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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대의 철학 Jun 22. 2024

우산을 받쳐 들고 네 곁으로 간다

-  그리움은 내리는 비에 젖는다

우산을 받쳐 들고 네 곁으로 간다

-  그리움은 내리는 비에 젖는다


                                       시. 갈대의 철학[겸가蒹葭]



비가 내린다

이 비에 떨어질 낙화가

그다지 그립지가 않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도심에 한 복판에

나는 서있다

떨어질 수 없는 발걸음은

더욱 된서리 마냥

우산을 써도 나의 위선은

가릴 수가 없었다


자동차의 경적 소리도

내리는 비에  

인기척이라곤 옆으로 쏜살같이

물탕을 치고 달아 내빼는

어느 이름 모를 낯선 이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가엾이 처량하다시피 한

고개 숙인 접시꽃의 우산을 받쳐 들고


의연하게 당신의 접시꽃

그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을 접시꽃

오늘만큼은

어느 누구 하나 우산을 받쳐든 이 없이

내리는 빗방울에 사랑의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비에 떨어질 꽃잎이 아니라면

차라리 다가올 가을날

달빛이 으스러지게 부서지는

달밤 초야를 기다리련다


대청마루 전야 창호지에 그을려

바람에 흐드러지게 내비친

그림자가 춤을 출 때면


이윽고

한 떨기 단풍에 연지곤지 바른

시집온 새색시의 족두리의 무게를

감당치 못해도 나는 좋으리 


붉게 물든

색동저고리의 매듭을

먼저 풀어헤 그리움을

떨어지는 빗물에 떨치고 따르리라


행여 질세라

우산 없이 걷고 걷는 마음을

내 곁에 둔다면

나는 언제나 영원히

당신 곁에서 우산을 받쳐든 이를

용서하며 사랑하리라


고들빼기 김치

2024.6.22 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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