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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04. 2021

한국인은 연애보다 탱고를 열심히 한다

탱고가 내게 왔다 


지난주, M이 밀롱가에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50대 초반의 A는 M과 테니스를 함께 치는 사이라 했다. 

인사를 나누고 와인을 따서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A는 탱고나 밀롱가 자체가 처음이라 했다. 수십 명이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우르르 나가 춤을 추는 것이 연신 신기해 보였던지, M의 적극적인 영업 덕분인지 A는 선뜻 탱고를 시작해 보겠다고 말했다.     


A가 물었다. 

A: 저분들은 몇 년씩 한 거예요? 다들 너무 잘 추는데?

M: 빠르면 2년, 3년 정도? 

A: 저걸 어떻게 하나…어려워 보이는데 엄청?

M: 하다 보면 되게 되더라고. 일단 해 봐~     


멋쩍은 웃음을 짓던 A는 그렇게 12월부터 초급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새로 탱고를 시작하겠다던 A를 보고 난 뒤,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M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들 돈 받는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탱고를 열심히들 할까요?”     


실제로 탱고를 배우는 많은 이들이 다른 취미를 버리고 탱고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주 5일, 6일씩 탱고 강습과 연습, 밀롱가를 오가는 땅또(땅고+또라이)들은 참으로 넘치는 체력과 근성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시간만 쓰는 것도 아니다. 노력까지 써야 한다. 멀게는 제주도에서 매주 밀롱가를 가기 위해 서울로 오는 분도 있고,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주말마다 시간을 내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분들도 의외로 흔하다. 

서울에서 부산이나 대구 등 지방으로 ‘원정 밀롱가’를 떠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해외로도 밀롱가를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탱고를 더 잘 추기 위해 필라테스, 헬스, 발레 등을 배우는 경우도 흔하다. 


다들 강습을, 연습을 그리 열심히 어떻게들 하는 건지, 웃기게 표현하면 탱고를 ‘연애보다 더 열심히, 꾸준히, 오랫동안’ 한다. 

노는 것도 공부처럼 진심으로 하는 이들이 세상 대단할 뿐이다. M과 이야기하며 머릿속으로 '한국인은 뭐 이리 열심히 춤을 추나'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세워봤다.     



가설 1. 한국인의 DNA 이론 

한국인들의 삶은 초, 중,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입시라는 단어로 함축 가능한, 끊임없는 경쟁의 연속이다. 이놈의 각박한 나라는 등수를 매겨 누구보다 잘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수십 년간 대를 이어온 ‘입시’의 유전자가 취미인 탱고에까지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가설 2. 한국인의 흥 

한국인의 흥이라는 것, 전국민이 댄서와 가수로 거듭나는 '관광버스'와 '노래방'으로 대표되는 한국인의 레크레이션에 대한 사랑, 음악에 대한 지대한(흥에 대한) 열정의 유전자가 탱고까지 이어져 온 것일까? 


가설 3. 한국인의 자존심  

춤이라는 영역이 언제나 정답이 없고, 보이는 것과 함께 추고 있는 사람의 평가가 늘 다르나, ‘내가 이 밀롱가에서 제일 잘 추는 사람이 될 거야’ 같은 오기로 열심히들 하는 것은 아닐까? 

슬프게도 소셜댄스라는 것이, 성격이나 인성보다도 일단 춤을 잘 추면 많은 것이 커버되는 영역이기에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이 해외 밀롱가에 나타나면, 일단 기본적으로 ‘잘 춘다’는 이미지가 박혀있을 만큼 한국인들의 탱고 실력은 대외적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근성으로 뭉친 한국인들의 ‘탱고를 잘 춘다’는 테크닉에 국한되어 있다는 평가도 많다. 

음악을 표현하는 뮤지컬리티보다는 칼 같은 동작(figura)을 중시하는 기분도 든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감성이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조금 다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도 탱고에 거하게 미쳐 있지만,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가설 중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

이유가 무엇이든지 탱고는 분명히-적응을 거친다면-평생에 가깝게 즐길 수 있는 취미다. 관절과 체력이 허락하는, 90세가 넘은 아르헨티나 노인들이 춤을 추는 장면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생업만큼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것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평생을 할 수 있는, 중독성이 극심한 취미다. 앞서 언급한 ‘공부하듯, 연애보다 더 열심히’ 탱고를 배우는 한국인들의 근성도 대단하지만, 사실 심정적으로 이해는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관절과 근육이 안녕할 때 하는 것이 이득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12월, 과연 A는 탱고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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