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 고양이

내가 예쁘니까 그래도 됨 - 빵순 -

by 김우연


다 자란 빵순이는 모든 게 동글동글했다.

영롱한 빛을 발하며 반짝이는 구슬처럼 말이다.

물론, 성격은 잘 깎아놓은 다이아몬드처럼 강하고 날카로웠다.


나는 빵순이를 통해 '동물도 사람을 가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은 분명히 '해프닝'이었다.

중성화를 하러 간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빵순이를 진료해주던 선생님은 여성분이셨는데,

고양이상의 미모가 정말 대단했던 분이셨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친절함까지 더해져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나만 선생님이 좋았던 게 아니었나보다.


"이렇게 순한 고양이 처음 봐요."

집에선 그렇게 패악질을 부리던 냥아치 빵순이는

선생님 앞에선 그냥 순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였다.


눈 앞까지 내려온 아이라인을 눈곱으로 오해하고

꽤 집요하게 닦으실 때도, 빵순이는 가만히 있었다.


어쩐지 집에서만 강한 척 하는 것 같아 하찮았다.


성공적인 중성화 수술 후, 일주일 뒤 실밥을 풀러갔다.

아쉽게도(?) 담당 선생님이 휴진이라, 원장님께 진료를 받았다.


인심 좋은 옆집 아저씨의 느낌이 나는 원장님이셨다.

그런데 순한 고양이인 줄 알았던 빵순이는 그 날 맹수였다.

하악질과 닿기도 싫다는 뉘앙스의 사나운 목소리는

나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이고, 죄송해요. 우리 애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민망함을 감출 수 없어 원장님에게 거듭 사과 드렸다.


원래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며,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설명해주시는 원장님의 말씀에도

난 속으로 '얘가 남자보다는 여자가 좀 더 편한가보다.' 생각했다.


그랬다.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완전히 내 착각이었다.

집에 놀러오는 내 친구들을 차별했다.

기준은 확실했다. 얼굴이었다.


까짓 게, 고양이인데 차별이랄 게 뭐 얼마나 대단한 액션이겠냐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미모 기준에 맞지 않는 친구에겐 '하악질'을 했다.

만지지도 못하게 했고, 다가오지도 않았다.


빵순이가 생각하는 미모의 기준이라는 게,

엄청나게 각박한 건 아니었다.


내 친구들은 저마다 빵순이를 다른 모습으로 알았다.

엄청나게 애교 많은 개냥이 또는 까칠하고 예민한 고양이.


결국 이 외모지상주의 야옹이의 노골적인 차별 행각이

들통난 건,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였다.


같이 노는 친구들이 하나 둘, 남편이라는 존재가 생기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비 신랑'이라는 개념에 가까웠지만,

우린 모두 다같이 어우러져 놀았다.


주로, 우리 집에서.


어쩌다보니 모두 각자 독립해버리고,

나는 가족들의 짐을 이고지고 혼자 살고 있었다.


그래도 유일하게 가족과 같이 살지 않기에,

복닥복닥 털친구들이 즐비한 우리집에서 놀게 되면서,

빵순이의 외모 차별을 적나라하게 겪게 되었다.


아, 친구들이 상처 입지 않길 바랐는데.


하지만 내 친구들도 지지 않았다.

외모로 차별하는 빵순이의 몸매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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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순인 정말 예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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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고, 잘 커버렸다.

아주 많이.


물론 친구들 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건 나 뿐이었기에,

이것이 고양이 평균 몸매다! 라던가, 진정한 매력이다!는 통하지 않았다.


우리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날의 ‘선택받은 인간’을 고르는 건

빵순이만의 작은 행사였다.


빵순이는 자신이 선택한 인간의 무릎냥이 되었다.


선택받은 자의 특전은 빵순이의 몰랑몰랑한 뱃살과

따끈한 온기를 독점하는 것이었다.




남자의 외모 취향은 빵순이랑 나랑 완전히 달랐다.

나는 잘예쁨, 즉 꽃미남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빵순이는 잘생쁨을 선호했다.


그녀의 최애는 '이승기'였다.

한참 1박 2일, 강심장같은 예능과 각종 드라마 주인공이었었다.

평소에 내가 뭘 보던 관심이 없던 빵순이는 '이승기'만 나오면

가만히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를 눈으로 쫓았다.


그렇게도 이승기를 좋아한 빵순이였지만,

<구가의 서>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이승기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머리 긴 건 싫다는 거였다.

빵순이의 취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었다.




이런 빵순이의 외모심사는

내게도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단순하게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가리는 게 아니었다.


내가 기분이 다운되면 빵순이는

나랑 동기화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응했다.

같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기분을 정리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에 대한 위로가

얼마나 큰 지 나는 빵순이에게 제대로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너무 우울하고 삶이 버거워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먹지도 않았고, 씻지도 않았다.

물론 그게 1년, 2년씩은 아니었다.


이대로 심연으로 가라앉아

자다가 숨이 멎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 이틀, 사흘.

내 곁에 있어주던 빵순이는 자리를 피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멍청하게 천장만 보며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일주일정도 됐을 때, 지겨워졌다.

누워서 쉬기만 하는 것도 체질에 안 맞고,

그리고 그동안 내내 나는 수많은 불안, 걱정과 싸웠다.


문득 빵순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등지고 멀찍이서 누워있었다.


가만보니, 내 시간이 멈춰있는 동안

빵순이의 시간도 멈춰있었다.


기계적으로 나의 최소한 생활과

빵순이의 케어를 하긴 했지만 그뿐이었었다.


그제야 내가 무책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우울이 빵순이에게 전염된 것 같아 미안했다.


"빵순아, 미안해."

울먹거리면서 빵순이를 안았는데,

바로 냥냥펀치가 시원하게 날아왔다.


어이없게도 빵순이에게 뺨을 맞았다.

아니, 왜? 그렇게 서운했나?


그런데 너무 경멸스럽게 쳐다보면서,

닿지 말라며 몸을 피하고 냥냥 펀치를 날렸다.

솔직히 상처였다.


그래, 알았어.

니 맘대로 해.


퉁명스럽게 말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거울을 본 순간, 빵순이가 왜 그랬는지 알아버렸다.


떡지다 못해 뭉친 머리, 꾀죄죄한 몰골.

얼굴은 푸석푸석한 게 완전히 시들어있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이렇게까지

나를 방치한 적이 없었다.


잽싸게 씻고 머리를 말리고 단정하게 한 후

빵순이에게 갔더니 그제야 만지는 걸 허락해줬다.


그리고 걸걸한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울었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쉬지 않고 헤드 번팅을 하고, 내게 몸을 부볐다.


그날 처음 알았다.

빵순이가 좋아하는 '나의 예쁨'이라는 건,

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었다.


'두 번 다시는 이렇게 망가지고 싶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덕분이었다.


그 어떤 힘든 날에도,

나는 네 발로 기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씻고, 정리를 하고 잠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나를 소모시키지 않았다.


다시금 우울에 침잠할 것 같은 때가 오면,

빵순이를 위해서라도 가라앉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물론,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진 건 없었다.


그러나 빵순이의 까다로운 외모지상주의가

적어도 나를 어떤 역경과 고난, 시련이 닥치더라도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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