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위한 몸부림, 놀리 창업기
드디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됐다. 아직은 막연하고 안갯속 같은 일이었지만 하고 싶은 방향이 생겼다.
‘하고 싶은 일’에 관한 앞에 쓴 문장을 복기해 봤다.
1. 누구나 마음을 쏟을 대상(혹은 행위)이 필요하다.
2. (1)의 마음을 쏟을 대상은 우연히, 사고처럼 찾아온다. 이를 스스로 찾은 사람들은 정말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버킷리스트로 존재해왔고, 대다수는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생각했던 비즈니스 모델은 영국의 버진그룹의 익스피리언스데이즈(virgin experience days) (https://www.virginexperiencedays.co.uk)나 일본의 소우 익스피리언스(sow experience)(https://www.sowxp.co.jp) 같이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는 서비스와 비슷했다.
내 생각대로 해외에는 유사한 서비스가 꽤 있었다. 우리보다 좀 더 체험과 경험을 선물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서 그런가. 외국 서비스들을 보며 <경험을 선물하는 일> 자체가 시장에 존재하는 것은 확인했다.
스스로 결제하는 자기 주도적인 경험도 좋지만 나는 이때 ‘우연한 계기’처럼 다가올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었다. 외국에는 확실히 시장이 존재했다. 그럼 우리나라도 액티비티 시장은 괜찮을까?
온갖 리서치 회사와 국내 기관들까지 안 본 데이터가 없었다. 데이터가 말하는 한국 시장은 취미와 자기계발의 나라였다. 의외로 사람들은 적은 듯 다양한 취미를 하고 있었고(나도 마찬가지로),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았던 이 시기에도 사람들은 비대면 취미를 즐겼다. 산으로 들로 떠나 ‘모이지 않는’ 취미를 영위할 뿐이지 취미 그 자체를 없애지는 않았다. 확실히 사람들은 취미에 무언가를 투자하고 있었다.
*
이즈음이었다.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동료를 생각하게 됐다. 글의 제목에는 동료를 뜻하는 일본어 단어인 '나까마(なかま)'라고 표현했다. '친구'인 도모다찌(ともだち)가 아닌 일을 함께 할 동료가 필요했다. 과연 이런 나의 무모한 계획에 동참해줄 친구는 어디에 있는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A가 떠올랐다. 금융과 IT 업종에서 일하던 그와는 10년 정도 알고 지냈으며, 일로 얽힌 사이가 아니었다. 내가 A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이유는 A의 레저에 대한 진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A는 회사에 다니던 중간중간에도 사업을 계속 꿈꾸던 사람이었으며 내가 이런 결심(경험을 판매해 보자)을 하기도 훨씬 전부터 레저 사업을 시도해본 적도 있었다.
코로나 시기로 한참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해 A를 만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선릉역 어느 스타벅스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심스럽게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 기억나는 순간은 아니지만 A와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 날 이후 별도로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뒤 A는 나와 강제로 동고동락하게 됐다.
이 이후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가 여러 차례 정리가 됐다. 오만 갈래로 흩어지는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수립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리서치를 해보고 사업계획서를 쓰고 여러 가지 논쟁과 아이디어가 흘러갔다.
*
초기 경험을 선물하고 판매하려던 아이디어를 수립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이즈음 모 AC에서 시작하는 창업자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사람을 모집해 몇 주간 뽑힌 멤버들 사이에서 팀과 아이디어를 수립하고 이 단계를 통과한 이들에게 시드 투자를 해준다는 말이 참 매력적으로 들렸다. 새로운 동료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프로필을 보내고 1차 통과. 이후 이어진 화상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이 프로그램은 생각하던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어차피 2차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인터뷰를 통해 받은 인상은 ‘여기(프로그램에서)서 아이디어를 찾고, 투자받아 빠르게 성장하고 엑싯 하는 곳이야’라는 느낌이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전혀 이상한 수순이 아니다. 어떤 일을 하던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일과 방향, 엑싯(Exit)보다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내게는 결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졌다(그 뒤에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오만한 생각이었다).
*
비단 김춘수 시인의 ‘꽃’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이에게는 대상을 설명할 이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 서비스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쥐어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처럼 꼭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일이던 나는 이런 이름을 참 못 짓는다. 이런 후보안을 정할 때는 내 건 채택되지를 않는다. 생각이 너무 많나. 수십 개의 이름에서 이름을 정했다.
놀리(Nolly).
놀이를 살짝 비튼 이름이다. 우리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가 되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의식주와 일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놀이와 유희도 필요하다. 우리는, 아니 놀리는 새로운 유희의 계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고 싶었다.
*
놀리의 서비스 기획은 시간을 들여가며 계속해서 아이디어가 업데이트되어 갔다. 사업계획서 PPT가 업그레이드에서 옆그레이드로 페이지를 불려나가던 어느 날, A가 한 가지 큰 의견을 제시했다. 회사 전체 비즈니스 기획이 피봇을 한 아이디어였다.
“우리 서비스를 기업 복지몰로 하자”
A의 아이디어는 일리가 있었다. 실제로 주변에 복지포인트를 제공받는(사번을 통해 진입 가능한 폐쇄형 복지몰을 사용하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여기서 살 것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보통 연말에 허먼 밀러(Herman miller) 의자 같은 걸 사서 당근마켓에 중고거래로 ‘미개봉 허먼밀러 에어론 팝니다’ 등의 글을 올려 이를 판매했다. 이렇게 현금화한 돈은 여행이나 취미에 사용하고는 했다. 이 구조 속에서 이득을 취하는 주체는 폐쇄형 복지몰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계기라면, 내 돈보다 회사 복지비용이 더 접근이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을 통해 리서치를 해보고,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때가 우리 회사 서비스의 정체성을 ‘기업복지몰(B2E)’로 정립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