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테라노바 Aug 24. 2016

영국에서 부르짖은 한국쌀

사상 최대의 영어 '참사'

북부 잉글랜드의 어린이 홀리데이 센터에 새 프로젝트를 맡아 온 지 2주쯤 된 어느 점심 시간. 아줌마 스태프 중 한 명인 마가렛이 밥이 실린 카트를 끌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얘들아, 오늘 점심은 ‘코리안 라이스’다~” 


한국쌀이라고? 영국에 온 지 몇 개월이 지나도록 찰지고 맛있는 한국쌀이 요리에 사용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평소 무뚝뚝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아줌마가, 그것도 특별히 사이가 좋을 것도 없는 나를 생각해서 농담을 할 리는 없을테고... 


뭣이, 한국쌀이라고?  (C) Illustration by Terranova


흘깃 쳐다보니 불면 날아간다는 길쭉한 안남미는 아닌 듯했으나 동남아 어딘가에서 생산된 쌀일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한국쌀과 비슷한 캘리포니아산일지도 모르겠다만. 한국에 대한 것은 바로 알려야 한다는 내재된 사명감(?)이 내게도 있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한마디 던졌다. 


“이건 한국쌀 아니거든요(This is not Korean rice)! 한국쌀은 좀 더 찰기가 있다고요." 


'뭘 알고나 말하든가.' 뭐 대충 이런 뉘앙스로 말이다. 그랬더니, 이 아줌마 밥을 푸다 말고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자다 말고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하는 표정과 함께. 그리곤 다시 밥만 계속 푸기 시작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한국쌀 아니라니깐...


그런데 잠시 후, 또 다른 카트에 뭔가가 실려 들어왔다. 그것은… 카레 소스였다. 아, 오늘의 점심 메뉴는 카레밥이었던 것이다.


영어로는 ‘커뤼 앤 롸이스(curry and rice)’. 






언어는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던 값비싼 교훈이었다. 말은 상황을 파악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이해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말도 그렇지 않던가.


또한, 어디서든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만큼만 보이고 들리는 법. 언제나 그 '그릇'을 넓히도록 노력해야겠다. 훨씬 많은 것이 보이게 될 것이다. 




* 여행 에피소드 시리즈는 여행매거진 '트래비'와 일본 소학관의 웹진 '@DIME'에서 연재 중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구리알 흡입 사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