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결혼하려고 초등교사가 된 건 아니고요
브런치를 둘러보면 유용한 지식도 얻을 수 있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이다. 궁금하기만 했던 전문직의 삶이나, 생소하지만 알수록 매력적인 직업의 세계, 혹은 새롭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창작가나 프리랜서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
나도 다양한 세계의 한 문단을 추가하고 싶다. 초등교사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편견은 식상할 만큼 뻔하고 많다. 물론 긍정적인 편견도 많다만, 공무원이라 안정적이고 아이들과 오래 함께 있으니, 특히나 ‘여자초등교사’는 당연히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다. 왜 나의 안정적인 직장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연스럽게 가정으로 연결되는지는 의문스럽다. 아마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초등교사를 제일 많이 접해서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초등교사에게도 다양한 꿈과 길, 진로(?)가 있답니다.
먼저 초등교사가 되려면 각 지역마다 있는 국립교육대학교 혹은 한국교원대, 이화여대 초등교육과를 졸업하여 초등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 교육대학교에 입학하면 4년 동안 초등 1~6학년과 유치원(누리과정-1학년 수업의 연계를 위하여)에 있는 교과목 내용(국영수사과 등등), 교수학습방법(어떻게 가르칠 건지?), 교육이론(예를 들면 피아제, 비고츠키, 브루너 등의 이론)등을 배우고 실제로 가르치는 연습을 한다. 한 학기지만 일반사립대학교를 다니다가 교육대학교를 다녀보니, 일반대학교에 비해 교육실습, 교육과정, 교육이론의 수업이 월등하게 많고, 교양과정의 이수학점은 아주 적다. 이에 교육대학교는 특수 전문대로 분류되어 복수전공도 불가하고, 3,4학년 때 진로를 틀어 일반 기업에 취업하긴 어렵다. 이에 재학하다가 교직에 뜻이 없다고 결정하는 학생들은 전문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거나(로스쿨, 각종 고시, 혹은 경우의 수가 많진 않지만 아나운서 등 – 유명한 김민아 기상캐스터도 교육대학교 출신이다.) 다시 수능을 공부하여 일반대학교로 들어간다.
교육과정을 착실히 따라가다 보면 대부분 4학년이 시작되는 1월부터 임용고사 준비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임용고사가 그렇듯이 무수한 인재 속 합격자를 가려야 한다는 명목 하에 범위는 굉장히 넓고 문제는 치졸하다. 결국 암기 싸움인 경우가 많다. 상식적으로 풀 수 있는 몇 개의 문제도 있지만, 대부분은 글자 하나로 정오답이 갈리는 치졸한, 외우지 않으면 답이 없는 문제들이라 1년 내내 암기하다 끝이 난다. 그럼에도 교육대학교 졸업생들만 볼 수 있는 시험이라 경쟁률이 낮고, 이에 시험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초등 임용이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험 위해 공부하고 응시한 나는 마냥 쉬운 시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등교사라고 해서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지식만을 알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정말 정말 편견이다. 2+7 할 줄 알면 전부 선생 하게요?
그렇게 초등임용고사를 합격하면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의 초등교사로 발령받게 된다. 그리고 첫 해, 첫 시간을 우당탕탕 보내고 나면, 더 엉망진창인 하루하루가 쌓여 1년이 되고, 그렇게 첫 해를 숨 가쁘게 완주하고 나면 그제야 학교가 돌아가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막상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4년 내내 배운 수업보다는 학교 행정, 이를 테면 기안, 상신, 품의 등 외계어 같은 말들에 더 익숙해진다. 익숙하지 않은 학교에 실수를 반복할 때면 '이러려고 교대 시절 4년 내내 단소 불고 뜀틀 넘고 각종 이론들을 외웠나'라는 회의감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들인 시간 대비 효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 그렇지 배울 가치가 있는 것들이라고는 생각한다. 언젠가 빛을 발한다!
빠르면 6개월, 길면 몇 년이 흐르면 학교 일도 익숙해지고, 수업도 편해지면서 권태가 찾아오는 교사들이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교대생(교대 출신 생)들은 훨씬 더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이런 권태가 오는 선생님들에게 '이런 재밌고 유용한 수업스킬이 있답니다'라며 유혹하는 다양한 교사 동아리가 있고, 근본적인 교육 학문에 갈증을 느끼는 선생님들은 교육대학원 혹은 일반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수업에 필요한 수업스킬을 연구하는 선생님들, 그림책, 그림, 소프트웨어, 코딩 등을 새롭게 배워 수업에 적용하는 선생님들, 이런 것들을 적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책으로 내거나 강의를 하러 다니는 선생님들 등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끊임없이 재사회화를 하고 있다.
혹은 나처럼 해외에 나오는 선생님들도 있다. 재외 한국학교 혹은 교육원 등의 공고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필요한 자격요건들을 준비하여 해외에서 살며 교사생활을 할 수도 있다. 필요한 자격조건들이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 일단 다 준비할게'라는 마인드로 언어능력시험, 각종 업무 경험, 연구대회, 학위 등을 준비하다 보면 2~3년이 훌쩍 지나있다.
승진을 목표로 할 수도 있다. 교사로 시작하지만 행정에 더 관심을 가지고 관리자(교장, 교감)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이 자격요건은 계속 달라지긴 하지만 근태부터 연구대회 실적(대학원 혹은 연구대회 수상으로 채울 수 있다), 각종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들을 떠맡으면 주는 점수 등을 채우며 15년 정도를 투자한다.
모든 사람들이 초등학교 선생님을 보며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전문직에 비해 쉽고 어렵지 않은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는 예전에는 지금과 달리 교육대학교의 입학도 쉽고, 임용도 졸업만 하면 되었을 시절의 많은 선생님들 중 가르침을 소홀히 한 교사들에게 배운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도 ‘저런 사람과 내가 같은 동료 교사라니’ 하고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만큼 구린 선생들도 많다. 그렇지만 ‘와 내가 저런 사람과 같은 동료 교사일 수 있다니’하고 뿌듯해질 만큼 성실하고 가히 존경할만한 선생님들도 정말 많다. 이직의 기회는 적지만, 이 안에서는 공립학교, 교육청, 해외 학교, 혹은 연구원 등 다양한 또 다른 직업의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10년 후 어떤 교사가 되어있을까?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