직장상사의 괴롭힘, 과도한 업무량, 보이지 않는 비전 등의 문제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을 청춘들.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 건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짧지만 진심이 담긴 위로와 격려로 큰 힘을 얻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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