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
정확히 말하자면, 여름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은 유난히 싱그러운 초록이었다.
내가 원한 건 '치즈냥'이었다.
왜 굳이 그 모색을 추구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이마트 앞 벤치에서 처음 만났다.
아기고양이를 분양하러 오신 분은 '구조자'였다.
임신한 길고양이를 거두고, 새끼까지 받아서 보내고 계셨다.
내 Pick은 올치즈냥이었다.
그 아이만 데려오셨을 줄 알았는데,
가방을 열자 잘 먹어서 훌쩍 자란 치즈냥 셋과
볼품없이 작고 못생긴 삼색고양이가 있었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언니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바빴다.
고개를 들 힘조차 없어 가방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속절없이 언니들의 밀침에 쓸려 다녔다.
내 옹졸한 주먹만 했다.
그 아이는.
그토록 원했던 치즈냥이들이 나를 향해
우렁차게 울면서 "픽미 픽미"를 외치고 있었다.
이상했다.
마음에 조금의 미동도 들지 않았다.
자꾸만 삼색이한테 시선이 갔다.
구조자분은 삼색이가 막내고, 잘 못 먹었다고 했다.
굳이 이런저런 설명이 없더라도 알 것 같았다.
푸석푸석한 털과 맹해보이는 눈빛.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던 오묘하게 뒤섞인 모색.
거기에 눈곱인 줄 알았던 짙고 긴 아이라인.
코 절반은 차지하고 있던 점까지.
아무도 안 데려갈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삼색이, 제가 데려가도 될까요?"
뭐에 쓰인 듯 내가 말했다.
"정말요!? 그래주심 좋죠!"
구조자분이 환하게 웃었다.
삼색이는 아마도 아픈 손가락같은 존재였나보다.
2010년 6월 18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무척 싱그럽고, 너무 따뜻하고 포근했던.
우리 둘만 기억하는 감성이 터지는 그런 날이었다.
이 못생긴 고양이의 이름은
<빵순이>가 되었다.
촌스러운 이름이 오래 산다는 말도 있었고,
솔직히 '엘리자베스'같이 공주님 이름이나
'레오'처럼 강렬한 이름을 붙이기엔 하찮았다.
우리 애가 너무 작고, 하찮았다.
집에 데리고 오니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벌컥벌컥 들이키곤 그대로 기절했다.
너무 잘 자서 죽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20대 초반까지, 많은 반려동물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삼촌이 외할머니에게 떠맡겨 같이 살았던 러프콜리.
부친이 갑자기 데려왔다 사라진 믹스견들.
잠깐 함께했던 집토끼.
그리고 내가 키웠던 햄스터들.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아기 고양이는 더더욱, 초면이었다.
2개월령이라고는 했지만 언니들보다 절반 사이즈였던 빵순이.
제법 야무진 앞발에 치석 제거도 안 될 것처럼 가녀린 손톱에
몸이랑 머리는 1:1 비율이라 이거 어디 몸이 불편한 건가 싶기도 했다.
이러다 갑자기 죽는 거 아니야? 덜컥 겁도 났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이 코딱지만큼 작은 고양이를 살찐이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애가........
사료를 안 먹었다.
혹시 몰라 갈아서 주고, 물에 불려서 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줬는데도 안 먹었다..
당시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지금같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냥 요물, 영물이라며 선호되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정보가 다양하지도 않았고,
간식이나 사료의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잽싸게 마트로 달려갔다.
심술궂은 얼굴의 아메숏이 모델인
위스카스 키튼 파우치를 몇 팩 사왔다.
사료를 섞어주니 먹지 않길래,
혹시나 해서 파우치만 줬더니 먹었다.
이 콩만 한 게...
혹시 나한테 사기 친 거야?
언니들한테 치인 게 아니라,
엄마 젖투정 하느라 안 큰 거야?
완전 낚인 기분이었다.
근데 밉지가 않았다.
다른 자매들과 나누지 않고,
온전히 제 것인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워낸 것이
대견하고 또 대단해서 귀여워보였다.
며칠 만에 빵순이는 완전히 다른 고양이가 되었다.
바싹 마른 몸에 살이 붙자, 머리를 잘 들게 되었다.
얼마나 발랄한 지, 주눅들어보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눈 뜨고 있는 동안 온갖 갖가지 장난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빵순이는 무럭무럭 강해지는데, 나는 매일 수척해졌다.
너무 작아서 자다가 깔아뭉개기라도 할까 봐 잠도 설쳤다.
실제로 아주 어릴 때, 아픈 병아리를 간병하다가 잠든 탓에
그대로 병아리를 압사 시켜버리고 만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빠르게 바짓단을 붙들고 올라타고,
맹렬하게 뒤꿈치를 물어 제끼던 녀석 덕분에
걸음걸음마다 자칫 발로 차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했다.
하루종일 아르바이트에 학교 생활에 진이 빠진 채로 돌아와
몸을 뉘이면, 빵순이는 쉬지 않고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내가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두피에 뒷발차기를 해댔다.
아기 빵순이와의 하루하루는 정신이 없었다.
화나게 하는 일이 몇 백가지는 됐지만, 화내지 않았다.
혹시라도 예전처럼 주눅이 들어서 의기소침해질까 봐.
무엇보다 1살이 될 때까진 그냥 애였다.
사람으로 쳐도 대화와 소통이 안 될 시기였다.
오히려 1살이 지나고 나서는
잘못된 행동에 대해 엄하게 가르치긴 했지만,
가르치기 전에 빵순이는 알아차리고 안 할 때가 더 많았다.
빵순이는 날 닮았다.
나도 빵순이를 닮았다.
어설픈 첫 만남과 우당탕탕 보낸 매일 속에서
우린 종(種)이 다른 자매처럼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