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을 했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by 심내음

해외 법인에 주재원 발령을 받고 부임을 하였었다. 업무 파악을 하고 시장 상황을 점검해 보았는데 각종 지표들이 좋지 않았다. 나라의 국민들은 착하고 밝았지만 경제 자립성이 튼튼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 위축은 큰 영향을 주었다.


부임하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본사 경영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구조조정을 실시할 것, 손익을 흑자화하고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인력은 약 30% 감축을 하라는 강력한 지시였다. 난 눈을 감았다. 드디어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지 인력 리더 회의를 소집하여 구조조정은 계획을 수립하였다. 큰 줄기는 쉽게 말하면 현재 매출 규모에서 집행하는 비용이 과다하여 적자가 나는 상황을 흑자로 반전시키는 것이었으니 매출을 늘리거나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현 시장 상황에서 매출을 늘린다는 전제로 비용 특히 인력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선행투자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으므로 선 매출 확대 후 비용 확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현재 규모에 맞추어 비용 감축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비용 감축은 우선 변동비를 보고 효율화 작업을 시작하였다. 네거티브한 방향을 지양하기 위해 효율화라는 방향성을 잡았지만 사실상 대폭 감축 혹은 최소화라고 보는 게 맞았다. 광고비, 판촉비, 시장조사비, 거래선 지원비, 판매 인센티브, 매장 투자비, 가격 변동 보상비 등 변동비의 거의 모든 항목을 줄였다. 중기 시장 전망을 시나리오 1~3개로 잡아 각 시나리오별로 축소 규모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세 번째 최악의 시나리오로 갔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다음이 고정비였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이 인건비. 어떤 비용 감축보다도 가장 힘들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작업이었다. 현지 인력 리더들에게 소속 부서 인원들의 잔류와 해고 명단을 제출하도록 하였다. 간단하게는 부서원 명단에 "O"와 "X"를 마크해서 나에게 가져다주는 작업이었지만 나는 그 옆에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정리해서 주도록 하였다. 현지 인력들에게 좀 더 책임감을 갖고 나아가 인력이 축소된 후에도 남은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본인의 조직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주기를 바랬었다.


리더들에게 명단을 받고 해고가 결정된 인력들에 대한 면담을 시작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나에게는 처음 하는 경험이었고 2009년에 본 영화 "인디 에어(In the air)" 생각이 났다. 조지 클루니가 구조조정 때문에 사람들을 해고하면서 겪는 고뇌에 대해 다룬 영화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때 그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조지 클루니가 나온다는 이유로 봤었고 부끄럽게도 팝콘까지 먹어가면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평소 웃으며 인사했던 현지 직원들을 하나씩 만나서 회사의 사정을 설명하고 사직을 권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말했다. 일부 직원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해고 면담을 하는 것에 원래부터 인원감축을 위해 새로 부임해 온 사람이냐고 묻기도 하였다. 이런 질문들에 나는 괴로웠고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때 반복했던 이야기 중에 하나가 이것이었다. 10명을 다 살릴 수는 없다. 7명을 살리기 위해 3명을 해고하지 않으면 10명 다 일자리를 잃는다. 이해해 달라. 10명 다 살리지 못하는 무능한 나를 용서해 달라. 하지만 10명을 다 죽일 수는 없다. 해외법인 인력 중 대상이 되는 50명이 넘는 직원들을 면담하면서 이 말을 반복했고 반복할 때마다 너무도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인력 감축과 비용 축소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축이 프로세스 및 오퍼레이션 개선이었다. 그동안 너무 관행적으로 진행된 것들의 효율성을 따지고 리소스를 간소화하면서 결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A부터 Z까지 모두 살펴봐야 했다. 최소한 이렇게 해야 해고를 당한 직원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미안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10개월 후 법인은 정상화되어 흑자를 기록하고 그때 해고되었던 직원들 중 수십 명은 다시 고용을 할 정도로 회복하였지만 해고 면담을 하였던 씻을 수 없는 기억은 가끔씩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사실 그 당시 누구를 해고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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