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러니까 울지마.

by 김우연



몇날 며칠을 고심 후에 결정한 결심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선택이 되리라 생각도 못했다.


작디 작은 생명들을 책임지려니 공부할 게 많았다.

무엇보다 빵순이가 가장 좋아하던 위스카스 파우치는

주식이 아니라 간식이라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그 중에 가장 어려웠던 건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일이었다.


빵순이와 치즈에게 내가 온 세상이었고,

내게도 이 솜뭉치들이 전부였다.


잃는다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소중한 존재가 생기면,

난 늘 잃을까 노심초사했다.


첩첩산중으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던 건,

마취가 필수인 '중성화' 문제였다.


모든 경우의 수와 필요성을 따져보고

나는 하기로 결심했다.


거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고양이 중성화를 한 곳을 선택했다.




빵순이는 눈 앞까지 길게 뻗은 아이라인때문에

눈곱인 줄 오해한 의사 선생님이 눈을 벅벅 닦았지만,

의연하게 성질 부리지 않고 묵묵히 견뎠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되서

병원 근처 카페에서 마취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만났을 땐, 전자렌지에 1분 돌린 냉동 떡처럼

약간 느물느물하게 늘어지고 동공이 풀려있었다.

내가 너무 못할 짓을 한 거 같아서 울었다.


빵순이를 만나곤 늘 웃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빵순이때문에 울었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도 조금만 차가 흔들려도

세 땀 딴 실밥 부위가 아플까, 덧날까 노심초사했다.


수술한 건 빵순인데,

마음이 다 녹아내린 건 나였다.


실밥을 풀 때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전전긍긍하는 나를 빵순이는 귀찮아했다.



치즈랑 뛰지도 못 하게 하지.

혹시라도 수술 부위가 덧날까

틈만 나면 후-후- 입바람을 불어대지.

많이 먹으면 배터질까봐 안된다며 밥그릇도 뺏었다.


유난도 유난도 그런 유난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빵순이의 중성화는 성공적이었다.



*



빵순이 수발에 전념하는 동안,

치즈에게는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잘 뛰던 아이가 오른쪽 앞발을 절기 시작했다.

어디 뼈가 금이 간 것 마냥, 아프다는 듯 굴었다.


그 모습에 나의 죄책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작디 작은 애교쟁이에게 너를 데려온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들킨 기분이었다.


"미안해. 정말 내가 너무 미안해."


늦은 시간이라 당장 병원에 가질 못했다.

치즈를 계속 쓰다듬고, 사과하고, 곁에 있었다.

그렇게 뜬 눈으로 지켜보다 까무룩 잠들었다.


헉! 놀라 번뜩 눈을 뜨고 보니,

치즈가 방을 느긋하게 어슬렁대고 있었다.

멀쩡하게.


놀라 벌떡 일어나 치즈를 불렀다.

녀석이 갑자기 다리를 절뚝였다.

왼쪽 앞발을...


어?...

분명히 어제 오른쪽이었는데?

입양사기꾼에게 비법 전수를 받았던 걸까.


치즈는 내게 모든 걸 들킨 걸 알게 되자,

아주 뻔뻔하게 굴기 시작했다.


내 품에 쏙 들어와 골골거리고,

그 옥구슬같은 목소리로 야-옹거렸다.


배신감보다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미안함이었고,

아주 티끌같은 배신감만 살짝 들었다.


그래도 역시, 귀여웠다.

누나에게 온전히 빼앗겨버린 관심을 되돌리려고,

콩만한 두뇌를 풀가동한 게,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난 정확하게 알았다.

빵순이보다 치즈를 사랑할 순 없고,

둘을 5:5로 공평하게 사랑할 수도 없다는 걸.


하지만 적어도 5.5 : 4.5정도까지는 되야지.

치즈가 또 그런 서운함을 느끼지 않게 해야지.

그 날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머지 않아 치즈의 중성화 수술도 결정했다.

여자애들보다 남자애들 수술은 좀 더 간단한 편이라고 들었다.


빵순이도 건강하게 전혀 이상이 없으니 괜찮겠지.

초보집사는 나름 2회차 중성화라며, 조금 덜 동동거렸다.


근데 뭔가 잘못됐다.

분명히 수술은 이상이 없었고, 케어도 잘 했다.

하지만 치즈는 중성화 이후부터 소변을 보지 못했다.


중성화를 했던 병원에서 '요로결석'이라고 했다.

수술은 아주 잘 됐다고, 본인들도 이유는 알 수 없댔다.

원인이 워낙 다양하니, 어느 누구의 탓이 알 수 없다고.


카테터라는 걸 장착하는 치료를 했다.

다시 요도가 막히거나 하지 않도록, 소변을 계속 배출했다.

그냥 평소처럼 같이 자도, 카테터로 소변이 계속 새서

밤새 축축해진 이불에서 같이 잠을 잤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직장 생활 시간 외엔

오롯이 같이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카테터를 제거하고 잠시 나아지는 듯 했지만,

이내 또 안 좋아져서 약물 치료도 해보고

전용 사료도 먹여봤지만 나아지질 않았다.


걱정스러웠지만,

병원에선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조금 더 지켜보라고, 이러다 나아진다고.


그리고 추운 겨울날,

하필 그 날 나도 몸이 안 좋아 병원을 들렀다 퇴근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불안했다.


평소처럼 날 반겨주던 치즈가 없었다.

빵순이도 그저 치즈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치즈는 내 이불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몇 번을 불러도,

일어나지 않았다.


따뜻했다.

그래서 자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심장 박동도,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어 울면서 물었다.

치즈가 갑자기 가버렸다고,

수술이 잘못됐던 거 아니냐고.


병원의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그 말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


정 그렇게 보호자가 궁금하면

부검이라도 해보자는고 했다.


부검?

이미 떠나버린 아이에게 그러는 건

너무 잔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그날 병원에 들렀다 퇴근한 걸

두고두고 후회한다.


아니, 중성화를 하지 말 걸.

다른 동물병원에서 할 걸.


치즈는 겨우 8개월이었다.


휘몰아치는 후회를 어쩔 줄 몰라 엉엉 울었다.


빵순이가 다가와 우는 내게 몸을 기댔다.

평소와 다르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우는 빵순이의 말이

어쩐지 사람의 말처럼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 죄책감이 만들어 낸 환청일지도 모른다.


괜찮을 거야.

고양이별이 여기보다 행복해.

그러니까, 울지마.




내 첫 이별이었다.

빵순이에게도 첫 이별이었다.


나보다는 빵순이 쪽이

이별에 대하는 자세가 어른스러웠다.


빵순이는 슬픔에 침잠한 날 보면서,

이 큰 고양이는 내가 지켜줘야겠다.

라고 생각한 게 틀림 없었다.


그날 이후,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마다

빵순이는 내게 무심한 '울지마'를 건넸다.


하지만 난 매번 울었다.


이 의젓한 고양이가 있어서,

어리광 부리듯 실컷 울었다.


빵순이는 그때마다 내곁에 있었다.


"괜찮아.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울어."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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