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 열 받네? 참지 않아.

진정한 테토묘의 성질머리.

by 김우연


처음 만난 순간부터, 빵순이는 참 일관적이었다.

처세술이 좋은 건지, 눈치가 빠른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빵순이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취향이 명확한 고양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린 많이 닮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은 완전히 반대였다.


빵순이는 사소한 일도 화가 나면, 절대 참지 않았다.

딱 삼 세번, 제 딴에는 부드럽게 의사표현을 해보고

통하지 않는다 싶으면 기어코 그 성질머리를 드러냈다.


-


애지중지하던 아이리버 MP3가 있었다.

출퇴근길마다 함께한 분신 같은 물건이었다.

잘 때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들었다.

그만큼 좋아했고, 아꼈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고약한 냄새가 치밀었다.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일어났는데,

손바닥에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내 침인가 했다.

바짝 코를 갖다대고 냄새를 맡으니,

그건 분명히 지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어...?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내 손이 젖은 그 곳, 바로 베개 옆에

MP3가 꺼진 채로 놓여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MP3의 젤리케이스를 벗기자

냄새의 원흉인 액체가 고여있었다.


나도 모르게 사자후가 튀어나왔다.

처음으로 빵순이에게 화를 낸 날이었다.



"김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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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뭐.


뻔뻔하기 그지 없는.

아니, 좀 더 원망이 섞인 듯한 얼굴이었다.


빵순이는 아무 데나 실수를 하는 고양이가 아니었다.

분명히 고의성이 다분한 행동이었다.


집을 둘러보니, 단박에 이해가 됐다.

잠결에 실수로 빵순이의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가는

통로의 문을 내가 완전히 닫아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우람한 빵순이라도,

그 문을 열 순 없었을 테고.


아, 어쩐지-.

꿈인 줄만 알았는데, 진짜였구나.


그 날 새벽에 빵순이가 유난히 큰 소리로 울고

내게 와 몸을 부비며 깨우는 것 같더라니.


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그건 목적이 확실한 복수였다.

자신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집사에게

정당하게 본보기를 보여준 빵순이.


나는 빵순이에게 소리 친 것을

사과해야만 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그 문을

실수로라도 닫은 적이 없다.

절대로.




빵순이는 화가 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물던지, 때리던지, 밟던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싫으면 피하거나 안 하고,

기분이 상하면 반드시 표시를 냈다.

조금의 변화구도 없었다.


여느 날처럼 빵순이에게 빗질을 해주던 때였다.

내가 빗질을 하면, 빵순이는 그루밍을 했다.


마치 둘이 합심해서,

빵순이라는 '퀸' 꾸미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놀았다.


그러다 내가 잠깐 한눈을 팔며 빗질을 하다가,

빗으로 빵순이 얼굴을 제법 세게 쳐버렸다.


툭, 소리였지만, 동시에 툭,

빵순이의 이성도 끊어진 소리가 들린 듯 했다.

눈빛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맹수로.


앞발로 빗을 탁! 소리가 나게 쳐냈다.


“아, 빵순아 미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아팠어?”

나는 너무 놀라, 다급하게 빵순이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하지만 빵순이는 뻗어오는 내 손을 탁! 쳐내고,

그대로 자리를 일어나 걸어갔다.


아...삐졌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빵순이가 멈춰서더니 뒤돌아서 내게 왔다.


내 손을 양 앞발로 콱! 잡고는 뒷발차기를 해댔다.

발톱을 넣지도 않고, 잔뜩 세운 채로 긁는데

아프고,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아파서 견디지 못하고 손을 뺀 후,

나는 계속 사과했다.


진짜 미안하다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하지만 며칠 정도는 놓아둔 빗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이 나는지 분풀이를 하러 달려왔다.


몇 번 맞고 나니, 나도 나의 생존을 위해

빗을 숨겨야만 했다.


딱 한 번, 실수였는데.

빵순이는 더 이상 내 빗질을 신뢰하지 않았다.


맞다.

빵순이는 원한을 잊지 않는 고양이었다.


내가 뭔가 마음에 안 들게 하면,
언젠가는 꼭 돌려줬다.


나는, 웬만하면 대부분 참는 편이었다.

어지간한 일들은 그냥 넘겼다.
굳이 부딪힐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손해 보는 쪽이 더 편하다고 여겼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그러니까, 싸우지 말고 져 줘라."

그건, 나를 애지중지 해주시던 외할머니의 가르침이었다.


빵순이는 내 가치관과 정확히 반대에 선 고양이였다.


원래도 화를 잘 안 내는 나는 MP3 사건 이후로

빵순이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를 낼 필요가 없었다.


빵순이는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전부 쏟아내는 쪽이었으니까.


빵순이가 어떤 부정적인 행동을 했을 때,

그 이유에 대해서 내가 단 한 번도

납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분명히 빵순이가 애인데,

내가 더 애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집사라는 권위를 내세워

가끔 잔소리를 한 적은 있었다.


“그거 하지 마.”
“애들 때리지 마.”
“안 돼.”


그럴 때마다 빵순이는 가만히 듣는 듯하다가,

나중에 꼭 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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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않는 고양이와 참는 인간.

우린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나는 참는 쪽이 맞고,
빵순이는 유난스러운 쪽이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말 참는 게 맞는 건지.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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