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의 INNOSPARK, 2011년 7월호
2011년 상반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한다. [1] 필자도 올해 초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이가 꼭 ‘청춘’이 아니더라도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 읽으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왜 꼭 '청춘'만 아파야만 하나 싶어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지만 정작 저자인 김난도 교수는 책의 인기가 높은 만큼 요즘 젊은이들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힘든 것 같아 심경이 복잡하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
약간의 창의력을 발휘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목을 살짝 비틀어 ‘늙으니까 아픈거다’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아파하는 청춘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말이다. 하지만 ‘늙으니까 아픈거다’는 세월이 흐를수록 몸에 병이 깃드는 어르신들을 비하하는 듯한 차가운 말이다. ‘늙으니까 아픈거다’라는 말에서 차가운 느낌이 드는 까닭은 우리 머리 속에서 자동으로 ‘몸이’라는 주어를 붙였기 때문이다. 이 주어를 의도적으로 ‘생각이’라는 주어로 바꾸어보자.
‘몸이 늙으니까 아픈거다’는 인간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올바른 생활 습관과 꾸준한 운동으로 자기 몸을 잘 관리하는 사람들은 평생 건강한 삶을 살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늙으니까 아픈거다’는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과거의 성공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에 틀에 박힌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대가(大家)들은 보통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젊은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어에서 ‘Old Gold’는 위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광택이 나지 않는 ‘낡은 금빛’을 뜻한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며 물려주신 귀한 금가락지처럼, 1,500년 전에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운 신라 금관처럼 금 자체의 가치에 시간의 가치를 더한 소중한 유물 遺物에서 나타나는 빛깔이 바로 ‘낡은 금빛’이다.
우리의 ‘생각’은 시간이 흐를수록 낡아지고, 잠깐 찬란함을 뽐내다 그 빛을 잃으면 녹여지기 십상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낡은 금빛 생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한 청년이 허름한 차고의 한 모퉁이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앉아있는 값싼 접이식 의자 뒤편으로 피자 박스가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피자로 대충 끼니를 때우면서 일에 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1972년의 스티브 잡스이다.
간혹 하찮은 일은 배울 만큼 배운 자신과는 관계없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위대한 스티브 잡스도 허름한 곳에서 하찮은 일부터 시작해 지금의 애플을 창조했다.
“하찮은 일을 귀찮아하면,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없다.”
위 광고는 나무를 자꾸 베다 보면 남아있는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 무덤에 남길 십자가밖에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 한 장 없이 글자 4개로 이렇게 강한 경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생각이 늙지 않으려면 이처럼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 회사에서 이미 검증된 방식으로 일하지 않고 다른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상사에게 질책을 받기 쉽다. 물론 일이 잘못될 위험을 줄이고, 보다 효율적으로 일하라는 뜻이기는 하지만 이런 질책이 모든 일에 적용되는 조직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예컨대 주판 세대인 부장님이 계산기를 쓰는 신입사원을 혼내고, 계산기 세대인 부장님이 엑셀 프로그램을 쓰는 신입사원을 혼낸다면 그 조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면,
과거의 성공에 머물게 된다.”
레고는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다. 다 큰 어른이 레고를 한다면 주위의 비웃음을 사기 쉽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릴 때 레고 블록을 보며 배, 탱크, 비행기 등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저 무의미한 플라스틱 조각으로만 보일 뿐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레고 블록에서만 배, 탱크, 비행기를 떠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고래, 거북이, 독수리와 같은 동물을 보고도 잠수함, 탱크, 전투기를 상상해 낼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피카소(Pablo Ruiz Picasso)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에는 4년이 걸렸지만, 아이처럼 그리는 데에는 평생이 걸렸다.
(It took me four years to paint like Raphael, but a lifetime to paint like a child)”
아이디어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피카소가 그랬듯이 아이들의 창의력에서 한 수 배우시기를 권한다.
최근 LG전자에서 실제 공장을 건설하기에 앞서 입지조건, 물류흐름, 레이아웃 설계 등 공장 표준화 작업을 하기 위해 레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 그림처럼 7만 분의 1 크기로 축소한 공장 모형을 활용함으로써 연구원, 의사결정자, 실무자가 서로 의견을 나누고 결정하는 속도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고 한다.
기업에서는 난해한 용어들과 복잡한 그래프가 가득 차 있는 문서를 잘 만들면 일을 잘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기업 내 의사소통이 주로 문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획서나 보고서를 깔끔하게 만들 수 있는 실무자는 어느 부서에서나 높게 평가된다.
물론 문서를 명확하게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문서 작업 자체에 지나치게 공들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사결정권이 있는 CEO나 임원에게 보고할 경우에는 폰트 크기, 줄 간격, 문구 교정, 오타 확인, 선의 굵기, 그래프 변경, 색상 조정 등의 디테일에 신경 쓰느라 밤샘 작업을 하기도 한다.
