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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Jul 21. 2020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H입니다.

(2) 첫 출근의 기억과 최악의 출발. 

- 첫 출근의 기억.

 정식 입사 전날, 부산발 구미행 버스에 몸을 실었고 구미에 도착해서는 회사 인근에 위치한 기숙사로 향했다. 한여름이라 땀에 절어있는 채로 캐리어를 덜덜덜 끌고 올라갔던 기숙사. 말이 기숙사지, 그냥 일반 아파트였다. 조금은 오래되어 보이는 방을 보고는 실망했지만, 이곳에 머물며 아낄 돈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412호. 22개월 동안 머물렀던 이곳에는 앞서 생활하고 있던 2명의 룸메이트가 있었다. 한 명은 같은 팀 동기 P였고, 또다른 한 명은 사업부가 아예 달라 마주칠 일이 없었던 K책임님이었다. 방을 정리하다 보니 옆방에 인기척이 느껴졌고 뭔가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 번 똑똑 하고 두드리자, 내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도 들어온 지 1주일밖에 안됐어요. 혹시 부서가 어디세요?"

"품질팀으로 들었습니다."

"오 그래요? 저도 품질팀인데. 또래이신 것 같은데, 몇 년생이세요?"

"저는 92년생입니다."

"아, 동갑이네. 말 편하게 하세요."


 알고 보니 옆방 룸메이트는 같은 팀 동기였던 P였다. P 역시도 불과 2주 전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는데, 고작 2주 먼저 입사했음에도 내게는 굉장히 대단한 선배처럼 보였다. 사실 입사 2주 차이는 오십보 백보 수준이지만, 그땐 그저 선배 같았다. 간단한 인사와 대화를 나눈 뒤, 방으로 돌아가 다음 날 맞이할 첫 출근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첫 출근이 어찌나 긴장되었었는지, 떨리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음날. 면접 당시 입었던 정장을 그대로 입고 회사로 출근했다. 인생 첫 출근. 2018년 8월 13일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지옥의 서막이었으니까. 오전에는 인사팀 담당자로부터 신입사원 교육을 받았다. 나를 포함해서 내 또래로 보이는 신입사원 한 명, 그리고 재입사로 보이는 다른 한 명, 총 3명이 같이 교육을 받았었다. 교육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시콜콜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 연혁, 근무시간과 연차 부여 기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내 기밀 유지, 복리후생 등등 귀에도 안 들어올 내용을 그때는 왜 그토록 열심히 들었는지. 오전 11시께, 같이 교육을 받았던 두 사람은 모두 다른 팀이었기에 이내 같은 부서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데려갔고, 나 혼자 남아 호출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야 신입사원 인사 차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로 올라가는 내내 깊은 심호흡을 수 차례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처음은 늘 긴장되면서 설레는 일이니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첫인상은 상당히... 딱딱한 분위기였다. 아니, 내가 경직되어있어서 그렇게 보였나. TV에서 본 것처럼 각 자리마다 파티션이 쳐져있고, 다들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업무를 하고 있었으며, 전화를 얼마나 받았는지 각 자리마다 전화선은 푸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날 만큼 꼬여있었다. 내가 곧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품질팀 사무실에는 내가 아는 얼굴이 넷이나 있었다. 먼저, 내게 입사 제안을 했었던 O선배, 실장님과 팀장님, 그리고 룸메이트 동기 P. 동기 P는 입사 전날 방에서 만났고, 나머지 셋은 모두 입사 전 최종면접에서 마주했던 얼굴이었다. 면접관들이 내 직속상관들이 될 줄이야. 완전 남초 집단이었기에 여직원은 그 큰 사무실에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딱딱해 보였을 수도. 그렇게 사무실 전경을 매의 눈으로 한번 훑고 나서는 바로 자리마다 찾아가서 인사와 짧은 소개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품질팀 일원이 된 신입사원 H입니다. 긴장도 많이 되고 업무도 서툴겠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자리를 배정받고는 그냥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모두들 업무로 정신없이 바빴고, 게다가 업무용 PC며 교육자료며 받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앉아있던 중에, L팀장님과 J책임님이 나를 불렀다. 앞으로 이 이야기에 수없이 등장할 주요 인물들.


