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국 전설의 왕 길가메시는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괴물 훔바바를 죽이고 돌아오던 중 친구 엔키두가 죽자 상심한 그는 자신도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영생의 비밀을 찾기로 결심한다. 길가메시는 성난 신들이 인간들을 대홍수로 없애려고 할 때 방주에 동물들을 싣고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난다. 우트나피쉬팀은 신들로부터 인류를 지켰다는 공으로 영생을 선물받았다. 길가메시를 불쌍히 여긴 우트나피쉬팀은 그에게 영생의 약초를 선물한다. 그런데 길가메시는 연못에서 목욕을 하다가 뱀에게 약초를 도난당한다. 영생의 비밀을 손에 잡았다 놓친 길가메시는 울부짖으며 우트나피쉬팀에게 묻는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어차피 죽어야 하는데 왜 살아야 하느냐고. 우트나피쉬팀은 말한다. 길가메시야, 너무 슬퍼하지 말고 다시 돌아가 원하는 일을 하며 아름다운 연인을 만나 사랑하거라.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종종 만나 맛있는 것을 먹고 술도 마시며 대화를 나누거라.
비틀즈의 존 레논이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길가메시야 인생이란 네가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동안 흘러 없어지는 바로 그것이란다
Life is what happens to you're busy making other plans"
_김대식, '김대식의 빅퀘스천' 중에서
2.
"혜안을 가진 열명을 포함한 천명의 학자가 있습니다. 그들중에는 한명의 천재,한명의 발명가,한명의 창조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을 가진 사람은 몇천명이나 됩니다. 이 세상에는 셀수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 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나의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
_에곤 쉴레, 페슈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10)
.
아마도 '자존감'을 정의한다면 자기를 연민하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상태.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 쯤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높은 지위와 많은 돈을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의 철학적 자아에 더이상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삶은 한없이 건조하고 폭력적인 상태가 된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실존을 잃는다.
자유는 많은 경우 '선택할 수 있음'에서 비롯되나, 오랫동안 선택 할 수 있음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다보면 사람들은 마침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선택을 잊은 사람들은 선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집요하게 끌어내린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자라왔다.
하고자 하는 바와 해나가는 바가 일치하는 상태를 '참'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부조화한 상태는 다름아닌 '비참'이다. 기죽고 생기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삶은 그래, 비참한 삶이다. 그리고 우리의 비참에는 선택의 구조적 배제, 즉 할 수 없음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시킬 때마다 '나는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to not to'라고 읊조렸던 바틀비의 주문은 여지없이 마법적이다. 이 짧은 주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꽤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일깨우고 있다.
3.
이 시커먼 세상을 부유하는 우리에게 우트니파쉬팀은 속삭인다.
그대여,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려 하지말고 삶의 다른 곡절에서도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음을 깨달으라. 슬프지만 우리의 치열한 고민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흔하다고 말이다.
진실로, 우리는 모두 어른일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저 자신만 온전히 껴안을줄 알면 된다.
그러니 기도 하자. 수없이 많은 길을 잃고 다시 찾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에고트립이 또다시 무사히 끝나기를. 가빴던 숨이 잦아들고 폭풍같은 마음이 가라앉기를. 그리하여 발을 땅에 굳게 딛고 인간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