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미 Nov 25. 2021

탱고, 밀롱가, 그리고 까베세오


*앞의 밀롱가에 관한 글(https://brunch.co.kr/@mi-mi/76)을 읽으셔야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탱고는 정말정말정말 진입장벽이 높다. 춤의 무덤이라고 불릴 만큼 춤 자체의 난이도가 높고, 스윙이나 살사를 오랫동안 추고 와도 탱고에서는 가차 없는 ‘초급’이다. 

거기다 다른 춤에서 배운 것들을 써먹기가 어렵다고들 말한다(실룩대는 골반은 잠그고 와야 한다).


다른 소셜댄스에서 이름 좀 날렸다 하는 분들은 여기서 오랜만에 느끼는 ‘초급’ 취급에, 받아본 적 없는 차가운 반응-보통 여자들의 싸늘한 반응이 많다-으로 탱고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내가 여기 아니면 출 곳이 없는 줄 알아!” 라는 말을 남기면서.      



*

하지만 탱고의 가장 어려운 고비는 모든 것을 제치고 바로 ‘까베세오(Cabeceo)’가 아닐까 싶다. 

스페인어로 고개를 끄덕이다, 고갯짓 등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수많은 땅게로스(Tangueros : 탱고를 추는 사람들)들의 영원한 과제다. 수년간 매일같이 밀롱가를 다니는 이들도 까베세오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조도 낮은 밀롱가에서 춤과 춤 사이, 탱고가 아닌 음악이 흐르는 그 찰나에 눈짓과 고갯짓으로만 함께 춤을 출 사람을 찾는 이 탱고의 문화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을 불편하거나 예의 없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참으로 맞지 않는 행위가 아닐까 한다.     


‘어디서 눈을 부라려!’     


다른 춤에서는 ‘함께 추실래요?’라고 물으며 손을 잡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춤 신청 과정이,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그 여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야 그제야 여자 앞으로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싸늘한 거절도 존재한다.

 휙 돌려버리는 여자의 고개에 많은 리더들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말한다. 

남자의 시각에서 본 까베세오-의식의 흐름 

음악이 별로라던가, 사람은 좋지만 춤이 싫을 수도 있다. 하지만 거절 자체에 상처받는 이들이 많아 거절하는 여자는 ‘나쁜 년’이 되기도 한다.      



*

남자는 신청하고, 여자는 승낙한다. 

기본값은 이렇지만 사실 춤과 춤 사이 타이밍에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서로 말없이 번개 같은 눈빛만이 오간다. 흡사 눈치게임과도 같은 이 순간을, 까베세오를 모르는 이들은 그 광경을 보며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짠 듯이 나가지?’ 하며 궁금해한다.     

물론 이 눈짓이라는 행위가 레이저 포인터가 아닌 이상, 나란히 앉아 있는 이들 중 자기를 쳐다보는 것인지 내 옆사람을 보는 것인지 100% 확신할 수는 없다. 가끔은 ‘나인가?’ 싶어 일어났다가 옆자리 여자의 손을 잡고 나가는 남자를 보며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모르기도 한다.      


이런 까베세오를 어려워하는 이들은 직접 가서 ‘저랑 한 곡 추실래요?’라고 말하는 소위 ‘손까베’를 하기도 한다. 밀롱가의 수많은 팔로워와 오거나이저들이 치를 떠는 행동이다. 손까베도 물론 사실 눈을 마주치기 불편해하는 리더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안다. 심정적인 이해는 되지만 밀롱가에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중 하나다. 


혹자는 위의 이유들 때문에 ‘까베세오’는 남자에게 불리한 행위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까베세오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이는 오히려 남자를 위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남: 한 곡 같이 추실래요?

여: 싫어요.


라고 면전에서 대놓고 듣는 것보다 눈짓으로 회피해버리는 것이 마음의 상처가 덜할 것이다. 면전에서 거절해야 하는 팔로워의 마음도 편치 않아진다. 손까베를 거절하지 못해 마지못해 나가는 팔로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추는 춤이 서로에게 즐겁기도 어렵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저놈은 손까베 하는 놈'으로 팔로워들에게 찍혀 봐야 좋을 것이 없다.

눈짓으로 거절당한 뒤, 좀 더 얼굴이 두껍다면(?) 상처를 딛고 빠른 포기를 한 뒤 다른 여자에게 춤을 신청할 수도 있다. 이렇게 리더와 팔로워, 서로의 마음이 덜 불편한 행위가 바로 까베세오다. 눈짓으로의 거절이 좀 덜 민망하지 않은가. 



*

까베세오란 어찌 보면 탱고에 관한, 탱고인들만의 이야기다. 하지만 눈짓으로 은근히 말하는 소통은 살면서 보기 힘든 방법이기도 하다. 

눈짓과 고갯짓, 그리고 춤이라는 언어를 넘어선 소통은 일상을 다르게 만들어 주는 탱고만의 방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탱고가 바꿔놓은 많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