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 배려, 야생성
이전 글에서 '여우 같은 여자'의 조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으니 '진짜 여우'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소설, 영화의 가상인물들과 현실 속의 인물들을 종합해 볼 때 언행이 세련되고 남자를 잘 아는 야생성이 살아있는 여자를 '여우 같은 여자'라 칭한다면 그녀의 특성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Sophisticated & Insightful
여우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전략적으로 외모를 가꾼다. 따라서 옷과 액세서리를 선택할 때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장점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골라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또한 대화 상대의 나이와 장소의 성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화법을 구사할 줄 아는 분위기 메이커이다. 여우는 예쁜 얼굴을 가진 여자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자신을 돋보이게 할 줄도 알고, 배경과 하나가 된 금빛 여우처럼 자신을 숨길 줄도 아는 여자이다.
여우는 남자 앞에서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반면에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준 다음 남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리거나 의견을 물어오면 제갈공명처럼 명쾌한 답을 넌지시 흘리기만 한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여우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녔기 때문에 남자들이 장시간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진짜 여우의 주변엔 자신의 비밀을 알아서 털어놓는 남자들이 줄을 선다. 고로 여우는 다양한 유형의 남자들의 속내를 훤히 꿰뚫게 된다.
여자와 다른 남자를 배려한다
여자의 성염새체는 xx로 동일하지만 남자의 성염색체는 x옆에 y가 붙어 있다. 이 조그만 생물학적인 차이가 외모뿐만 아니라 생리적, 감정적, 인지적인 면에서 남자와 여자를 우주만큼 멀리 갈라놓았다. 일단 스킨십에 있어서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더 자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반해 남자는 감정을 말로 자세히 표현하는 걸 힘들어하고, 멀티 태스킹에 능한 여자와 달리 남자는 한 가지를 깊게 파고드는 성향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자신의 약한 모습을 직장동료나 동성 친구에게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힘들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 장시간 대화하는 여자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외로움도 더 깊이 느낀다. 과도한 경쟁의 틀속에서 도태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자존심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연인이나 아내가 무심결에 한 말을 두고두고 서운해한다.
따라서 이러한 남자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여우들은 남자를 세심히 관찰한 후 그가 가진 독특한 장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상대를 감동시킨다.
예를 들면,
"목소리 톤이 좋으신데요. 성우 하셔도 되겠어요."
"당신 글씨가 또렷하고 예쁘니 이 서류작성은 당신이 하는게 어때요?"
그리고 여우들은 남자의 말투나 표정의 변화를 통해 안 좋은 일이 있음을 감지하더라도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따져 묻지 않는다. 뭔가 평소 같지 않음을 언급만 할 뿐 상대가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산책이나 술자리로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리만 만들고 속마음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말을 안 한다면 그건 아직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적당한 표현을 찾아 헤매는 중일 수도 있다. 감정을 빛의 속도로 묘사할 수 있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최소한 2박 3일은 기다려줘야 한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배려하면 여우의 꼬리를 득탬하게 된다.
여우는 길들여지지 않아
도대체 여우 같은 여자는 무엇을 가졌길래 남자들이 끌려가는 걸까? 남자들은 여우의 내면에 숨겨진 야생성(wildness)을 직감으로 알아챈다. 진짜 여우는 눈빛이 남다르며 내면에 무언가 파악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갖고 있다. 어느 순간 밝은 얼굴빛 속에 슬픔이 스치는가 하면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로 입술 꼬리가 올라가기도 하다가 다음 순간 냉정하게 일에 집중하느라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가끔은 먼 곳을 향한 시선 속에 그리움이 묻어난다. 따라서 남자들은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반응이 늘 새롭고 그래서 언제나 마음이 설레고 한편으론 불안하다.
남자의 재력에 의존하기 위해 여우같이 보이려고 애쓰는 여자와 달리 진짜 여우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취감을 얻는다. 결혼을 하건 안하건 일과 경제적 능력은 길들여지지 않는 여우의 전제 조건이다. 또한 여우는 남자를 길들이려 애쓰지도 않는다. 드라마 주인공들과 다르게 현실의 남자들에게 인생의 우선순위는 일과 사회생활이지 여자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구태여 상대방의 삶에서 자신이 차지한 비율이 얼마냐고 묻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에게 여자는 지구 위의 유일한 heaven이란 점도 간파하고 있다.
여우의 특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나와 남성으로서의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지혜로운 진짜 여우는 머리가 아닌 가슴과 영혼으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