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보통의 고양이
지금은 15년 차 고양이 집사 경력을 자랑하지만,
사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고양이는 요물, 영물'이라고만 알았다.
밤마다 아이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렸고,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격전이 벌어졌다.
어린 내게 고양이는 공포에 가까웠다.
반려동물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애완동물이라는 개념으로 본다면
고양이는 당연히 탈락이다.
이렇게 편협한 시선을 가진 내가
빵순이를 만나고 난 후 완전히 변했다.
빵순이는 인간을 좋아하는 고양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지 않아
다시 또 뒤집혔다.
나는 '내가 알던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빵순이와는
정반대의 고양이가 하나 더 있다.
이름은 뽕식이.
뽕식이는 한참 때 9kg까지 나갔다.
지금은 나이 이슈로 8kg이지만,
누가 봐도 예나 지금이나 거묘였다.
“어머! 이렇게 근육질인 고양이는 처음이에요."
물론, 병원에서는 뽕식이의 몸을
더듬어보시고 감탄을 하셨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덩치에 비해
늠름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목소리는 가늘었고
늘 염소처럼 매애- 하고 울었다.
매사에 겁이 많아 사람 인기척만 나면
허둥지둥 사라지기에 바빴다.
그냥, 덩치 큰 찐따였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오죽했으면 나는 뽕식이가
집을 나간 줄도 모르고 지낸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집 밖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름 돋게도 듣자마자 단박에 알았다.
뽕식이의 목소리였다.
밖에서 제법 고생을 했는지,
대단한 등치가 살짝 초라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집 나가면 냥고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또 내게 겁을 먹고 다가오질 않았다.
그때 빵순이가 창가에서 울었다.
찐따야. 집에 들어와.
그 말에 다가오는가 싶더니 주춤거렸다.
결국 고양이캔을 들고 나도 같이
사족보행을 한 끝에 포획했다.
9kg짜리 고양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건 쉽지 않았다.
무릎이 까져서 아픈 탓도 있었다.
우리 집 찐따는 그날 빵순이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
나는 뽕식이와 친해지려고
꽤 오랫동안 애를 썼다.
다가가 보고, 말을 걸어보고,
놀아주고, 거리도 둬 보고 다 해봤다.
결과는 전부 실패였다.
뽕식이는 끝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정말 가끔,
‘얘가 미쳤나?’ 싶을 정도로
툭 와서 한 번 비비고 가는 게 전부였다.
그게 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밉지는 않았다.
왜 그렇게 사는지,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뽕식이는 ‘나비탕’이 될 뻔했던
아깽이들 중 하나였다.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다른 아이들과는 체격이 달랐다.
“얘는 두 그릇 나와요.”
건강원에서는 이렇게 말하며,
두 배의 몸값을 불렀다.
나는 아깽이 다섯 모두를 데려오려
뽕식이의 몸값을 흥정했다.
그렇게 데려온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임보를 갔었다.
빵순이의 식음전폐 때문이었다.
뽕식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뽕식이만 자꾸 돌아왔다.
임보처로 보내면 금세 연락이 왔다.
“이 아이는 좀…”
말은 다 달랐지만,
뜻은 비슷했다.
애교가 없고,
다가오지 않는 고양이.
사람들이 원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발랄하고 쾌활한
귀여운 아기고양이였다.
결국, 뽕식이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로
다시 내가 데려와야 했다.
고작 4개월령의 아기 고양이는
집도 절도 없이 떠돌기만 했다.
어딘가로 다시 임보를 보낸다는 건,
아이한테도, 나한테도 무리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더 키울 생각이 없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 만나던 사람이
고양이를 싫어했다.
“더 늘리면, 우리는 끝이야.”
나의 고민에 대한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건,
그가 아니라 뽕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객기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아이에게
대단한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안전한 곳에 있다는
느낌 정도는 주고 싶었다.
우려 와 달리 빵순이는
그런 뽕식이를 받아줬다.
그리고 나를 다루듯,
뽕식이를 다뤘다.
바보같이 굴면 엄하게 혼을 내고,
필요할 때는 조용히 곁에 있었다.
뽕식이에게 빵순이는 누나이자, 엄마.
동반자이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뽕식이에게
나는 다른 존재였다.
보통 고양이들은 집사를
큰 고양이라고 생각한단다.
큰 고양이들은 언제든 자신을 버린다.
그러니 큰 고양이를 믿어선 안 된다.
집사는 큰 고양이다.
자신을 단 한순간도 사랑한 적이 없는.
뽕식이가 그렇게 생각한대도
나는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임보처를 떠돌았고,
내가 입양을 결심하기까지,
임보라고 산정한 기간 동안 나는
뽕식이를 애정하지 않았다.
정이 들면 끝이다.
분명히 나는 뽕식이를 보낼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이 뽕식이가 나를 믿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난 뽕식이에게 부채감이 있다.
평생 큰 고양이를 믿지 못하게 만든,
불필요한 경계심을 만들어버린 부채감.
빵순이가 나를 끌어당긴 고양이라면,
뽕식이는 내가 기다려야 하는 고양이였다.
다가오지 않는 존재와
같은 공간을 나눠 쓰기.
뽕식이와 나는 그렇게
공동생활 협약을 맺었다.
빵순이가 나의 중심이었다면,
뽕식이는 그 바깥에 있는 존재였다.
같이 살지만,
완전히 가까워지지는 않는 관계.
가족보다는 하우스메이트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뽕식이는,
내가 알던 고양이었다.
어릴 때 어른들이 말하던
부정적인 모습의 고양이 말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런 모습들이
어쩌면 뽕식이처럼 깊은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영물이니 요물이니 하는 말로 핍박받는 고양이들은
큰 고양이들이 두렵고, 무서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뽕식이를 통해서
처음으로 알았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반드시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반려동물과의 관계가
항상 애틋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떤 관계는
가까워지지 않은 채로도 유지된다.
어떤 고양이는 나를 끌어당겼고,
어떤 고양이는 내가 다가가야 했다.
빵순이는 나를 길들였고,
뽕식이는 나를 조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알던 고양이도,
내가 알게 된 고양이도
결국 같은 고양이였다.
단지, 내가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