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옆자리는 나여야만 해.

by 김우연

빵순이와 나는
참 별일을 다 겪었다.


그 중에도 가장 곤욕스러웠던 것은

사람들의 통제 불가능한 이기심이었다.


정확히는,

'선의라고 믿고 있는 이기심'이었다.


내가 더 이상 고양이를 데려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걸 전혀 존중해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운다’는 걸
‘고양이면 다 좋아한다’로 인식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좋아해서 키운다.'가

'세상 모든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 대단한 차이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오다 주웠어. 불쌍하게 울고 있더라.”
“너 고양이 좋아하잖아. 키울 수 있지?”
“얘 좀 살려줘. 너 아니면 죽을 것 같아.”


각자의 제안은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뿐이었지만
나는 매번 흔들렸다.


불쌍해서, 짠해서, 맘이 아파서.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었다.


독단적으로 내가 결정할 순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빵순이를 봤다.

그리고 빵순이는 나를 봤다.


안 돼.


말은 없었지만,

그 눈빛은 언제나 단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여섯 마리였던 적도 있었고,
여덟 마리였던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재난이었다.

그리고 그 재난의 중심엔, 늘 내가 있었다.


천진난만한 아깽이들부터

순화되지 않는 길냥이부터 엉망이었다.

그리고, 나도 엉망진창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 업둥이들을 데리고

빵순이는 질서를 만들었다.


누가 어디까지 와도 되는지,
누가 누구 위에 있는지.

그냥 다 정리해버렸다.


빵순이가 없었다면
나는 진작에 무너졌을 거다.

어디 '애니멀 호더'라고 소개 됐을지도.


그렇게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빵순이는 필요하다면 나를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아픈 애들, 보살핌이 필요한 애들.

그럴 땐 기꺼이 나를 그들에게 내어줬다.


빵순이는 나를 100% 독차지하지 못하는 것에

맘 아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대신 단 하나.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게 있었다.


내 옆자리.

좀 더 정확히는 잘 때,

나의 오른쪽 팔베개 자리였다.


빵순이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자도

전혀 질투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같이 누워 있는 것도, 몸을 기대는 것도.


그런데 유독, 내 오른쪽 팔에

누운 존재만큼은 끝까지 밀어냈다.


그건 양보의 대상이 아니라,

빵순이에게 있어 지켜야만 하는 자리였다.

나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적이 있었다.

버스가 끊겨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묘하게 빵순이랑 닮아서
우리가 자주 놀리던 애였다.

빵순이는 그걸 별로 안 좋아했다.


새벽 네 시 반.

친구가 나를 깨웠다.


“나 집에 가야겠어.”


시간을 보니 아직 첫차도

안 다니는 이른 시간이었다.


“왜, 좀만 더 자다가 가.”


친구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빵순이가… 꺼지래.”


무슨 소린가 싶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새벽 내내

잠들려고 하면, 빵순이가


툭. 툭. 치면서,

"야-옹" 했다는 거다.

절대 잠들지 말라는 듯이 계속.


나는 말도 안된다는 듯 웃으면서 답했다.


“우리 빵순이 목소리가 그럴리가 없는데?”


진짜다.

빵순이는 목소리가 꾀꼬리같지 않았다.

애애애-옹. 이렇게 울었다.


걸걸한 허스키 스타일로

오죽했으면 내가 맨날 빵순이에게

'너 엄마 몰래 하루에 담배 두갑씩 태우냐?'

라고 할 정도로 거칠었다.


하지만 친구는 단호했다.


“계속 나 쳐다보면서 그랬어…”


결국 친구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그리고 나도 곧 알게 됐다.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잠들려는 순간,

툭. 툭.


"야-옹."


눈을 뜨니, 빵순이가 코앞에 있었다.



아, 진짜였구나.

나는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들어줬다.


빵순이는 자기 자리로 들어왔다.


만족스럽게 몸을 둥글게 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잠들었다.


그날 확실히 알았다.


이 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빵순이와 나의 약속이라는 걸.



돌이켜보면
연애할 때도 그랬다.


나는 남자 보는 눈이 정말 없었는데,

빵순이는 달랐다.


단순하게 사람을 좋다 싫다는 게 아니라,

내 옆에 두어도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 사람은 아니다.

그 판단이 서면, 계속 방해했다.

망설임이 없었다.


내 옆에 달라붙어서

온갖 애교를 부렸다.


나만 봐.

넌 그냥 나만 봐.


그땐 그 뜻을 잘 몰랐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 그가 사는 곳으로

이사를 결심했고, 빵순이와 함께 이동했다.


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다,
휴게소에서 잠깐 쉬게 됐다.


내내 얌전히 내 품에 안겨있던

빵순이가 갑자기 그 남자에게 갔다.

웬일로 빵순이가 그윽한 눈으로 그와 눈을 맞췄고,

그도 평소와 다른 빵순이가 좋았는지 쓰다듬었다.


나는 잠깐 기대했다.

빵순이가 이제, 인정한 건가?


그런데.


“으악!!”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유유히 돌아오는 빵순이.

표정이 너무 당당했다.


확인해보니, 세상에-.


쉬를 했다.

아주 정확하게 그의 바지에.


내겐 절대 할 수 없으니 참고 있다가,

여기서 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타이밍에

그 남자에게 시원하게 싸버린 거였다.


나는 웃음이 터졌고,
그 사람은 표정이 굳었다.

물론, 사과하고 잘 마무리 되었다.


그때만해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재미난 해프닝정도라고 생각했다.


사실 빵순이와의 일이 아니었어도,

그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빵순이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 옆자리를 지켰고,

내 옆에 설 수 없는 것들을 다 밀어냈다.


그러니까 결국,

내 옆자리는 빵순이의 것이었고,

나는 빵순이의 옆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는,

서로가 서로를 선택한 자리였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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