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상출구 Oct 21. 2022

상실에 관하여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나와 당신의 슬픔의 거리

2019년 5월, 가리 부다페스트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참사가 벌어졌다. 회사에서 밀린 일들을 이제 막 털어내고(여행 후엔 어쩔 수 없이 일감이 쌓인다) 틈틈이 SNS에 여행 사진을 올리면서 그곳 풍경과 당시 기분을 되새기고 있던 나로서는 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시기상 그들은 아니겠지만 마치 현지에서 봤던 한국인 여행객들이 사고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착잡했다. 그날 이후 부다페스트 사진 게시는 잠시 중단했다. 누군가가 가족과 친구를 잃고만 현장, 그 비극이 아직 진행 중인 곳의 경치를 “아름다웠다”며 남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심각하게 부조리한 일로 여겨졌다. 얼굴을 직접 맞대지 않는 SNS에도 나름의 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담하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어떤 죽음은 한순간에 닥쳐오는데 그런 죽음일수록 남겨진 이들에게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상실감과 짝을 이루는 감정은 괴로움, 그리움, 외로움, 공허함, 원망, 죄책감 같은 기분들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고 난 뒤의 상실감은 아무래도 괴로움이나 원망, 죄책감처럼 아픈 감정을 시도 때도 없이 건드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미국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2011)은 911테러로 아빠를 잃은 9살 소년 오스카(토마스 혼)와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오스카는 상실의 괴로움과,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좌절하고 괴로움과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상실을 대하는 서로 다른 방법


오스카는 시신 없는 관으로 아빠의 장례가 치러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 아빠 토마스(톰 행크스)는 그날 흙더미처럼 주저앉아버린 세계무역센터 안에 있었고 시간이 지나서도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차 안에서 내다보는 오스카는 얼굴을 찡그린 채 가짜 장례식 같다고 불평한다. 그런 손자에게 할머니는 “이게 최선”이라고 타이른다.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가족을 위해서는 아빠의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테지만 오스카는 인정할 수 없다. 거기에는 형식상으로나마 ‘실종자였던 아빠를 ‘사망자로 확인해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엿보인다.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인 실종자는 그래서 아직 가까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지만 사망자는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빠의 장례식 이후 오스카의 모호한 분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산드라 블록)를 향한다. 오스카는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엄마와 언성을 높이며 다투다 “죽어야 할 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고 말해버린다.


엄마(왼쪽)와 대화하는 오스카.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스틸컷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오스카와 엄마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고, 가까이 있을 땐 충돌한다. 오스카와 엄마는 물리적으로도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두 사람은 한집에 살면서도 늘 다른 공간에 있다. 오스카는 욕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엄마를 들여보내지 않고, 방에 들어온 엄마를 침대 밑에서 내다볼 뿐이다. 하루는 휑하니 집 밖으로 나가면서도 걱정하는 엄마가 마음에 걸렸는지 닫힌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사랑해요”고 말하지만 엄마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 오스카의 심정은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다. 귀를 막거나 눈을 가리고, 침대 밑이나 옷장에 숨는다. 사건 당일 집에 돌아와 아빠가 자동응답기에 남긴 메시지를 들으면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 메시지를 엄마가 알지 못하도록 숨긴다. 아빠가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걸 짐작하면서도 두려움이나 슬픔을 표출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의 저편에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아른거린다. 피멍이 들 정도로 자기 몸을 꼬집는 오스카의 자해는 불현듯 밀려오는 마음의 고통이나 불안을 몸의 고통으로 덮어버리기 위한 행위였을 것이다.