레고처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모형을 활용하면 문서 작업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즉 모형을 움직여가며 현장에서 즉시 의사결정을 하거나, 개선 전과 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예상되는 효과 정도만 간략히 기술하는 정도로 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많은 노력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로 유명한 IDEO의 CEO, 팀 브라운 Tim Brown은 모형이 가진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기업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동심은 접어둔 채 상사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쓰고 각종 서류를 작성하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디자인적 사고를 추구하는 조직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전혀 다른 광경을 보게 된다. 어린아이의 방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각종 프로토타입들이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중략)
예산 규모가 어떻든, 시설이 어떻든 프로토타입 제작이야말로 창의성의 핵심인 것이다. (중략)
도전적인 실험에 대한 마음가짐은 모든 창조적인 조직의 생명수와도 같다. 그러므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주저하지 않고 직접 뭔가를 만들어보는 모형 제작은 이러한 실험정신을 뒷받침하는 최고의 증거이다. (중략)
데이비드 켈리 David Kelley는 모형 제작을 가리켜 ‘손으로 하는 사고’라고 이름 붙였다. 나아가 구체적인 항목들을 명시할 뿐만 아니라 치밀한 계획에 의해 틀을 잡아나가는 추상적인 사고와 비교했다. 디자인적 사고와 추상적 사고, 이 둘은 양쪽 다 가치를 지니고 있고 각자 맡은 몫이 있지만 전자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 훨씬 더 효과적이다.
기획 단계부터 완벽하게 구성된 문서로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초기에 거칠고 투박하게 구성한 모형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아이디어의 구체화, 의사결정의 스피드, 수정의 용이함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완벽히 하다 보면,
완벽하게 늦을 수 있다.”
지금까지 ‘생각’이 늙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어 보았다.
1. 하찮은 일을 귀찮아하면, 괜찮은 삶을 누릴 수 없다.
2. 과거의 방식만 고집하면, 과거의 성공에 머물게 된다.
3. 모든 일을 완벽히 하다 보면, 완벽하게 늦을 수 있다.
필자도 ‘생각’이 늙지 않기 위해 다음과 같이 위의 세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1. 하찮은 일 즐기기: 후배 컨설턴트들이 업무에 몰입하고 있으면, 제본과 같이 번거로운 일도 직접 한다.
2. 과거 방식 버리기: 새로운 방식으로 하자는 의견이 제시되면, 다소 비효율적이더라도 함께 시도해 본다.
3. 문서 작업 줄이기: 프로젝트 초기에는 문서보다 간단한 마인드맵이나 메모로 내부 논의를 진행한다.
물론 여건상 어려움이 있어 제대로 실천을 못 하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하찮을 일도 마다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고, 간단한 모형으로 일을 진척시켜 나가려 애쓰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낡은 금빛’을 내며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기 위해 하찮은 일 즐기기, 과거 방식 버리기, 문서 작업 줄이기만 잘 지키면 될까? 분명 이것 말고도 다른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생각’이 영원히 늙지 않도록 해주는 ‘생각의 불로초’를 찾고 싶다면 무엇보다 끊임없는 자기성찰 自己省察이 중요하다. 남보다 조금 더 배웠다고 해서, 남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생각’의 노화가 급속히 진행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MC이면서도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출연자들을 배려하는 유재석이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가수 이적과 함께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를 불렀다.
내일 무슨 일을 할지 걱정하고, 나는 왜 안 되는지 답답해하던 스무 살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부른 노래로 담담히 불렀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흔드는 나지막한 울림이 있었다.
유재석이 랩을 하는 부분에 이런 가사가 있다.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속 작은 이야기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내 마음속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며 이 노래를 보내 드린다.
[1] 상반기 최고 베스트셀러,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경향신문, 2011. 6. 19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6192103195&code=960205
[2]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돌풍에 당혹", CBS 김현정의 뉴스쇼, 2011. 6. 22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837911
[3] http://omega-constellation-collectors.blogspot.com/2009/03/rare-14311-globemaster-surfaces.html
[4] http://villageofjoy.com/33-cool-and-creative-ads-part-i/
[5] http://www.ads-ngo.com/2010/07/13/deforestation/
[6] http://www.mymodernmet.com/profiles/blogs/creative-ads-lego-the-shadow
[7] http://www.creativeadawards.com/whale-fighting/
[8] http://www.creativeadawards.com/turtle-fighting/
[9] http://www.creativeadawards.com/eagle-fighting/
[10] LG전자, '레고'로 공장 표준화 작업한다, NEWSIS, 2011. 7. 8
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110707_0008625540
[11] 디자인에 집중하라, 팀 브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