"담배 피나?"

"아뇨. 담배 안 핍니다."

"커피 하나 들고 따라와."

"네! 알겠습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행동으로, 종이컵에 맥심 커피믹스 한 스틱을 불어넣고 뜨거운 물을 넣고서는 부리나케 두 분을 따라서 흡연장으로 향했다.


"내가 누군지 알지?"

"팀장님으로 들었습니다."

"음, 그래. 우리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는 아나?"

"입사 전에 조금 찾아보고, 오늘 오전에도 교육하면서 들었습니다."

"우리 팀은?" 

"품질보증팀으로 들었는데, 아직 어떤 업무를 하고 어떤 곳인지는 감이 잘 안 옵니다."


 오늘 입사한 생초짜 신입사원한테 뭐하는 팀이냐는 질문은 너무 어려웠다. 어버버하고 있으니 팀장님이 간단히 설명해주셨다.


"일단 우리는 보증 서는 사람들이야. 아부지나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 보증 서주지 말라 한다이가? 그 일을 우리가 하는 거라고. 아주 그지 같은 일이지. 우리가 만든 제품의 품질을 보증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우리 제품, 우리 공정을 잘 알고 있어야 돼."

"네네."

"신입사원들한테 항상 하는 얘기지만, 이 일이 쉽지는 않을 게야. 그래도 먼저 일주일 동안 사무실 분위기도 보고, 선배들 일하는 거 보면서 니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캐치업해봐."

"네, 알겠습니다!"


 옆에 서서 같이 이야기를 들어주던 J책임님이 한 말씀 거들어주셨다.


"나는 J책임이고, 해외파트 파트리더니까 앞으로 모든 일을 같이 하게 될 거야. 신입사원이고 첫 출근이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제. 분위기나 뭐나."

"네네, 아직은."

"크게 바라는 건 없고, 그냥 일 잘하기보다는 우선 팀에 녹아들 수 있도록 그렇게 한번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이 짧은 대화를 냉큼 옮겨 적었다. 신입사원들이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말들이라고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사무실에서 함께 일할 동료들은 너무 좋아 보였다. 긴장의 끈은 놓지 않았지만 뭔가 믿고 의지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들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딱 왔다. 첫 출근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은? 당연히 안 했다. 아니 못 했다. 막 입사한 신병한테 총자루를 바로 쥐여주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입사 후 일주일은 그저 업무 분위기 파악하고, 선배들 담배 피울 때 같이 이야기하러 나가거나 회사를 돌아다니며 빠르게 적응하려고 애썼다. 첫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그날 전까지는.




- 입사 일주일 만에 제대로 찍히다.

 첫 출근 이후 며칠간은 큰 탈 없이 무난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갓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크게 바라는 것도 없거니와, 아는 게 있어야 일을 시키지. 사무실에서 신입사원 교육과 눈치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던 중, 하루는 파트리더인 J책임님의 호출을 받았다.      


"H, 커피 들고 따라와."      


 우리 팀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호출은 늘 커피와 담배가 따라다녔다. 나는 비흡연자였기에 사무실 책상 위엔 담배 대신 맥심 커피믹스와 종이컵이 준비되어 있었고, 이때도 역시 부리나케 들고는 J책임님의 뒤를 따랐다.      


"H, 니 블로그 하나?"

"어? 어떻게 아셨어요?"      


 책임님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해맑게 대답했다. 블로그 하니까 한다고 얘기했지,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블로그를 한다는 걸 아신 게 더 반가웠을 정도. 허나, 그것은 아주 큰 잘못이었다.      


"야, 너 말이야. 그런 거 막 올리면 안 돼."