가까이 가려할수록 멀어지는


오스카도 아빠가 죽었다는 걸 안다. 실감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태양이 폭발해도 8분간은 그걸 알지 못한다.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8분이 걸리니까. 8분 동안은 세상이 여전히 빛나고 따뜻할 것이다.” 자신에게 태양과 같던 아빠의 죽음 이후 오스카는 자신만의 8분을 살고 있었다. 아빠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서 아빠와의 추억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그 사태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때 아빠 옷장에 들어갔다가 실수로 깨뜨린 꽃병 안에서 작은 봉투가 나온다. 거기엔 출처를 알 수 없는 열쇠가 들어 있었다. 오스카는 아빠(와의 추억)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열쇠에 맞는 상자를 찾아 나선다. 아빠는 생전에 오스카에게 무언가를 찾는 문제를 던졌고, 오스카는 ‘정찰탐험대’라고 이름을 붙인 이 게임을 좋아했다. 아빠는 언제나 오스카가 문제를 풀려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하도록 유도했다. 열쇠가 들어있던 봉투에는 ‘블랙(Black)’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오스카는 상자나 아빠에 대해 묻기 위해 엄마 몰래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아빠(오른쪽)와 함께 정찰탐험대 게임을 하는 오스카.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스틸컷

상자를 찾는 일은 아빠와의 추억을 쫓는 보물찾기였다. 당장 소득은 없었지만 오스카는 아빠에게 가까워진다고 느꼈다. 반대로 엄마로부터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자를 찾지 못한 채 ‘탐험’이 길어질수록 아빠로부터도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쇠가 있다면 상자도 있어야 하고, 이름이 있다면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상자 찾기를 시작했지만 열쇠에 맞는 자물쇠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스카에게 남겨지는 건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같은 이름을 갖고도 다른 모습, 다른 성격으로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오직 상자에 대한 단서를 원했던 오스카는 소득도 없는 그들의 대화에 계획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게 반갑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사람들을 거대한 방정식의 숫자로 보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사람은 숫자보다는 글자에 가까웠고 그 글자들은 이야기가 되고 싶어 했다.” 실망을 거듭하면서 오스카는 처음부터 열쇠에 맞는 상자는 없었다고 생각해버리게 된다.


믿을 수 없이 가까이 있었던


오스카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엄마에게 쏟아낸 원망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왜 아빠의 음성메시지를 숨겼는지, 상자 찾기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해설로서의 비밀. 답을 찾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질문하고 거의 듣기만 하던 오스카는 할머니 집에 얹혀사는 노년의 남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노인은 오스카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달리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오스카의 질문에 답하기도 거부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집요하게 묻는 오스카에게 노인은 단호하게 “내 사연은 내 사연”이라고 적힌 메모장을 내민다. 자신의 질문에 답하지도, 무언가를 묻지도 않는 노인 앞에서 오스카는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이번엔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을 쏟아낸다. 그제야 노인도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 노인이 오래전 처자식을 버리고 떠났다는 아빠의 아버지, 그러니까 오스카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친할아버지임을 눈치챈 오스카는 그를 집으로 데려가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아빠의 메시지를 차례로 들려주는데, 노인은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할아버지(왼쪽)와 마주선 오스카.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스틸컷

오스카가 누군가에게 그토록 털어놓고 싶었던 비밀이 무엇이었는지는 마지막으로 만난 블랙과의 대화에서 밝혀진다. 오스카와 마지막 블랙은 어떤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했고, 기회를 놓친 뒤 긴 시간을 각자의 ‘열쇠’나 ‘상자’를 찾아 헤매야 했다. 이런 두 사람은 처음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비밀을 털어놓고 상자 찾기도 끝나버린 오스카는 편해졌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욱 괴로워한다. 그런 오스카가 마지막으로 듣게 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이미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엄마의 사연이다. 오스카는 생각지도 못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화해에 이르고 비로소 편안해진다. 오스카가 집착한 상자 찾기의 성패를 가르는 건 애초 상자를 찾느냐 못 찾느냐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 시절 뉴욕에서는 누구나 상실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자신만의 방편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 서로가 마음을 나누며 위로해야 했을 것이다.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태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었던 이들일지 모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