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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Nov 25. 2024

놀기 위한 몸부림, 놀리 창업기

창업은 왜 해서

“엄마 걱정 그만 시키지 그래”     


창업은 왜 해서.


나름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쉴 틈 없이 운 좋게 취직도 해봤고, 일하는 것, 세상 사는 걸 알만 하다는 오만함에 물들 때쯤 호기롭게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이렇게 회사를 나와 차린 첫 번째 회사는(공동창업이었다) 브랜딩 에이전시였다.


용산의 한 커피숍 구석에서 시작한 회사는 대단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나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스타트업 업계에서 말하는 ‘Zero to one’을 실현해 봤다 생각했다.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고, 스스로가 이런 걸 해냈다니 싶을 만치 자랑스러운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좀 더 있었다면 더 크게 빛을 볼 일이 있었지만,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였다. 번아웃이 와버린 나는 공동창업자에게 ‘소시오패스’ 소리를 들으며 중도 포기를 택했다.     


에이전시에서의 일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된 기분이었다. 클라이언트가 없을 때는 먹고 살 걱정이 앞섰다.

클라이언트가 있을 때는 내 현실 생활에서 밥을 먹고 있던 친구를 만나던 중요하지 않았다. 담당자의 연락이 오면 지니처럼 “무엇이 필요하신가요”를 외치며 무엇이든 해결해주고 만들어줘야 했다. 19시 이후로 연락을 하지 말자는 경계를 정하려고 해도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과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흔히 인터넷 밈으로 나오는 ‘디자이너를 빡치게 하는 방법’도 많이 겪었다. 모던하지만 전통적으로 해주세요. 복잡하지만 심플하게 해주세요. 시안 하나 더 봅시다를 수십 번을 외쳐 철야를 했더니 다 마음에 안 들어요 라던가.      


거센 번아웃이 오자 매일 마시던 음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 미친 듯이 취미에 매달렸지만 정신적 갈증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돈도 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마음속에 중요한 것이 없었다(정신적인 피폐함이 한 몫을 했다). 회사를 그만 하기로 결정했다. 며칠간 깊이 고민하다 결정한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매일매일 일상적인 이야기는 나눴지만 전화로 이런 큰 결정을 통보하는 건 좀 무책임하기도 했다.     

그래서 실망했다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부모님은 의외로 ‘네가 고민했으면 그렇게 해라’라고 선선히 말했다. 이제는 헤어짐이 중요했다. 공동창업자와 사무실에서 가시 돋친 말들과 고성이 오가고, 피가 거꾸로 도는 경험을 마치고 난 뒤인 2021년 여름, 나의 직업은 공식적인 ‘백수 겸 대학원생’이었다.


일을 핑계로 몇 년간 졸업을 못 하고 있었으나, 적을 두고 있는 소속은 대학원 하나였다. 명함 대신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건 학생증과 주민등록증 뿐.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고민만 많은 나이인 삼십 대가 돼버렸다.      


일을 정리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묻지마 제주도행’이었다.

출장으로 여러 번 내려간 제주도였지만 캐리어 하나 들고 떠난 이 여행은 목적이 명확했다. 새로운 도전.

그 흔한 운전면허도 없고 수영장 근처도 가보지 않던 내가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다. 이유는 별 것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듯 새로운 취미의 시작은 ‘다단계 마케팅’처럼 주변의 권유가 많으니까. 처음 친구 손에 이끌려 ‘묻지마’로 끌려간 K21이라는 다이빙풀에서 코로 물을 먹으며 체험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고, 늘 정적인 삶을 추구했던 내게 계획 없이 다가온 스쿠버다이빙은 의외의 방향에서 내게 도움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할 것(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돌아가니까).

침착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라니. 가슴이 떨렸다.     


본격적인 바다 스쿠버다이빙 라이선스 취득을 위해 떠난 제주도는 그때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코로나 시기인 데다 평일, 시간 만수르가 된 나는 다이빙샵의 6인용 도미토리를 혼자 썼고 1:1로 강습을 듣는 특혜를 얻었다.


눈물 젖은 맥도날드와 코로나 검사, 제주 앞바다에서 횟감을 수족관이 아닌 입체로 보는 대단함을 느끼며 강습이 끝난 나는 오픈워터 다이버가 됐다. 운전면허도 석사학위도 없던 내가 난생처음으로 취득한 ‘라이선스’였다.      




아주아주 작은 성취 하나.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한 첫 번째 불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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