"어... 어떤 말씀이신지?"      


 분위기는 순간 냉랭해졌고, 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난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하지 못했었다. 눈치 없기는.      


"입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니 블로그에 뭐 우리 회사가 어쩌니 저쩌니 이런 거 써놨대?"      


 몽둥이로 머리통을 한 대 맞은 것 마냥,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아차 싶었다. 그간 취업을 준비하면서 취준일기와 기업정보 등을 블로그에 간단히 써놨었고, 취업에 성공한 이후의 일도 당연히 블로그에 일기 형식으로 편하게 써놨었다. 당시엔 블로그 이웃도, 방문자수도 그리 많지 않았기에 공개범위는 '전체 공개'로 설정해놨었고, 심지어는 검색허용/비허용 설정이 있는 줄도 몰랐다. 뭐 배경이야 어찌 되었건, 입사 직후 너무 기쁜 마음에 내가 어떤 회사에 입사했고,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 있는 고객사 정보도 일부 포함된 내용을 썼었다. 며칠 뒤 그러니까 이날 오전, 팀장님이 우연히 회사 이름을 네이버에 검색해보았고, 공개범위 '전체 공개'와 '검색 허용'으로 설정되어 있던 내 블로그를 발견하신 것. 당연히 내가 쓴 포스트도 읽어보셨고.     

"그거 빨리 지워리. 아까 팀장님이 그거 보고 식겁해서 바로 내 불러서 얘기했다. 뭐 니가 개인적으로 쓰는 거야 간섭하진 않겠는데, 회사 관련된 내용은 진짜 나중에 큰일 난다이."

"아, 네네. 죄송합니다. 문제 될 줄 전혀 몰랐습니다."      


 얼굴이 벌게지면서 '와, 이거 찍혔다'라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뭘 안다고. 회사가 어떻고 어떤 제품을 만들고 연봉은 얼마고 복리후생은 어떻고, 이런 얘기를 버젓이 블로그에 올린다면 결코 곱게 볼 수 없다. 나 같아도 그렇겠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글 내리겠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블로그에 접속해서는 문제의 그 글을 내렸다. 그때까지 블로그에 쓰는 포스트의 공개범위 설정이 가능하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처음 알게 된 나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해당 글을 '비공개'에 '검색 비허용'으로 바꾸어놓았다. 돌아온 사무실에서는 대역죄인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찍혔다'는 생각뿐.      


"니 뭔 일 있나?"

"아, 아뇨. 괜찮아요..."     


 옆자리에 앉은 사수 선배의 질문에도 그저 괜찮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한동안 팀장님과 책임님은 그 일을 모른 체 해주셨고, 내 머릿속에서도 점점 잊혀갔다. 물론 그것도 잠시였지만 말이다. 한두 달 뒤, 책임님은 그때의 일을 팀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재밌는 이야기인 것 마냥 얘기했다.


"H 블로그 한데이."

"오올, 니 블로그 하나?"

"그 블로그에 막 회사 얘기 써가꼬. 크크크"

"아, 아니예요..."

"팀장님 그거 보고 완전 눈까리 뒤집히가. 크크크. 파워블로거다, 파워블로거."


 그때부터 팀원들은 나를 ‘파워블로거’라 부르곤 했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래도 그 일로 교훈 하나를 얻게 되었다. SNS 계정은 절대 오픈하지 않아하 하고, 회사 얘기는 절대 ‘비공개’로 써야 한다는 것. 그 뒤로는 블로그에 회사와 관련한 어떤 내용도 쓰지 않았고, 부득이하게 써야 할 때에는 (예를 들면, 너무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의 하소연이나 뒷담화 같은 것들) 모두 가칭 또는 가명을 썼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게끔.

 실수든 뭐든, 그렇게 나는 입사 일주일 만에 찍힌 신입사원이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니는 주홍글씨가 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직장생활에서 SNS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구태여 스스로 직장생활에서 발목 잡힐 만한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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